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윤 천주교 제주교구 생태위원장

오충윤 위원장
오충윤 위원장

제주의 봄은 곶자왈에서부터 시작된다. 3월이 오면 현무암 틈새에 뿌리를 내린 늙은 나무에도 생명이 움트고, 숨골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과 녹색 빛으로 물드는 이끼들이 먼저 계절이 변화를 느끼게 한다. 봄의 전령사 중에는 목련이나 유채 또는 벚꽃이 많이 알려졌지만, 겨우내 잠들었던 땅속에서 가장 먼저 고개를 갸웃 내미는 식물은 고사리일 것이다.

제주에서 고사리는 좀 특이한 취급을 받는다. 한반도에는 360여 종의 고사리가 자생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80% 정도가 제주도에서 자란다고 한다. 특히, 제주고사리삼은 세계적으로 선흘 곶자왈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멸종위기종이라고 하니, 종류가 많은 만큼 흔하기도 하고 귀하기도 한 식물이다. 제주도 고사리를 보면 새삼스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100년 전, 서귀포에서 식물 채집을 했다는 에밀 타케(Emile Taquet. 1873~1952) 신부를 말한다. 프랑스 출신 사제이자 식물학자인 그는 오름과 곶자왈에서 여러 종류의 고사리를 찾아내었다. 그중에서 최초 채집했다고 알려진 십자고사리(Polystichum taquetii.)반들고사리(Dryopteris taquetii Christ.), 그리고 섬잔고사리(Diplazium taquetii C.Chr)의 학명에는 라틴어로 채집자 이름인 타케티(taquetii)‘헌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작은 식물 고사리의 이름에도 우리 제주와 관련된 사연들이 숨어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조차 하다.

에밀 타케는 1902년부터 13년 동안 서귀포 홍로본당 선교사로 재임하면서,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식물 채집으로 왕벚나무 자생지 발견과 온주 밀감나무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한라산 구상나무 등 1만여 점의 표본을 유럽의 대학과 식물원에 보내 제주 식물의 가치를 알리면서, 우리나라 식물학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 현재 그의 채집본들은 영국 에든버러 왕립식물원 등 여러 나라에서 7,000점 이상이 확인되고 있는데, 그중에서 학명에 타케티이름이 헌정된 식물만도 125종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학계에서는 이러한 에밀 타케 업적을 한국 식물의 개척자로 높이 평가하고 있음에 비하여, 우리 제주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엊그제 내린 안개비로 이름 모를 풀꽃들이 기지개를 켜는 날, 덤불 아래 낙엽을 비집고 솟아난 예쁜 아기 손을 닮은 고사리를 보면 비로소 봄이 왔음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고사리 철, 우리 주변에 흔한 식물에까지 이름을 지어주었던 에밀 타케의 식물 컬렉터 여정과 생태 영성을 떠 올려 본다. 이제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우리 공동의 집 지구의 생태계 보전을 위한 모든 피조물이 소중함을 묵상하면서, 서귀포신문의 지면을 빌어 세계자연유산 제주의 가치를 빛낸 에밀 타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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