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호남 도시공학 박사

강호남 박사
강호남 박사

위원 여러분, 이번 안건은 어떻게 할까요?” 심의위원장은 심의위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윽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 이번 안건은 재심의결로 하겠습니다.”

재심의결이란 심의를 다시 받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합격이다.

구청 건축심의는 한 달에 보통 10건 내외다. 이 중 재심의결이 되는 경우는 통상 한 달에 한두 건 정도다. 대부분은 조건부의결로 통과한다.

심의제도의 목적은 세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는 기준에 맞는 계획을 유도하여 공공의 질서와 이익을 도모하고, 둘째는 합리적이고 안전한 건축물이 되게 하여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며, 셋째는 계획부터 유지까지 원만하게 진행되게 하여 행정 당국의 감독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심의에 참석해 보면 안건의 복잡함보다 보고자의 발표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계획이 무리한 것이라면 애초 통과하기 어렵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준비의 정도가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심의절차는 이렇다. 통상 1주 전에 위원들에게 연락을 한다. 참석 가능한 위원회가 구성되면 심의도서를 보낸다. 건축위원회에서는 사전검토 후 심의장에서 의견서를 작성하고, 건축소위원회에서는 미리 심의의견을 작성하여 제출한다. 도시건축공동위원회도 건축위원회와 같다. 심의도서로 심의설명자료, 건축설계도면, 구조검토서, 지반조사보고서 등을 보낸다. 위원들은 심의도서를 받고 내용을 파악한다. 그리고 전문분야별로 의견을 단다. 나의 전문분야는 건축시공이기 때문에 지하층 외벽공법, 지상층 외벽이나 최상층 지붕 슬라브의 시공에 대해 신경 쓰는 편이다. 구청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시공 중의 안전성과 시공 후의 유지관리가 관심 대상이다. 민원 우려가 있어서다. 특히 안전에 대해서는 각별하다. 그래서 나도 시공과정 주의사항은 미리 계획단계에서 반영되도록 보완하게 하는 편이다.

심의가 열리면 설계자의 발표시간이 있다. 그리고 심의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진다. 이때, 답변은 중요하다. 위원들의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지, 지적을 수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적절한 답변과 보완 약속으로 대응한다면 문제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과는 미궁으로 간다. 발표자가 퇴장하면 위원장은 이 안건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다. 이렇게 결정을 마치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간다.

심의발표는 중요하다. 계획안과 발표자 모두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발표는, 심의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위원들이 제한된 시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검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각 분야 전문가들인 위원들이 질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질문에 잘 대답한다면 좋은 것이다. 혹 준비가 안 됐다면 미흡했던 사항을 잘 반영하겠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방어적 자세를 취할 때 갈등이 생긴다. 이 갈등이 사소하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다. 위원회는 재심의결을 할 수밖에 없다.

심의를 받는다면 통과해야 한다. 재심은 최소 1개월 이상의 지연을 수반한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시간이 가는 것은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다. 비용이 늘어나면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원가 증액은 모두에게 손해다. 그러니 심의에 안건을 상정했다면 통과하는 것이 좋다.

심의통과 방법은 신뢰를 주는 것이다. 심의위원들과 감독 당국이 안심할 수 있도록 신뢰를 주면 된다. 신뢰를 위해서는 설계자, 발표자가 충분히 고민하면 된다. 간혹 위원회가 무리한 조건을 주문하는 경우나, 위원 개인이 자의적 해석으로 조건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은 지양되어야 하지만, 실제 위원회는 생각보다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통과 요령은, 그 위원회에 신뢰를 주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었다는 신뢰, 시공과정이 안전할 것이라는 신뢰, 시공 후 유지가 잘 될 것이라는 신뢰다. 실력 있는 설계자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심의 시간에 이런 결론이 날 때, 위원회는 마음이 가볍다.

, 그럼 이번 안건은 원안의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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