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2월 창립주주총회
1996년 2월 12일 신문창간
창간 참여자 30~40대 주축
열린 신문 등 비전 제시해

1995년 12월 15일 서귀포시 서홍새마을금고에서 주간서귀포신문 창간 주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귀포신문 창립주주총회가 열렸다. 서귀포신문의 탄생을 대내외에 알린 역사적인 회의였다. 이후 서귀포신문은 1995년 10월 28일 가칭 주간서귀포신문 창간소식 제1호, 1995년 12월 7일 창간소식 제2호를 각각 발행하고 서귀포신문의 태동을 알렸다.

이어 1996년 2월 12일 창간호를 발행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귀포신문은 창간 준비 과정에서 ‘주간서귀포신문’을 제호로 사용했지만, 제호 등록 과정에서 당국의 유사 신문명 등록 불허 방침에 따라 ‘주간서귀포시민신문’으로 등록했다. 주간서귀포시민신문은 ‘서귀포신문’으로 줄여 표현했고, 28년 동안 서귀포신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간서귀포시민신문(서귀포신문)은 2003년 서귀포남제주신문으로 제호를 바꿨고,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서귀포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
서귀포신문 창립주주총회에서는 오홍식씨(당시 57세)를 회장으로 선출했고, 김원범씨(당시 36세)를 대표이사로, 진희종씨(당시 38세)를 상무이사로, 이영일씨(당시 39세)를 영업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이사는 김창홍씨(당시 39세), 현영모씨(당시 37세), 김경하씨(당시 33세), 고광성씨(당시 38세), 양성춘씨(당시 36세), 김창부씨(당시 41세), 박용창씨(당시 38세), 왕옥보씨(당시 36세), 이석창씨(당시 41세), 송형록씨(당시 37세), 김승률씨(당시 34세)를 선출했다. 감사는 송한은씨(당시 40세), 한일씨(당시 35세)를 선임했다.

특히 서귀포신문 창간 당시 이사와 감사 등은 오홍식 회장을 제외하고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30~40대 젊은 층이 당시 서귀포와 남제주군의 풀뿌리 언론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서귀포신문은 1996년 2월 12일 발행한 창간호를 통해 ‘열린 신문’ ‘밝은 신문’ ‘깨끗한 신문’을 신문 발행 방향으로 정했다고 공표했다.

서귀포신문은 창간호를 통해 “신문은 모름지기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기존의 언론에서 보여지는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가 바로 누구에게나 열려지지 못하고 폐쇄적이라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독자의 소리나 기타 지면을 통하여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열려 있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지면의 문제가 아니라 신문 자체가 얼마나 주민의 입장에 서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서귀포신문은 같은 문제를 다루더라도 주민이 어떤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으며, 무엇이 주민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여 기사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열린 신문’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서귀포신문은 창간 이후 1999년 5월 23일 제1회 서귀포신문사기 배드민턴대회를 개최했고, 10월 2일 제1회 서귀포신문사기 전도 직장볼링대회도 개최했다.
2000년 1월에는 제1회 전국동계훈련 청소년 축구대회를 개최해 올해 24회 대회까지 진행했다.

2004년에는 제1회 선생님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했고, 2005년에는 제1회 외국어 말하기 경연대회와 제1회 나니레와 함께하는 국악 여행 등을 마련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국내 문인들에게 제주어로 작품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제주어 문학상을 제정했다.

무엇보다 서귀포신문은 당시 서귀포시민과 남제주군민이 ‘십시일반’ 참여해 시민이 만든 신문이란 의미가 크다.

서귀포신문은 1995년 7월 서귀포신문 창간을 위한 서귀포 지역 젊은이들의 고민과 토론에서 시작됐다.

이후 8월 시장조사 및 사업 타당성 조사, 다른 지역 지역신문사를 방문해 기초자료를 조사했다. 9월에는 창간 발기인회를 구성하고, 창간추진 계획을 마련했다. 10월에는 (가칭) 주간서귀포신문 창간준비위원회와 창간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10월 28일 창간준비대회를 개최해 지방자치와 지역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고, 창간 소식지 1호를 발간했다. 10월 30일부터는 창간 주주 모집에 들어갔다.

창간 주주는 모집에 들어간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995년 11월 28일 544명으로 청약을 마감했다. 12월에는 창간 소식지 2호를 발행하기도 했다.

‘서귀포신문 제1호 창간 주주’는 김성건씨로, 김성건씨는 창간에 앞서 995년 12월 7일 발행한 ‘가칭 주간서귀포신문 창간 소식’을 통해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주간 서귀포신문의 주식 공모 소식을 듣고 동참했다”라며 “지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줘 사랑받는 지역신문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가칭 주간서귀포신문 창간 소식에 따르면 창간 주주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주주는 생후 4개월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칭 주간서귀포신문 창간 소식은 “창간 주주 중 생후 4개월 된 아기가 있어 화재다. 그 주인공은 고단비양으로, 평소 지역 여론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단비 엄마 현혜숙씨가 서귀포신문 창간 소식에 딸을 주주로 등록했다”라고 전하며 “이는 서귀포신문이 시민의 신문이어야 한다는 단비 엄마의 지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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