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118)

녹하지악에서 바라본 거린사슴
녹하지악에서 바라본 거린사슴

오름의 이름 중에는 동물의 이름과 관련하여 불리고 있는 오름들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 사슴과 관련하여 불리고 있는 오름들은 표선면 가시리 지경의 큰사슴이와 족은사슴이, 서귀포시 대포동 지경의 거린사슴 등 세 개의 오름이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거린사슴은 서귀포시 대포동 지경의 오름이나 주민들이 거주하는 대포 마을과는 한참 떨어진 중산간 위쪽인 1100도로의 서귀포자연휴양림에 근처에 위치해 있다. 서귀포자연휴양림 입구의 도로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오름이 거린사슴이다.

이름의 유래
이름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거린사슴의 이름은 사슴과 관련지어지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슴이란 제주에서는 사슴과의 동물인 노루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까닭은 제주에는 사슴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거린’은 ‘갈라지다’를 뜻하는 제주어인 ‘거리다’의 관형어로 짐작이 되어, ‘거린사슴’은 ‘거린’과 ‘사슴’의 합성어이다. 오름의 형태로는 사슴이 달려가는 모습이라고 하며, 한자표기로는 ‘절악(折岳)’, ‘아록악(  鹿岳)’을 쓴다. 오름 이름에 쓰인 절(折)이나 아( )에서 미루어 짐작해 보면 모두가 ‘꺾인다’, ‘갈라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오름의 형태나 한자표기의 뜻을 보아 사슴이 달려가면서 급하게 방향을 꺾거나 갈라진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거린사슴을 찾아가는 길
거린사슴을 찾아가려면 먼저 1100도로변에 위치한 서귀포자연휴양림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무척 쉽게 찾을 수 있다. 서귀포자연휴양림 입구에서부터 남쪽으로 약 550m를 내려오면 거린사슴 남쪽에 이르며, ‘거린사슴 전망대’가 있고, 그곳에 주차장이 넓게 마련되어 있다. 탐방로는 전망대의 주차장 서쪽 끝부분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름의 북쪽에서부터 탐방할 수도 있는데, 서귀포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남쪽으로 약 150m 쯤 내려가면 오름 북쪽편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임도가 있고, 임도를 따라 들어가서 한라산둘레길 돌오름길 입구를 지나서 계속 가면 약 650m 쯤 되는 곳에서 탐방로 입구가 있다. 그러나 북쪽편 탐방로 입구는 뚜렷하게 나 있지 않고 단지 나뭇가지에 묶여있는 끈 하나에 의하여 확인해볼 수 있고, 입구로 들어가서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고 물 없는 시내를 건너서 올라가게 되어 있다.

거린사슴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
거린사슴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

▲ 거린사슴의 지형과 식생
거린사슴은 서쪽으로 부드럽게 터진 말굽형 굼부리를 가지고 있는 오름이며, 봉우리는 정상부와 더불어 정상부에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진 곳에 또 하나의 낮은 봉우리가 있다. 그리고 오름 기슭에서 남서쪽 방향에 알오름이 하나 딸려 있다. 이 오름은 높이가 100m가 넘는 오름인데다가 남쪽편에서 바라보면 급하게 올라가 있는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방 어느 곳에서도 대체로 높이 솟아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 오름의 동쪽에는 갯거리오름이 위치하고 있는데, 원래는 거린사슴과 갯거리오름이 하나의 오름이었다고 하나 두 오름 사이로 1100도로가 개설되어 관통하게 됨으로 인하여 별개의 오름으로 나뉘게 된 것이라 한다. 서쪽에는 녹하지악이 위치하고 있고, 동쪽 자연휴양림 안에는 법정이오름, 북쪽에는 민머르오름이 서로 이웃하고 있다.

이 오름에는 오름 기슭을 따라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으며, 중턱 일부에는 삼나무가 자라고 있는 부분이 있고, 나머지 부분에는 벚나무, 산뽕나무, 서어나무, 사스레피나무, 생달나무, 단풍나무, 비자나무, 주목, 꽝꽝나무. 비목나무 등이 섞여서 혼효림을 이루고 있다.

오름 남쪽 기슭에는 1100도로가 급하게 휘어지는 곳에 거린사슴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고 주차장이 시설되어 있다.

오름의 바로 북쪽편으로는 시멘트 포장 공유임도가 있으며, 이 임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녹하지악 동쪽편 레이크힐스 골프장 주차장 쪽으로 이어지게 된다. 오름 북쪽에서부터 한라산둘레길 돌오름길이 시작되고 있고, 남서쪽의 알오름 둘레로는 알오름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임도가 있어서 이 임도를 따라 시원한 그늘 아래를 걸으며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 거린사슴 탐방
거린사슴을 탐방하기 위해 남쪽 기슭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날은 늦가을의 날씨가 화창하여 거린사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깨끗하고 상쾌하였다.
탐방로 입구 거린사슴 전망대 주변은 소나무가 가득 자라고 있었고, 전망대 남쪽 편은 벚나무 소나무, 폭낭, 산뽕나무 등 여러 가지 나무가 혼효림을 이루어서 자라고 있었다.

거린사슴 전망대 주차장 서쪽 끝부분에서부터 시작되는 탐방로 입구로 들어서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소나무가 우거진 입구로 들어서니 금세 소나무 숲은 사라지고 그 대신 벚나무, 산뽕나무, 서어나무, 사스레피나무, 생달나무, 단풍나무 등 여러 가지 나무들이 섞여서 자라고 있는 숲을 지나게 되었다. 탐방로는 지그재그로 꾸불꾸불 이어지며 올라가고 있었다.

중턱쯤에 다다르자 삼나무 군락 아래로 탐방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삼나무 지대를 지나서 정상부 가까이 이르러서는 다시 혼효림이 숲을 이루어서 나무들이 키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 지면 가까운 곳에는 투구꽃도 파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정상부에 이르렀다. 정상부에는 커다란 바위들 몇 개가 너럭바위처럼 앉아 있었다. 너럭바위 위로 올라서니 서쪽 전망은 우거진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동쪽과 북쪽 방향은 시원하게 터져서 전망을 바라볼 수 있었고 남쪽 전망은 나뭇가지 사이로 드문드문 전망이 바라보였다.

북쪽편으로 올려다보이는 한라산 정상부는 맑고 깨끗한 하늘 아래 그제 내린 눈으로 하얀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늦가을과 초겨울이 뒤섞인 풍경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영실 병풍바위가 역시 드문드문 하얀 눈을 쓰고서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옆으로 오백장군과 볼래오름이 솟아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병풍바위 옆으로는 영실 등반로가 희미하게나마 보이고 있었다.

백록담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방애오름, 더 밑으로 내려가서 어점이 와 시오름들이 뾰족이 봉우리를 내밀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고근산, 범섬과 그 주변에 파란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상부 너럭바위 주변에는 키가 작은 소나무들과 사스레피나무, 비목나무, 자귀나무, 가막살나무, 팥배나무, 꽝꽝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청미래덩굴과 인동덩굴들이 다른 나무들을 감고 자라고 있었다.

정상부 너럭바위 위에 서서 사방을 조망하다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니 봉우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야트막하고 낮은 봉우리가 있었고, 그곳에서부터는 탐방로가 내리막길로 꼬불꼬불 이어지고 있었다. 내려가는 탐방로의 북쪽 사면에서부터는 식생이 약간 달라져서 남쪽편과 정상부에서는 보이지 않던 주목과 비자나무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북쪽으로 내려가는 탐방로는 처음에는 뚜렷하게 나 있어서 찾아 내려가기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기슭으로 거의 다 내려가자 흔적이 옅어져서 사람들이 다녔던 곳을 겨우 찾아서 나올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뭇가지에 묶어 놓은 끈이 큰 이정표가 되었다.
북쪽 기슭을 다 내려오니 커다란 바위들이 울툭불툭 널려서 건천을 이루고 있는 회수천이 나타났고, 회수천 시내를 건너서 다시 올라서니 제주조릿대가 가득 우거져 있는 곳을 지나서 오름 북쪽의 임도로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임도를 따라 동쪽으로 가서 거린 사슴 전망대로 가기만 하면 되었다.

임도를 따라 1100도로 쪽으로 걸어가는데 나무들이 어떤 것은 붉게 어떤 것은 노랗게 물들고 있었고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하늘이 낮게 내려와서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도 없고 공기만이 시원하고 상쾌하였다. 아! 이게 바로 제주도 한라산의 가을이구나. 한라산이 가을이 온통 내 가슴으로 들어와 안겼다.

오름 남쪽의 거린사슴 전망대로 돌아와서 알오름 둘레의 임도를 따라 한 바퀴 돌고 나와 다시 전망대로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 전망대에서 시원하게 터진 조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섶섬부터 시작해서 서쪽으로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 절울이까지도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멀리 바라보는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가 서로 붙어 있는 듯 아련하였다. 

한천민 한라오름연구소장·동화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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