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

1995년 1월 17일 규모 7.3, 바로 일본 고베에서 발생한 대지진이다. 이때 대략 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도시는 파괴되었다. 특히 지진으로 인해 지대가 상승함에 따라 물이 빠져나가게 되었고 화재 진압에 쓸 물이 부족해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필자의 기억으론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고베의 희생자를 기리는 취지로 2024년 1월 25일부터 29일까지 독일에 본사를 둔 Interkultur(인터쿨트)는 Sing ’N’ Pray Kobe라는 타이틀로 국제 합창 축제 및 경연대회를 개최하였다. 올해가 세 번째이다. 프로그램은 프랜드쉽콘서트, 비경연 콘서트, 국제 경연과 각종 워크숍으로 구성되었다.

우리 신000합창단은 비경연 콘서트에 참가 신청서를 내고 25일 일본 고베로 출발하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지휘자인 필자를 불안하게 했다. 왜냐하면 국제 행사라는 게 서로 간 문화와 생각의 차이로 인해 현장에선 늘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주 시간이 다가오면서 서서히 불안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참가할 프로그램은 관객 없이 심사위원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음악가로서 필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음악에는 3방면이 있다. 작곡, 연주, 감상이다. 이 세 분야 중 하나만 빠져도 음악은 그 존재 가치가 거의 무의미 해진다. 작곡 없이 즉, 연주곡 없이 연주가 있을 수 없으며 아무리 좋은 연주를 한다 해도 듣는 감상자가 없으면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감상자인 관객 없이 공연을 한다는 건 예측할 수 없는 특수 상황이었다.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주최 측에 관객이 얼마나 입장할지 모르나 일단, 극장을 오픈해달라고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고베 공연 사진
고베 공연 사진

그런데 연주 당일, 고베 지진 만큼 강력한 소식이 또 들려왔다. 연주 홀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연주 홀이 아닌 리허설룸 같은 곳이라는 소식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중요한 정보를 사전에 주지 않은 주최 측을 원망해보지만, 이 상황을 바로 잡는 게 더 급했다. 인터쿨트 한국지사의 담당자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행부에서도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관철될 수 있게 단장님 이하 임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모두가 차분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참 지혜로워 보였다. 행사 감독관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주최 측에서 드디어 답이 왔다. 국제 경연 마지막 순서로 특별 공연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국제 경연은 약 15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참으로 기적 같은 결과였다. 국제 행사에서, 그것도 현장에서 이런 큰 틀에 대한 변경 요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드문 일인데 받아들여졌다. 최선의 결과였다. 인터쿨트 독일 본사와 한국지사와의 신뢰감이 있어 가능했고 다른 면에선 대한민국 국격이 많이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단장님 이하 임원들과 인터쿨트 한국지사 담당자의 간절함이 주최 측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다음날 드디어 공연을 위해 백스테이지로 이동하고 긴장된 순간을 즐기면서 무대로 입장하였다. 국제무대라는 중압감이 있을 텐데 단원들의 여유로운 연주 모습이 지휘자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여행 중 버스에서도 악보를 보는 모습을 종종 보았기에 좋은 연주가 될 것임을 이미 확신하고 있긴 했다. 모든 연주를 마치고 내려가려는데 사회자가 잠시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뭔가 준비된 순서가 더 있는 모양이었다. 이후 행사 총감독관, 심사위원장, 심사위원, 일본 합창협회 부회장이 무대 위로 올라와서 디플로마를 수여하며 축하해주었다. 국제경연대회 그랑프리 수상팀에게 하듯 기념 촬영도 하였다. 마치 우리 신000합창단을 위한 행사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 하는가! 어제까지 예상치 못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이젠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접을 받으니 말이다. 아니, 전화위복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 경연이라는 하나의 프로그램만을 신청했는데 초대 단장님의 노력으로 프랜드쉽콘서트도 하고 수준 높은 경연 관람도 하고 멋진 연주도 하고 거기에 이런 융숭한 대접도 받으니 말이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환상적인 무대를 뒤로하고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 자체보다는 문제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 이런 결과가 있기까지 차분하고 지혜롭게 대처하고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낸 단장님 이하 임원들, 인터쿨트 한국지사 담당자, 여행가이드, 그리고 어려운 상황임에도 말없이 기다려준 단원들께 찬사를 보낸다.
이후 일정은 말 안해도 예상하듯 웃음 가득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건강하게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오승직 지휘자 /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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