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

1. 들어가며
제주 음악의 발전을 제주대학교 음악교육과 신설 이전과 이후로 비교적 선명하게 나눌 수 있다. 특히, 85년 배출된 첫 졸업생들은 음악 전문가로서 전문적인 음악 정보를 시민 사회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80년대 중반 제주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 서귀포시립합창단 창단은 시민 사회에 음악을 통한 예술적 시민성 함양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후 90년대 들어 탐라합창제, 탐라 전국합창축제, 제주국제관악제, 제주국제합창축제 등 시민 사회 주도 음악 축제들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음악 전문가의 시민성에 따른 음악 활동에서 확장하여 일반 시민의 예술적 시민성 발현에 따른 다양한 음악 활동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10년 사이 제주의 합창 활동은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일반 시민의 합창 활동 참여로 인한 양적 증가는 2000년 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5배 이상에 이른다. 사단법인 한국합창총연합회 제주지회의 등록 합창단이 35개 단체 이상이고 미등록 단체들도 있어 현재 제주의 일반 합창단의 수는 50여 단체 내외로 추정된다. 좀 더 의미 있고 윤택한 삶을 추구하려는 일반 시민의 예술적 시민성 발현이라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급격한 양적 증가는 합창음악에 대한 정체성 즉, 예술적 시민성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가령, 합창단 활동 목적이 음악에 있지 않고 자신의 사업 확장과 친목 등 부수적인 목적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단원 간 이해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칼럼은 음악 전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반 시민의 예술적 시민성 발현으로써의 합창 활동과 그에 따른 정체성 형성 즉, 성숙한 예술적 시민성 발현, 그것을 위해 국가 예산 투입의 필요성을 논하는 데 의의가 있다.

2. 예술적 시민성 발현한 합창 활동 

제주 최초의 합창단은 1962년 창단된 탐라합창단이다. 당시 6·25 전쟁으로 인해 제주로 피난 온 육지부 전문 음악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단원이 적지 않았다. 
이 합창단 활동에서 주목할 점은 1963년, 1964년에 애국가 선율이 포함된 ‘한국환상곡’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을 객원지휘자로 초청했다는 점이다. 제주은행 창업자인 김봉학 선생이 일본에서 안익태 선생이 연주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자비를 들여 제주에 초청했다고 전해진다. 탐라합창단 단원 중 일부 남성 단원들은 이후 YMCA하모니 중창단을 창단해 활동하였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여전히 YMCA 남성중창단이 활동하고 있었고 YMCA 어머니 합창단, 돌체칸토 합창단, 비바체 합창단, 글리클럽, 한라합창단 등이 창단되어 활동하였다. 이것은 최초의 예술적 시민성 발현으로 시작된 탐라합창단이 끼친 긍정적 영향의 결과이다.

1980년대에는 이전 활동했던 합창단이 대부분 해체되고 YMCA 남성중창단, YWCA 어머니 합창단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중심이 된 아카페 중창단, 아가페합창단이 새롭게 창단되었으며 아가페합창단은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의 특징은 불교 합창단이 출현이다. 바수밀다 합창단, 브루나 합창단 연꽃 합창단이 창단되어 활동하였지만, 활동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새롭게 창단된 일반 합창단은 끌리오 합창단, 서귀포YWCA 합창단, 마올아가페 앙상블, 솔렘남성중창단, 칼리오페ob중창단 등이다. 이외에 탐라합창제 참가를 위해 일시적으로 활동했던 합창단이 있다.

1962년 최초 탐라합창단이 창단된 이후 2000년 이전까지 활동했던 합창단의 수는 모두 20단체가 채 되지 않는다. 그 이후 소수의 합창단이 활동과 해체를 반복하다가 최근 급격히 그 수가 늘어나 제주 전 지역에는 현재 50여 합창단이 활동하고 있다.   오승직 지휘자 /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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