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

초등학교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집에 기타 한 대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당시 80년대에는 기타는 물론이고 악기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어서 다소 신기해 보였다.

한참을 무심코 지나치던 그 녀석에 어느 날 관심이 갔다. 그래서 한번 쳐 봤는데 도무지 소리가 나지 않아 에잇! 하고는 곧 내려놓고 말았다. 하지만 나의 승부욕이 발동하였다. 

서귀포 어느 서점에서 기타 교본을 사 들고 독학을 시작했는데 교본을 보고 하니 처음엔 순조롭게 진행이 됐다. C, G7 코드였으니 당연히 그랬을 법하다. 그러나 곧 난관에 부딪혔다. 공포의 F코드, 대부분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그 무시무시한 F코드다. 아무리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동네에서 기타 좀 치는 분께 찾아가 한 수 배우기도 했지만, 그 F코드는 도대체 소리를 주지 않았다. 그 서툶이 꽤 오래 갔다. 하지만 현재 그 F코드는 없다. 그냥 기타의 여러 코드 중 하나일 뿐이다. 왜 이게 그리 나를 애먹였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며칠 전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그 서툶을 보았다. 

팸플릿을 보니 서귀포 대신중학교(교장 홍향숙) 소속의 솔빛오케스트라 창단 공연이었다. 50여 명 되는 단원들이 첫소리를 내는데 바로 그 F코드의 환생이었다. 
하지만 단원들의 연주 모습은 어떤 대가 못지않게 진지했다. 면면을 보니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익숙한 단원도 있었지만, 아직 몇 걸음 못 간 서툶의 서툶을 보이는 단원도 꽤 보였다. 

첫 곡으로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였다. 행진곡 선율이 선명히 들려 오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연습이 있었음을 짐작게 했다. 두 번째 곡은 ‘모차르트’의 ‘장난감 교향곡’이었는데 전 악장을 단원 수준에 맞게 임재규 지휘자가 직접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약간의 소품과 익살스러운 타악기 연주로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몇 곡을 더 연주하고 나서 드디어 ‘캐리비안 해적’을 연주할 시간이 되었다. 이 곡을 기다린 이유는 올해 전국 학생 오케스트라 대회에 출전하여 금상을 수상한 곡이어서였다. 영상과 함께 꽤 그럴듯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첼로 도입부에 이어 웅장한 주선율이 나올 땐 마치 그 영화 OST를 듣는 듯했다. 물론 이 곡도 임재규 지휘자가 단원 수준에 맞게 편곡하긴 했지만, 전체적 분위기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마지막 무대는 교사와 학생의 노래 협연이었다. 학생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흉성과 두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습이 꽤 재능이 있어 보였다. 구사하는 기술로 보아 아직 서툶의 자리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보였다. 라데츠키 행진곡과 교가를 끝으로 모든 연주가 끝났다.

누구든 처음은 있다. 그 처음은 반드시 서툶을 동반한다. 그 서툶이 쌓여 지금의 익숙함이 된다. 만약 그 서툶이 없다면 현재의 익숙함도 없다. 

이번 솔빛오케스트라 연주는 그 서툶의 시작이다. 음정, 박자, 리듬 등 기술적으로 어느 것 하나 익숙하다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익숙함을 위한 아름다움이다. 대부분 단원은 어느 날 익숙함의 경지에 오를 것이다. 서툶이 주는 선물이다. 

그 F코드가 멋진 연주의 출발이듯 오늘, 이 서툶은 어느 날 멋진 교향곡 연주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이 서툶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오승직 지휘자 /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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