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봉(32)_윤행순 수필가

윤행순 수필가
윤행순 수필가

『웃음의 치유』 저자이기도 한 노만 키즌스는 뼈와 근육이 굳어가는, 당시 의학으로는 치료 불가능한, 불치병 진단을 받게 된다.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은 그는 우연히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통증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후로 웃는 내용이라면 가리지 않고 코미디 프로와 유머집을 보기 시작했다. 실컷 웃고 나면 통증이 없어 잠을 잘 수 있었지만, 웃음의 효과가 떨어질 때쯤 되면 다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이 웃는 영화를 보고 유머책을 읽으며 처절하게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웃음의 효과를 증명하기에 이른다. 그는 불치병을 극복하였으며 의학계에서도 인정을 받으면서 웃음 치료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처럼 웃음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질병 치료에 보조요법으로 적용되고 있다.

 

웃음이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성싶다. ‘소문만복래 · 일소일노 · 웃음이 보약이다 · 웃어라, 그러면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갖게 될 것이다’. 등 웃음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말은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의학이 발전하면 모든 병을 치료해 줄 것 같았지만, 불치병은 더 늘어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병은 하나인데 약은 백 가지이듯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들에게 병에 좋은 특효약을 부탁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만큼 치료가 어렵기도 하지만, 그 특효약의 하나로 웃어야 하는 일은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수술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멜랑콜리의 하나인 우울증 치료법으로, 신체 운동의 하나로 웃음을 이용했다는 기록도 전해져 오고 있기는 하다. 지구상에서 웃을 수 있는 동물은 사람뿐이라고 하는데 그걸 잘 알고 있는 우리도 일상처럼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을 보면 웃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환자의 마음은 오죽할까.

어린아이는 하루에 300번은 웃는다고 한다. 그러던 아이가 나이 들어가면서 웃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나와 나를 비교하기보다 남과 비교하게 되면서 웃지 않는 얼굴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박장대소하며 웃어 본 지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고등학교 체육 시간이었을 게다. 선생님은 우리를 웃겨보려고 애매한 문제를 내었다. 유머러스하고 종잡을 수 없는 문제여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답을 맞힐 때마다 ~ ’하는 함성과 함께 손뼉 치고 손바닥으로 쉼 없이 책상을 두드리고, 온몸을 흔들고 뒤틀리며 목이 터지도록 웃었다. 그 소리가 운동장까지 퍼져나갈 즈음, 한 친구가 웃다가 벌린 입을 한참이나 다물지 못했다. 그 모습도 장난인 줄 알고 더 크게 웃어버렸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제는 잘 웃지를 못한다. 웃을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웃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지도 이미 오래다. 상쾌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오늘은 웃어야지 다짐해도 어느 사이에 마음은 아옹다옹하는 일상의 복잡한 마음에 머물고 만다. 누구는 어떻고, 걔는 왜 그런 말을 해서 속상하게 하는지, 모두 제 세상인 것처럼 독불장군인 그 사람이, 그러다 보면 웃어야 한다는 생각은 도망가버리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웃는 사람을 보면 나도 그처럼 닮고 싶고, 그의 얼굴처럼 만개한 꽃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웃음꽃이 점점 커지며 주위를 ㄴ웃음소리로 전염시켜주는 그런 사람을 보면 달려가 그 웃음을 가져오고 싶다. 아니, 흥정 없이 그것이 사고 싶어진다.

웃음도 연습이 필요하다. 밥 먹듯 자꾸 웃다 보면 시나브로 내 몸에 엔돌핀은 샘처럼 솟아나지 않을까 싶다.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숲에서 가슴 뻥 뚫리게 크게 한번 웃어 보면 어떨까.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윌리엄 제임스의 말이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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