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제주 가시리’ (황금알, 2023)

책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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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가시리를 아시나요?

나에게 서귀포 가시리는 외가여서 익숙한 곳이라 제목에 눈길이 절로 이끌려서 읽게 된 제주 가시리시집은 충남 출신의 염화출 시인이 제주에 내려와 집필한 표제시인 제주가시리를 비롯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57편의 시가 수록 되어 있는 시집이다.

그리고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호병탁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들어 있어 시집에 대한 이해와 감상을 보다 더 전문적이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나 표제시인 제주가시리를 포함한 여러편의 시들을 읽고 있다 보면 학창시절에 배웠던 짧은 문장들로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하여 마음을 표현한 가사가 절제되면서도 애절한 마음이 잘 드러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한을 노래한 고려 여인의 이별 이야기인 고려 가요 가시리를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중의적 표현을 내포하고 있다.

시집을 천천히 음미하듯 읽다 보면 서귀포 가시리 마을의 풍경과 더불어 떠나간 님을 향한 애틋함과 그리움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를 소망하며 써내려 간 시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발자국 따라 굽이굽이 녹산로의 숲길 따라 걷는다 사월의 뇌관은 빙하기의 기압과 맞붙어 병풍으로 둘러싸여 있네 길 따라 가시리 풍차의 동쪽 마을 막막한 능선을 떠안고 동남쪽 저, 깊은 한라의 심연에 닿았네 아른대는 수평선 뒤로 하고 먼 지평선에 붙은 봄날의 사진, 갤러리 김영감은 보이질 않네

비경은 바람 부는 탐방 길에 몰려있네 맨발의 평원 큰 바람개비 장엄한 풍광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친 발걸음 네모난 의자에 앉아있네 인생사진 없는 나는 순례자, 오메기떡 청귤 에이드 이주민의 정착지에서 보드라운 속살을 내보이는 유도화는 지고 누군가 꺾어놓은 가지에 붉은 바람의 생채기가 아물어가네

잠시 머물다 가는 갑마장 길 조랑말과 꽃잎을 맞으며 노랑 물결 따라 걷는 탐라의 여행자 전망대 왼쪽으로 파란 손수건을 흔들다가 울퉁불퉁 어느 *모살밭 꼼지락거리는 꽃무릇도 부활초를 켜는"

* 모살밭 : 모래밭, 제주의 방언

- P13. 제주 가시리 전문 중에서-

어릴적 외가인 가시리 마을에서 돌아가신 외조부모님과 함께 보냈던 추억들이 떠올라 가시리 마을에서 보냈던 시절의 그리움을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가야 하기에 시어 한 구절 한 구절이 절절하고 구슬프게 들려왔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서정적 감수성이 짙게 물든 이 시집을 읽으며 서귀포 표선면의 가시리 마을속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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