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순 / 수필가

밤하늘에 별 무리가 윤슬처럼 흐른다. 별들이 자장가 노래 부르듯 조용하게 속삭인다.

영롱한 별빛이 은은하게 마을을 비출 때면 스산했던 마음이 물결처럼 찰랑거린다. 총총한 별들이 비단실처럼 가늘게 이어지고 흩어진다. 어둠 속에서 빛을 가득 품은 밝은 별똥별 하나가 사라진다. 짧은 순간이라 마음 한구석이 아쉽고 아련하다. 한 줄기 빛이 사라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손을 모아 바램의 주문을 걸어본다. 별빛으로 젖는 밤이면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는다.

초등학교 시절이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누구랄 것 없이 평상 마루가 있는 집에 동네 친구들이 모였다. 그 위에 누워 반달노래를 부르고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별자리를 찾곤 했다. 반짝이는 별들과 은하가 머리 위로 쏟아지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의 전설로 설레기도 했다. 별빛과 은하수를 끌어안으며 놀던 여름밤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날 나는 어떤 별들을 찾았을까.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그리며 쳐다보던 그 별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눈물을 닦아주며 더 이상 아파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던 별일지도. 알퐁스 도데의 속의 목동과 스테파네트의 짧은 사랑 이야기가 그리운 별밤이다. 별빛이 상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 안아주는 듯하다.

새삼스레 나의 별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진다. 수많은 별 가운데 유독 하나가 어떤 인연이길래 나와 눈과 마주친다. ‘저 별은 나의 별하며 흥얼거린다. 어디서 다시 어떤 인연으로 만나랴. 그냥 돌려버리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유성 한 줄기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은하는 천억 개 이상의 별을 거느린 별들의 집합소라 한다. 백사장 모래알같이 붙어 있는 별 하나 사이도 너무 광활하다. 끝없는 은하계의 무수한 별들 속에서 지구는 한낱 조그만 돌멩이이며 인간이란 존재는 미미한 점 하나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화가는 인간의 존재를 점으로 화폭에 빽빽하게 수놓지 않았던가.

별똥별 같은 찰나의 인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젊은 시절이 조용히 지나간다. 뒤돌아보니 젊음은 별빛과 같은 열정의 시기였다.

알량한 지적 우월감과 자만심으로 사람들을 깨우치겠다고 자아도취에 빠지곤 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존중받을 수 없고 더 추해질 뿐이었다.

가난을 떨쳐버리고자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했다. 어쩌면 절대로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처럼 소처럼 일하며 살아왔다. 결국 몸이 망가지고 나서야 미련함을 깨닫는다. 아침이 밝아오면 별이 사라지듯 내 삶도 때가 되면 이별해야 할 것이다. 이젠 청춘의 꽃은 시들어 가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기만 하다.

이제 제3의 인생을 시작할 나이가 되고 보니 많은 생각으로 머리를 뒤흔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점점 작아지는 삶이 아니라 깊어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할까보다 무엇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괜찮은가를 생각할 시점이다. 그렇게 비움으로써 고요 속에 기쁨과 여유로 천천히 채워나가는 것이 70대 이후의 삶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의 만남도 어떤 인연으로 맺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인연이 다음 생에 어떤 관계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외면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오면 그때야 미처 전하지 못한 아쉬움의 사연들로 후회하기도 한다.

삶은 앞을 보면 길고 뒤를 돌아보면 짧기만 하다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하루하루는 고단하고 더디게 흘러가며 때로는 멈춰버린 듯하지만, 뒤돌아보면 빛바랜 앨범 속 사진처럼 희미한 기억들이 어제 일 같다.

막연했던 미래가 어느새 현재가 되고 그 현재는 또다시 과거가 되어 찰나의 순간으로 남는다. 주어진 날들을 밝게 화장하며 별빛처럼 살아가면 어떨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물기 머금은 바람에서 별빛 냄새가 난다. 나뭇가지와 꽃잎은 바람에 기지개를 켜며 바스락거린다. 나도 별처럼 반짝일 수 있을까.

눈물 한 점 같은 별빛이 제 몸 사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