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봉(34)_서정문 수필가

서정문 수필가
서정문 수필가

서귀포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서귀포에서 성산일출봉 방향으로 올레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가 아무 곳이나 차를 세우고 바다로 내려간 일이다. 어느 곳에 가도 바로 아름다운 바위와 시원한 바다를 손에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쉽게 바다에 손을 담글 수 있고, 그렇게 바로 너른 바다를 가슴에 안을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비단 그곳 외에도 제주도는 대부분 지역이 그렇게 쉽고 빠르게 아름다운 바다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 지천이었다.

바닷가 바위에 앉으면 몰려와 발아래 바위에 부딪히며 만들어내던 파도의 흰 포말들. 아리도록 맑고 푸른 바다. 그 바위에 앉으면 세상사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무념무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옛날 근무했던 강원도 양양 지역을 갈 기회가 있었다. 양양 역시 바다가 있고 산이 있어 늘 가고 싶은 곳이다. 동해바다가 주는 그 청청하고 상쾌한 기운은 절로 가슴속까지 다가와 먼 길 달려온 나그네의 마음을 잡기에 충분했다. 해변 바닷가를 달려가면서 멈춘 곳은 지인이 알려준 바로 능파대가 있다는 마을. 옛날 근무하던 때 알지 못했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BTS가 음악앨범 사진을 찍었다는 작은 간판이 계단 입구에 서 있었다. 화보촬영을 한 곳이라는 바위. 바닷가에 돌들이 얼마나 예쁘게 생겼던지. 바다가 보이는 구멍이 숭숭한 바위. 그 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여럿이었다.

능파대는 국가지질공원으로 강원도 고성 문암 해변을 지나 해변 쪽에 있다. 네비를 켜고 가면 네비 끝나는 곳에서 조금 더 안쪽을 가도 차를 주차할 수 있다. 그 앞에 바로 계단이 있고, 거기 BTS가 왔다 갔다는 간판이 붙어있다. 그 계단을 오르면 바다가 보이면서 능파대의 곰보바위들을 만날 수 있다.

먼저 왼편을 가보면 좁을 길에 뭉크처럼 구멍이 세 개인 바위도 볼 수 있다. 왼편을 보고 나서 오른쪽으로 가면 이전에 병사들의 통로로 사용되었던 것인지 좁은 계단 흔적이 보인다. 어두운 밤에 조심조심 바위 사이를 돌아 경계를 서고 순찰을 다녔을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누군가 바위에 이름을 새겨둔 곳도 있다. 바닷가 바위에 앉아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바위에 흔적을 남겨 놓고 싶어서였을까. 옛날 조상들도 이곳에 앉아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 즐겼을 터. 그곳에 앉아 그 숨결을 느껴 볼 수 있었다.

능파대를 보면서 제주의 바닷가가 떠올랐다. 어디를 가도 바로 바다로 다가갈 수 있는 절경의 바닷가. 어쩌면 너른 품을 언제나 벌리고 넉넉하게 안아주겠다는 듯 곳곳이 가슴을 열어두고 있었다. BTS가 제주 바닷가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멋진 풍경이 고스란히 담길 것임은 확실하다. 어느 누가 그 바닷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그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풍경은 인생샷이 될 것이 틀림없으리라. 거기에 배경으로 한라산이 보이고, 노란 귤이 살짝 보이기라도 한다면 그 가슴 벅찬 풍경은 어찌 진한 감동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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