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벨기에의 어느 양로원 이야

과연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서귀포가 정말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을 숱하게 해보지만 명쾌한 답은 잘 얻어지지 않는다. 국제자유도시, 관광중심도시, 문화예술도시, 교육명문도시 등등 헤아리기 힘들만큼 숱한 단어의 목표들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를 맞아 미래에 대한 전망과 비전이 더욱 강하게 요구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많은 혼란과 전망의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것은 우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 즉 복지사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주민들이 살기 좋아야, 그리고 그러한 삶의 질에 대한 만족감을 주민들이 느낄 수 있어야 그 속에서 문화이든 관광이든 교육이든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벨기에에서 들렀던 어느 양로원의 모습은 내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물론 벨기에는 유럽의 선진국으로 이미 1인당 GNP가 $26,000(우리나라의 거의 세배)를 넘어선 경제부국이며 중세 때는 영국,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의 강국으로 자리잡았던 국가이기도 하다. 또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렇듯이 사회의 노령화로 인하여 소위 실버산업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그렇긴 하지만 기존의 양로원에 대한 강한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그곳 양로원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우연한 계기로 벨기에에 사시는 어떤 할머니를 알게 되었다. 그 분은 연세가 74세(벨기에 나이)이신데, 그 분의 하루 일과는 주로 양로원에서의 봉사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어로 Ieper, 불어로 Ypres라 불리는 벨기에의 작은 소도시 이프레는 그 할머니가 사시는 도시이다. 인구는 약 3만 5천명밖에 안되지만 중세시대에 형성된 유서깊은 도시이다. 그 작은 도시에도 대학(College)이 있으며, 꽤 유명한 박물관이나 전통있는 가계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성당보다 더 큰 성당도 있다. 옛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구시가지는 말 그대로 중세 때의 화려했던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으며, 신세대(?)들은 주로 시내 외곽에 위치한 주택가에 산다.그 양로원은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다. 역사적으로 벨기에 인구의 대다수가 가톨릭이어서 더욱 그렇겠지만 그 양로원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양로원 전체 상주자는 약 1백명 정도인데, 그 중에 노인은 절반인 50명도 안된다. 나머지 절반 이상은 그들을 간호하고 보조하는 인력들이며, 자원봉사자도 많다. 결국 노인 한 분에 항상 두세명이 붙어 있는 꼴이 된다. 자원봉사자는 학생들이나 청년들도 많지만 내 친구 할머니처럼 나이 드신 분들도 많다. 그 분은 양로원과 붙어 있는 아파트에 사시면서 하루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양로원에서 보내신다. 또 그 분의 친구로 전직 변호사가 있는데, 그 분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양로원의 할머니들을 돌보신다. 그리고 때로는 법률에 관한 무료상담 등의 역할도 담당하신다. 건강한 노인들이 건강하지 않은 노인들을 돌보시는 것이다.양로원의 시설은 철저히 노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환자들의 불편정도에 따라 몇 등급으로 구분되어 있다. 치매증상이 있고 거동이 꽤 불편한 노인의 경우는 거의 세 명의 보조인력이 항상 따라붙는다. 그 분들의 취미생활이나 식사를 위해 모든 것이 지나치리만큼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다. 모든 화장실이나 복도 중간중간에도 너무 많을 만큼 비상벨이 붙어있다. 그곳 근무자들은 철저히 노인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행동한다. 말하는 속도도 걸음걸이도 노인들과 비슷하다. 결코 서두르거나 화내는 법이 없다. 내가 그곳을 방문한 시간 중에 한번은 식사시간이었는데, 접시 하나에 담긴 음식을 먹는 노인의 식사시간이 거의 두시간이다. 보조인력들은 그 시간동안 음식을 먹여주고 대화한다.그러나 그 양로원은 무료가 아니다. 아니 꽤 비싼 편이다. 모든 조건을 다 구비하려면 하루에 우리 돈으로 거의 20만원이나 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벨기에와 우리의 물가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싼 것은 사실이다. 그 양로원 입구에는 상세한 가격표가 붙어있다. 거기에는 아침식사를 포함할 경우 등 식사나 간식 등에 대한 다양한 선택과 보조인력의 필요여부나 숫자에 대한 선택, 여가활동에 대한 선택 등이 정말 상세하고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고, 그들은 마치 식당에서 음식을 꼼꼼하게 고르고 주문하는 그들의 문화마냥 자신들의 거주조건을 선택한다.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너무 쌀쌀하고 자본의 논리 같지만, 오히려 그곳 노인들에게 그것은 비용에 대한 잡음을 완전하게 없애주며, 동시에 그들의 선택을 넓혀주기 위한 배려의 차원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가장 놀란 점. 인구가 겨우 3만 5천인 그 도시에 그런 규모의 양로원이 세 개나 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서 과연 그런 모습은 얼마나 실현 가능한 것인지, 혹 그런 꿈이라도 꾸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답답한 생각에 젖었다.미래사회에 대한 전망과 비전을 세울 때,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들의 삶과 노후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김원범/본지 발행·편집인 제230호(2000년 9월 22일)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