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117)

입구(入口)를 가리키는 정겨운 제주말은 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엉또폭포의 엉또는 작은 동굴을 뜻하는 말인 과 입구를 뜻하는 말인 가 합쳐서 된 말로, ‘가 거센소리로 발음되어 엉또가 된 것이다.

당오름에서 바라본 도너리오름
당오름에서 바라본 도너리오름

오름의 위치와 이름의 유래

이번에 소개하는 도너리오름은 도가 넓다는 뜻으로 도너리라고 불리게 된 오름이다.

도너리오름은 안덕면 동광리 지경의 오름으로, 동광 육거리에서 한창로를 따라 한림 방향으로 가다가 도로 서쪽편으로 높이 솟아보이는 오름이다.

이 오름은 북서쪽 방향으로 터진 말굽형 굼부리를 오름의 입구로 보아서, 입구가 널찍하다고 하여 도가 넓다는 뜻으로 도너리라고 부른다. 다른 의미로는 오름에 돌이 많이 있어서 돌오름이라고도 하며, 예전에 이 오름에서 멧돼지가 내려왔다고 하여 돼지를 뜻하는 제주말인 을 써서 돗내린오름이라고도 하고, 말굽형 굼부리를 가지고 있는 오름의 모양새가 삼태기를 뜻하는 제주말인 골체를 닮았다고 하여 골체오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금은 오름 주변 가까운 곳에 마을이 없지만 예전에 오름 기슭에 도을동(道乙洞)이라는 마을이 있었음으로 인하여 도을악(道乙岳)이라고도 한다.

도너리오름을 찾아가는 길

도너리오름은 찾아가는 길을 동광육거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안내하면, 동광육거리에서 한창로를 따라 한림 방향으로 약 3.2km를 가면 탐나라공화국과 블랙스톤 골프장 사이로 들어가는 소로를 만나게 된다. 이 소로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약 880m를 나아가면 오름 입구의 목장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갈림길에는 도너리오름 출입제한 안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면 목장을 지나 오름 입구가 된다.

그러나 이 오름은 자연휴식년제로 인하여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오름이다.

필자는 서귀포 지역의 오름을 하나 하나 소개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서귀포신문을 통하여 자연휴식년제 오름 관리 주체인 제주특별자치도 기후환경국 환경정책과의 특별 취재 허가를 받아 탐방하게 되었다.

도너리오름의 지형과 오름 주변

도너리오름은 원형 굼부리와 말굽형 굼부리를 하나씩 갖고 있는 복합형 오름으로, 정상부의 북동쪽에 커다란 원형 굼부리가 있다. 이 원형 굼부리는 깊이가 약 40m에 달하고, 굼부리 둘레를 따라 걷는 거리가 약 400m 가량 될 정도로 상당히 넓은 편이다. 원형 굼부리와 정상부 사이의 능선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터진 말굽형 굼부리는 정상부 능선에서 아래쪽으로 가파르고 깊은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바깥쪽으로 갈수록 점점 넓게 벌어지다가 끝부분에 가서는 작은 알오름을 만나게 된다. 바깥쪽 경사면은 동사면과 북사면이 무척 가파르고 남쪽과 서쪽 경사면이 약간 가파른 편이며, 말굽형 굼부리를 감싸고 있는 좌우 능선은 뾰족하여 그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탐방로가 나 있으며, 탐방로를 오르내리며 내려다보이는 좌우 경사면도 무척 가파른 편이다.

도너리오름 정상부

도너리오름의 주변은 사실상 거의 전부가 넓은 곶자왈 지대이다. 도너리오름과 남서쪽의 남소로기, 서쪽의 문도지오름을 잇는 삼각지역은 넓은 곶자왈을 형성하고 있으며, 곶자와 지대의 부분 부분이 목장으로 이용되고 있거나 골프장이 들어서게 되었고, 일부 지역에는 골재 채취장이 되기도 하였다.

이 오름의 남쪽 곶자왈 지역에는 큰넓궤라는 자연 동굴이 형성되어 있고 잃어버린 마을 삼밧구석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큰넓궤는 4.3 사건 당시 인근 주민들이 대피하여 숨어 살았다고 하며, 영화 지슬의 배경이 된 곳으로 많이 알려지고 있다. 근래에 영화 지슬의 유명세를 타고 큰넓궤 찾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 인하여 신화역사로에서부터 큰넓궤까지 비포장 농로였던 곳을 넓혀서 아스팔트 포장을 하였다.

도너리오름 원형 굼부리

오름을 오르며

도너리오름 입구 목장에 들어서니 목장을 하면서 도너리오름을 관리하는 분이 계셔서 환경정책과에서 발급한 공문과 배낭에 부착한 오름 탐방 표지를 보이고 오름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그 분은 말을 사육하는 목장을 하면서 도축하는 말을 구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주변의 목장과 곶자왈 등에서 가끔 말을 도축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어떤 때는 유명 품종의 말까지도 도축을 하게 됨으로 인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50여 마리의 말을 구조해서 관리하여 키우고 있다고 하였다.

오름 북쪽편 알오름과 북서쪽 능선 사이의 탐방로 입구로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오름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오름 입구로 들어서니 목장 지역이어서 말똥이 가득하였다.

처음에는 소나무 숲이 능선을 따라서 쭉 이어져 있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능선을 따라 탐방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되어있는 오름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탐방객이 다니지 않는 관계로 탐방로가 뚜렷하게 나 있지는 않았지만,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되기 전에 깔려 있던 야자 매트들이 깔려 있어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거의 없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옛날의 탐방로를 찾아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주변의 식물들을 살펴보니, 찔레와 나무딸기 등 가시덤불들이 많이 우거져 있었고, 꾸지뽕나무, 보리수나무, 청미래덩굴, 소나무, 쥐똥나무 등이 가득 우거져 있었다. 소나무 숲을 지나서 능선 위로 올라오니 다시 여러 가지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혼효림이 나타났다. 비목나무, 상동나무, 예덕나무, 서어나무 등이 우거져 있었고, 청미래덩굴과 찔레가 많이 있었으며, 쥐똥나무도 까만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북서쪽 탐방로는 경사가 매우 가파른 편이었다. 그 가파른 경사 길을 가끔 멈춰서서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는 풍광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올라가야 했다.

오름 위로 올라오니 커다란 원형 굼부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굼부리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없이 작은 소나무와 쥐똥나무 등 키 작은 다른 나무들만 자라고 있어서 주변 경관이 시원하게 바라 보였다. 동쪽편으로는 한라산 정상부 방향인데 구름이 잔뜩 끼어서 정상부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아래 바라보이는 몇몇 오름이 눈을 덮어쓰고 있는 모습을 보아서 구름이 걷히면 한라산 정상부 중턱 이상이 모두 하얗게 멋진 모습으로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가까이에 당오름과 정물오름이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었고, 북서쪽으로는 금오름이 높게 서 있었다. 더 멀리로는 비양봉과 널개오름이 시원하게 바라 보였다.

굼부리 둘레를 따라서 북쪽 편으로 돌아왔다. 북쪽편 능선에서는 굼부리의 모습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굼부리 안에는 큰 나무들은 거의 없고 몇몇 작은 나무들만 자라고 있었으며 대부분은 풀이 자라고 있었다. 남쪽편으로 바라보이는 굼부리 안쪽 경사면에는 붉은 송이가 아직도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굼부리는 거의 완벽한 원형이었으며 남쪽편이 높고 북쪽 편이 약간 낮은 형태였다. 그리고 가장 깊은 곳까지의 깊이는 교래리의 산굼부리 굼부리의 깊이 정도로 보였다.

굼부리 바깥 능선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군부리 남쪽편 능선으로 나오니 도깨비 가지가 많이 보였다.

원형 굼부리와 정상부 사이의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걸어서 정상부에 이르렀다. 정상부에는 말뚝 표지석만 세워져 있었고 다른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은 큰 나무들이 없이 덤불들만 우거져 있어서 주변 경관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동서남북 거의 모든 풍광이 바라 보였으며 남동쪽 부분은 우거진 삼나무로 인하여 나뭇가지 사이로 몇몇 풍광들이 보이고 있었다. 특히 서쪽으로는 비양도를 비롯하여 바다가 넓게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바라보였다.

정상부를 지나 서쪽편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편백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편백나무 사이로 탑방로가 뚜렷하게 나 있었다. 얼마쯤 내려오니 휴식년제오름 훼손지 집중 조사 구역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이 박혀 있었다. 아마 이 부분이 가장 자연 훼손이 심한 지역이었었던 것 같았다. 오랫동안 휴식년제로 관리되어 온 까닭인지 송이 흙들이 드러나 있지 는 않았다.

오름을 다 내려와서 오름과 알오름 사이로 돌아나와 다시 처음 입구인 목장으로 나왔다. 목장의 허름한 창고 벽에 쓰여있는 글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자연은 약속이나 한 듯 어울어져 살아갑니다. 필요 이상으로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한천민 한라오름연구소장·동화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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