문필봉(30)_정영자 수필가

정영자 수필가
정영자 수필가

저녁 뉴스 시간. 한립읍 금악리에 자리한 금오름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점점 클로즈업되면서 물이 말라버린 분화구 안에 줄줄이 서 있는 돌탑이 드러난다. 방문객들이 쌓아놓은 돌탑이란다.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소원을 빌며 돌 하나 주워 올린 단순한 행위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든 기자가 분화구 물웅덩이에 서식하고 있는 맹꽁이와 도롱뇽 등의 양서류가 쉴 자리를 잃어버려서 숨을 쉬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라고 리포트 한다.

 

금오름 분화구는 비가 많이 오면 물이 고이고 주변에는 화산 송이가 널려져 있어 양서류가 사는 데 최적인 곳이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으면 분화구는 말라버리고 양서류는 몸을 숨길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분화구 안에 널려있는 화산송이의 그늘이다. 기자는 이어서 "탐방객들이 습지 주변에 널려있는 돌들을 주워 무심코 쌓은 돌탑이 양서류의 서식지를 훼손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금오름이라면 노을 지는 풍경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 아닌가. 가끔 저지리 현대미술관을 오갈 때 금오름 입구에서 차들이 올라가는 걸 본 적은 있어도 아직 올라가 보진 못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으면 이 지경이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토요일 오후, 딸과 손녀와 함께 오름으로 향했다. 오름 입구 주차장에는 차량으로 꽉 차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접근성이 좋다고 오름을 오르려는 사람이 이리 많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이유는 있었다. 한 유명연예인이 이 오름 정상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모 방송 프로그램에선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방영한 게 계기였다. 그놈의 인증샷이 뭐라고 이리 기를 쓰고 사진을 찍으려고 오를까. “모두가 그 닮은 꼴의 한순간을 담기 위해 오르는 건 아니겠지중얼거리며 경사진 길을 올라간다.

오르는 길 왼쪽으로 죽 뻗은 삼나무가 숲을 이루고 오른쪽으론 너른 들판과 축사들이 보인다. 삼나무 향보다 가축 분뇨 냄새가 자욱하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은 오름으로 가는 느낌을 주기보단 집을 향해 가는 듯 걸림이 없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까지 자동차를 타고 오를 수 있었다는 길에는 지금 남녀노소 줄을 잇는다. 이곳을 찾는 이들 중에 얼마나 오름에 대해 알고 올까. 그저 오르면 탁 트인 풍광을 접하리라는 기대 외에 다른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제주인의 삶을 이야기할 때 오름은 그 중심에 있다. 부드러운 능선으로 온화해 보이기만 하는 오름은 역사적으로 묵호의 난에서 태평양전쟁 시 일제가 남긴 잔재와 4·3사건의 비극적 현장까지 품고 있다. 몰아치는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오름 기슭에 터를 잡고 밭농사를 지었으며 마소를 방목해서 키웠다. 오름 자락에 자생하는 촐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 베는데 좋은 촐밭은 먼저 보는 사람이 대나무 막대기를 꽂아 선점했다고 한다. 베는 날을 정해서 베었고 그걸 어기면 도둑 취급을 받았다. 촐은 초가지붕에 덮고 마당과 쇠막과 돗통에도 깔고 소의 먹이로도 주었다. 또 옛날에는 거래 수단으로 세금도 학비도 촐로 내고 월급도 촐로 받았다고 한다. 자연이 베푼 혜택은 곧 생계로 이어졌다. 어렸을 때 추석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마당에 푹신하게 깔아 놓은 촐 위를 걸으면서도 그게 오름에서 온 것이란 걸 몰랐다.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오름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땀 흘린 후에 맞닥뜨리는 탁 트인 전망에 반해서 오르다 보니 백여 개의 오름을 올랐다. 지금 오름을 오르는 관광객이나 다를 게 없었으나,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에도 이름도 없이 피는 들꽃 하나에도 애정이 갔던 건 태생이 제주라 그런 거였다. 한라산을 중심에 두고 빙 둘러앉은 삼백팔십여 개의 오름. 제주 사람은 조상 대대로 오름에 얽힌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주 사람은 오름에서 나고 오름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을 뼛속 깊이 담고 살아가고 있음이리라.

오르는 내내 오름에 관한 이야기를 손녀에게 들려주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를 한 건지 모르겠으나 반응이 기특하다. 책에서만 봤던 맹꽁이와 도롱뇽을 본다고 따라나선 열한 살짜리 학구파다. 풀숲에 핀 하얀 찔레꽃이 예쁘다고 만져보는 손녀는 오늘 일기에 무엇을 남길까. 나의 행복한 상상이다.

느릿느릿 올라와도 정상까지 이십여 분이면 족하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다. 분화구로 내려가는 사람들, 이미 내려 간 사람들, 능선을 따라 걷는 사람들 제각각이다. 이미 훼손되어 붉은 흙이 드러난 분화구로 저리 내려가야만 할까.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분화구 안에 쌓아있다는 돌탑을 확인하려 내려갔다. 손녀도 뒤따라온다.

어제 내린 비로 분화구 밑바닥에 물이 약간 고여있다. 주변에는 높고 낮은 돌탑들이 널려있다.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왜 이리 많은 건지. 바닷가에서 올레길에서 오름에서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을 심심찮게 만나면서도 빌고 싶은 게 많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자신의 소원을 빌면서도 다른 생명에 피해를 주는 이 모순. 어쩌면 우리 삶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더불어라는 말을 좋아한다. 자연에 더불어 사는 우리가 할 일은 자연에서 생겨난 것들을 그냥 놔두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분화구에 널려진 돌멩이 하나도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금오름의 화산송이가 맹꽁이와 도롱뇽에게 그늘을 제공하기 위한 존재가 되었듯이.

그대여, 오름을 오르거나 바닷가를 걷거나 올레길을 걷게 되거든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돌멩이 하나도 그 자리가 제자리임을 잊지 말기를. 그래야 제주에서 오래도록 다시 만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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