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이야기(113)

제주의 오름은 모두 368개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산림청과 제주특별자치도에 등재되어 있는 목록의 숫자일 뿐, 사실상 그 외에도 오름에 포함되어야 할 만한 작은 산체(山體)들이 몇 개 더 있어서 더 조사해 보면 368개를 훨씬 넘을 것이다.
이번에는 오름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 않는 오름을 소개하고자 한다.

산록남로에서 바라본 검은오름
산록남로에서 바라본 검은오름

▲목록에 없는 서홍동 ‘검은오름’

서귀포시 동홍동 솔오름 입구 삼거리 로터리에서 서쪽 방향의 서귀포 치유의 숲으로 산록남로를 따라 가다 보면 중간 지점에서 북쪽으로 작은 오름처럼 보이는 산체를 볼 수 있는데, 이 산체가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검은오름이다.
검은오름은 서귀포시 서홍동에 소재하고 있는 산체로, 서홍동에서는 옛날부터 검은오름이라고 불려왔던 오름이다.
예전에 서홍동 주민들이 집이나 농사 현장에서 한라산을 바라봤을 때 검게 산봉우리처럼 솟았다 해서 ‘검은오름’이라 칭했다고 한다.
이 오름으로 가려면 서홍동 추억의 숲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사농바치터를 지나 0.3Km를 더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100m를 가면 다시 갈림길 삼거리가 나오며, 이곳에 편백나무 군락지와 내려가는 길과 검은오름으로 가는 길이라 표시된 표지판이 세워져 있음을 보게 된다.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540m를 가서(표지판에는 0.4km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0.54km(540m)임) 두 번째 송전 철탑이 세워져 있는 아래에 이르면 그곳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약 180m 쯤 가면 검은오름 정상부에 이르게 된다.

▲검은오름의 형태

이 오름을 굳이 굼부리 형태로 분류하면 원추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산록남로에서 바라본 모습으로는 봉우리에서부터 동사면은 다소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서사면은 매우 완만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오름에 가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동사면과 남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서사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송전철탑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부터 정상부까지는 경사가 없이 편평한 지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오름의 동쪽 기슭으로는 생수천이라는 시내 줄기가 흐르고 있고, 서쪽 기슭으로는 서홍천 줄기가 흐르고 있는데, 두 개의 시내 줄기는 서홍 마을의 변시지그림정원 근처 서홍교 다리 근처에서 한 줄기로 합쳐지고, 합쳐진 줄기는 연오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다가 천지연폭포가 되어 서귀포항으로 흘러간다.
이 오름과 그 주변은 온통 짙은 수림으로 혼효림을 이루어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특히 정상부 주변에는 동백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검은오름 탐방

가을 한자락이 하늘 중간에 걸려 온통 파란색으로 펼쳐진 날, 서홍동 추억의 숲길을 따라 검은오름을 찾아갔다. 산과 들을 찾아 나들이하기 좋은 토요일이어서 인근 치유의 숲으로 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추억의 숲에는 몇몇 사람들만이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숲길을 들어서니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고, 쉼터 근처에는 추억의 숲을 소재로 쓴 시 몇 편이 새겨진 나무판이 세워져 있었다.
200여m 쯤 올라가니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담이 시내 줄기를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추억의 숲 탐방로가 돌담 옆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는 옛날에 이곳에서 소와 말을 키우기 위해서 목장을 만들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약 1km 쯤 걸어올라가니 옛날 화전민 마을이었던 연자골 옛 집터가 있었다. 집터에는 연자골 마을에서 사용하던 방아가 남아 있었는데, 방아는 위판과 아래 판이 따로 떨어져서 옆에 함께 누워 있었다. 집터에는 평상과 벤치 등 쉼터가 마련되어서 탐방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연자골 집터를 지나니 대나무 군락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는 이곳에 사람이 살 때에 대나무를 심어서 구덕과 차롱 등 대나무를 이용한 도구들을 만들어 썼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연자골 집터에서부터 동쪽으로 꺾여 이어지던 탐방로는 다시 북쪽으로 꺾여 이어지다가 사농바치터에 이르렀다. 사농바치는 사낭꾼을 이르는 제주말이며, 사농바치터에는 둥글게 돌담을 쌓은 흔적이 남아있었는데, 사농바치들이 숲속에서 사냥을 하다가 잠시 머물기 위한 쉼터라고 한다.

사농바치터에서 300m 쯤 올라가니 첫 번째 갈림길 사거리를 만났다. 갈림길은 동쪽으로는 100m쯤 가다가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서 편백쉼터로 갈 수 있고, 북쪽으로 가면 좀 더 먼 길을 빙 돌아서 편백쉼터로 갈 수 있으며, 서쪽으로는 치유의 숲길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100m 쯤 걸어가니 다시 두 번째 갈림길을 만났다. 이 갈림길은 북쪽으로 800m를 올라가면 편백쉼터로 가게 되고, 동쪽으로 약 400m쯤 가면 검은오름이라고 표시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동쪽으로 송전철탑 관리 길을 따라서 실제로 약 540m를 가서 첫 번째 철탑을 지나고, 두 번째 철탑 아래에 이르렀다. 이곳이 검은오름 정상부의 북쪽 기슭인 셈이었다.
철탑이 있는 곳에서 살펴보았으나 워낙 경사가 없이 평탄하여 이곳에 오름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검은오름 정상부로 짐작되는 곳을 찾아 남쪽으로 걸어갔다.

송전철탑 아래에서부터 약 180m 쯤 나뭇가지를 헤치며 걸어가니 검은오름 정상부로 짐잠되는 곳에 이르렀다. 이곳에 이르니 서홍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세워 놓은 검은오름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고, 몇몇 오름 마니아들이 다녀간 흔적이 나뭇가지에 리본으로 묶여 있어서 이곳이 확실히 정상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상부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검은오름 / 이곳은 예전에 서홍동 주민들이 집이나 농사 현장에서 한라산을 바라봣을 때 검게 산봉우리처럼 솟았다 해서 ‘검은오름’이라 칭했다. 수백년 동안 비, 바람 등 자연 침식작용으로 현재는 평탄해져 오름의 형태는 볼 수 없다. 검은오름은 예전부터 서홍동 주민들이 올라서서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 눈에 내려다 보았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도 탁 트인 서귀포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 서홍동 주민자치위원회]

안내판에 의하면 현재도 탁 트인 서귀포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지만, 실제는 워낙 나무가 울창하여 아무 전망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부에서 조금 내려가 보니 남쪽편으로 아찔하게 가파른 경사가 내려가고 있음을 보았다. 주변 경사면을 살펴보니 남쪽 경사면이 가장 가파르고 동쪽 경사면이 약간 가파르며 서쪽 경사면은 다소 완만하고 북쪽 경사면은 완전히 편평한 지형이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들리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고요한 검은오름 정상에 앉아있으니 시심이 절로 시인의 가슴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서홍리 검은오름에 앉아 // 한천민 // 누구도 찾아와 주지 않는 곳 / 그래서 한세월 쓸쓸히 살아온 너 / 바람이 불면 / 바람과 세상이 전해주는 이야기 듣고 / 비가 오면 / 가득 깔린 낙엽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물을 / 곡조 없는 가락으로 들으며 / 고즈넉이 앉아 있는 너 / 누군가는 이름을 불러주지만 / 이름조차 모르고 쳐다보지도 않는 / 너 / 외로움을, 그리움을 / 가슴 깊이 꽁꽁 묻어 놓고 지냈다 // 시오름을 감돌아 찾아온 / 가을 산바람이 그저 반갑다 / 차라리 / 이제 다가올 겨울,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 가지 위 잎새들과 하얀 눈이 만나 그려내는 / 조요한 풍광이 / 네 가슴 속으로 스며들겠지.]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는 길. 추억의 숲길을 만든 서홍동에서 이 검은오름도 추억의 숲길 코스 중에 포함시켜 연결하여 걷게 하면 어떨까? 그리고 정상부의 나뭇가지를 조금 솎아내어 옛날처럼 이곳에서 서귀포 시내 쪽을 바라볼 수 있게 하거나 전망대를 세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천민 한라오름연구소장·동화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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