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전 1970년 12월 15일 새벽. 먹고 살기 위해 여객선에 몸을 실었던 서귀포 시민이 차디찬 겨울 바닷속으로 스러졌다. 우리나라 최대의 해난사고로 기록될 만큼 끔찍했던 남영호 침몰 사고가 지난 15일 53주기를 맞았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사망자 수가 파악되지 않는 등 사고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남영호 침몰 사고는 대한민국 정부의 무관심으로 수면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각종 기록과 당시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배가 기우는 동안 남영호는 무선으로 수차례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한국 해양경찰은 12시간 가까이 현장에 구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 당일 오전 8시 25분경 인근을 지나던 일본 어선이 최초로 현장을 확인하고 구조에 나섰다고 한다. 이어 일본 해상안전부 제7관구 소속 ‘구사가키’ 순시선이 출동해 소수 생존자를 구출했다. 한국 해경이 구조에 나선 것은 사고가 발생한 지 12시간이 지난 후였다.​ 일본 어선에 의해 구조된 8명과 한국 어선에 구조된 1명, 한국 해경이 구조한 3명을 포함해 생존자는 12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71년 부산지방해난심판원 재결문에는 323명 사망, 15명 구조로 기록됐다. 남제주군 조난 수습 대책일지에는 326명 사망, 12명 구조로 기록됐다. 5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확한 사망자 규모가 없다.

정확한 사망자 규모를 파악하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영문도 모른 채 차디찬 바닷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맞서다 생을 마감한 서민들을 위무하는 것도 미흡하다. 그나마 서귀포시 주최·주관으로 매년 남영호 침몰 사고일인 12월 15일 남영호 참사 위령탑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며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남영호 참사는 인재라는 것이 당시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사람을 더 태우고, 화물을 더 실은 것이 침몰 원인이었다. 당시 정부의 대응은 202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민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53년이 지난 현재도 대한민국 정부는 남영호 침몰 사고 희생자 곁에 없다. 53년이 지났지만, 사망자 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 누구를 처벌하고,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53년 전 차디찬 바다에서 홀로 죽음의 공포와 맞섰던 희생자와 유족을 이제라도 위로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대한민국 영토를 지키는 것이다. 53년 전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진실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의 한을 달래는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남영호 침몰 사고 이후 어떤 이는 부모를, 어떤 이는 자식을, 어떤 이는 남편과 아내를 잃고 반세기 넘도록 한 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