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봉(33)_이옥자 수필가

이옥자 수필가
이옥자 수필가

추석 전, 선산에 풀 베러 간 김에 시어머니께 용도변경을 신청했다.

무슨 심사이었을까?

시퍼렇게 활동하시던 70대 말 볕 좋은 가을날 콩을 두드리다 말고 덩드렁마께는 큰 며느리 줘사키여! 난 시집왕 살멍 족숟가락 호나 물려받지 못 행 살아도 잘만 살아졈져.”라고 하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수가 없을 만큼 황당하였다. 콩장만을 마무리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집으로 온 덩드렁마께(농사용 방망이)는 보일러실 구석진 자리에 몇 년을 묵었다.

80대 초 교통사고로 7여 년을 누워계시다가 유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돌아가셨다. 그 많은 굴무기(멀구슬나무), 사옥이(벚나무)궤는 따님들에게 가고 며느리들은 훗날 물려주신다는 언약만 하셨다.

넉넉한 나이 덕분인가 싶다. 상처는 치유의 흔적으로, 내게서 떠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게 있는 것, 내게로 오는 것에 감사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인생의 빛과 어둠이 녹아든 양 만큼 적절한 빛깔과 향기를 띠는 것인가 보다. 평범한 것들의 가치를 인식하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게되는 모양이다.

메밀 농사를 짓고 무엇으로 타작을 해야 하나 별별 궁리를 다하다가 보일러 구석에 묵고 있는 마께가 떠올랐다.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타작을 하며 시어머니께 죄송하였다. 그때의 내 심뽀가 콩알만 해 이런 것을 왜 물려주는 것일까?”라며 너무 야속하고 서글펐다. 평생 메밀과 콩 타작이나 하며 살라는 눈에 보이는 메시지 같았다.

타닥타닥 마른 가지가 부서지며 나오는 메밀을 보며 신이 났다. 내가 가꾼 메밀로 빙떡을 만들고, 묵을 쑤고, 수제비를 할 생각에 으쓱하였다. 껍질은 아들의 베개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음으로 끝이 났다.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도정 가능한 방앗간이 서귀포에 없었다. 제주시 한 군데 있기는 한데 일부러 작정하고 가야 하는데 날만 넘기며 창고에 잠을 자고 있다. 마께 쓸 일을 찾았다. 약이 된다는 검정콩을 어렵게 심어 수확해 마당에 며칠 볕 쪼여 바삭해지자 모아놓고 타작했다. 콩알이 튕겨져 나오며 검정 알들이 쌓여갔다. 시할머니가 물려주신 되악새기로 쭉정이들을 불리자 반짝반짝 검정콩이 탄생하였다. 순전히 덩드렁마께 공이다. 예순 중반에 며느리가 어설프게 콩 타작을 하는 것을 보셨다면 무엇이라고 하셨을까? 칭찬에 인색하시고 늘 비교로 며느리에게 스트레스를 주셨던 시어머니인데 몹시 그립다.

마음이 원래부터 없는 사람은 바보이고 가진 마음을 버릴 줄 알면 된 사람이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고 당당한 며느리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꾸준함을 이길 재주는 없다고 했지만 이제 메밀도 콩도 그만할 생각이다. 마침 빨래방망이가 부러져 덩드렁마께를 임시방편으로 사용해보니 듬직한 것이 옷의 구정물이 확확 빠져나가는 모양새다.

덩드렁마께는 빨래방망이가 되었다. 잘 간직했다가 며느리에게 물려줄까 잠시 고민했었다. 우리 며느리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무용지물이겠다 싶었다.

내가 열심히 사용하면 용도변경을 해도 흔쾌히 줘 부러신디 임재가 알앙 허는거여.”라고 주인이 알아서 잘 쓰면 된다고 하실 것이다. 시어머니가 물려주시지 않아도 많은 것을 갖고 사용하고 있다. 특히 조각보. 삼베옷. 가방. 장신구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시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제사, 명절에 삼베옷을 입고 음식에 조각보를 덮고 옛날 놋그릇을 사용한다. 시어머니 돌아가시며 영혼을 달래는 굿을 하며 유품은 모두 태우도록 했다. 적당히 태우고 집안 곳곳에 두고 사용하며 왠지 평안하여진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부지런에 재주가 좋으시며 적극적이셨던 시어머니를 은연중에 닮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물건들도 사유가 깃들어있으리라 여겨진다.

시어머니가 왜? 큰며느리만 미워하시나 속상했던 지난날들이 언제인가 싶다.

가신 지 꽤 지났지만 곳곳에 시어머니 물이 잔뜩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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