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향한 그리움 담은 동시집
자연에서 얻은 영감 시로 승화
서귀포 동네책방서 북토크 열어
“비는 매일 운다/ 나도 슬플 때는 얼굴에서 비가 내린다/ 그러면 비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걸까?” (민시우, 시집 ‘약속’ 중 ‘슬픈 비’ 일부)
민시우(11) 군이 쓴 첫 번째 시 ‘슬픈 비’다. 동시집 '약속'의 저자이기도 한 시우군은 유치원을 갓 졸업한 나이였던 6살에 엄마가 없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했다. 밤마다 엄마 품이 그리워 울며 보채던 어린 소년은 제주시 애월읍의 장전초등학교 5학년이 됐고, 시를 쓰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는 마당의 대나무, 슬픈비, 봄날의 벚꽃, 이따금 찾아오는 노루, 때 이른 첫눈, 엄마 닮은 나무를 통해 엄마를 만난다. 이렇게 엄마를 그리며 애틋한 ‘시 쓰는 제주 소년’ 민시우군이 지난 21일 오후 3시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에 위치한 ‘북살롱 이마고 (대표 김채수)’에서 북토크를 열었다.
민시우군은 지난 8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시 쓰는 제주 소년'으로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날 북토크에는 20여명의 지역주민이 모여 민군의 시집 ‘약속’을 읽고 낭송하며, 독자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민군의 첫 동시집인 ‘약속’은 5년 전 폐암으로 투병하다 떠난 엄마를 언제가 다시 만나겠단 약속이 이뤄지길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
민시우군은 시집을 낸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자 “시를 쓰기 전에는 엄마가 많이 보고 싶고 그리워했는데 시를 쓰다 보니까 그리움이 덜어진다”라며, “요즘 시를 자주 쓰다 보니 시에 대한 책도 읽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군은 “시를 쓰다 보니 아빠랑 같이 제주의 자연을 깊게 들여다보는 면이 있는 것 같다”며 제주의 자연에서 시의 영감을 얻는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엄마 얼굴이나 목소리는 안 나오는데, 엄마가 꿈속에 나와서 아빠랑 같이 지내면서 먹고, 놀고, 자는 꿈을 꾼다”고 전했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약속에 대한 질문에 “많은 약속이 있지만 당연히 엄마랑 천국에서 꼭 만나자는 약속을 했고 가장 큰 약속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기적이 일어난다면, 가족들과 다 같이 모여 놀고 싶은 게 소원”이라고 전했다.
북토크에 온 한 주민은 ‘엄마 나무’라는 시를 낭송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엄마 나무’는 엄마가 보고 싶은 날, 엄마와 자주 다녔던 숲에 가서 엄마 나무를 찾아가 엄마를 기리며 쓴 시다.
이날 북토크에 함께 온 민시우군의 아빠는 민병훈 영화감독이 제작했던 영화와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약속’의 영상도 일부 상영됐다.
민 감독의 신작 '약속'은 시작(詩作)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나가는 시우와 민 감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시우가 초등학교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약 3년에 걸쳐 쓴 스물세 편의 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민 감독은 “초등학교에 들어간 시우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슬픈 비'라는 제목의 시를 연습장에서 써놓은 걸 우연히 읽었다”라며 “아들에게 엄마를 생각하며 계속 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것이 모티브가 돼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를 또 엄마를 그리워하는 애도의 시간을 가졌지만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고, 우리 부자처럼 가족을 떠나 보낸 슬픔을 간직한 분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영화가 완성돼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됐고,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제주에서 상영관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에 제주에서 만들었고 주 배경이 제주인 영화인데 재미없는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이유로 제주의 극장들이 외면해 상영 조차 못하는 바람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민시우군은 언제부터 시를 잘 썼는지, 계속 시를 쓸 것이냐는 독자의 질문에 “처음부터 시를 잘 쓴 게 아니라 시를 쓰는데 많은 지지를 보내주고 잘 읽어주고, 도와준 아빠가 있어 발전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에 대해 민군은 “아직 생각하는 직업은 딱히 없다”라면서 “하지만 몸이 불편하시거나 조금 힘드신 분들이 남들한테 조금 치유가 되고 위로가 되고 건강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영화’ 약속의 뼈대는 시우군의 시로써, ‘슬픈 비, 끝의 시작, 약속, 고마워로’ 이어지며 부자는 죽음과 이별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시와 영화로 표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