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

한여름 풍성함과 가을의 화려함이 지나면 그 늠름했던 나무엔 앙상한 가지와 가끔 붙어있는 볼품없는 낙엽만이 가여움을 더한다. 

봄이 오면 다시 새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외롭고 휑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눈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 기대한다. 

앙상한 가지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은 꽃을 피워 나무의 화려한 자태를 뽐내게 한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한 해 두 번 꽃을 피우는 것인가!

눈은 내려오면서 어디에 앉을 것인지 노심초사다. 그 자리는 그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땅바닥에 내려앉으면 사람의 발자국으로 만족해야 할지 모르며 물 위에 떨어지면 다시 물로 돌아가게 된다. 자동차 바퀴에 깔려 험한 말과 고통 속에서 치워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우내 볼품없고 외로운 앙상한 가지 위에 앉으면 생각 못 한 아름답고 화려한 눈꽃을 피워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다. 볼품없는 앙상한 가지와 갈길 모르는 눈, 어쩌면 이것을 알기에 간절히 서로를 원하고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시인은 앙상한 가지와 눈의 만남을 ‘눈꽃 송이’라고 표현했다. ‘하얀 꽃송이’는 바람이 살짝 흔들면 앙증맞게 춤을 춘다. 옷이 벗겨질라 조심조심 나부낀다. 

사실 이 둘은 비슷한 처지다. 볼품없고 앙상한 가지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이미 오랬고 가끔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은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 

하지만 둘이 만남은 서로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탈바꿈시킨다. 비록 그 영광이 오래가진 않지만, 그 자태를 뽐내기엔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사라진다. 눈은 다시 물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다음을 기약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도 그가 다시 올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미련은 없다. 

이런 아름답고 오묘한 관계가 비단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변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그 무언가들이 많다. 사람의 귀를 자극하고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는 그 소음들,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를 만나면 멋진 모습으로 개과천선 할 수 있다. 

바로 음악이다. 음악 입장에서도 뭔가 강력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많은 악기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 보지만 역부족이다. 그 순간, 시끄럽다고 알아주지 않던 그가 나타났다. 그로 인해 그토록 갈망하던 강력함이 채워진다. 솥뚜껑! 심벌즈! 하지만 순간 다시 사라진다. 언제 다시 올 줄 모른다. 언제 다시 올 줄 모르기에 그 강력함은 아름답고 가치 있으며 빛이 난다. 음악은 그 심벌즈의 강력한 한방에 힘을 얻는다. 

나도 그 누군가에게 한방일 수 있다. 나도 그 누군가를 만나면 최고의 아름다운 스타가 될 수 있다.지금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지 마라! 꼭 필요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 

자칭, 아무리 아름답고 고귀한 눈이라도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면 자동차 바퀴에 깔려 시커먼 바퀴 도장으로 수명을 가름하며, 아무리 강력한 심벌즈 소리도 음악 속에 있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음으로 사라진다. 볼품없다고 비웃음 당하던 그 앙상한 나뭇가지는 눈과의 만남으로 눈꽃이라는 형언할 수 없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고 힘없고 밍밍한 음악은 솥뚜껑이라고 놀림 당하던 심벌즈를 만나 힘을 얻는다. 

그러니 모든 게 필요한 지점이 있고 그 자리에 있어야 빛이 난다. 그것이 곧 아름다움이다. 
                                                                       오승직 지휘자 / 음악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