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채식열풍

얼마 전 SBS에서 방영된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란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채식열풍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비록 담당 PD가 그 프로그램은 채식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 고기를 먹는데 대한 두려움과 채식의 효과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데 큰 기여를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재론의 여지없이 채식은 건강에 좋다! 특히 유기농으로 재배된 신선한 채소를 화식이 아닌 생식으로 먹는다면 그건 말 그대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조화로운 삶’의 저자인 니어링 부부나 인도의 간디는 하루 한 끼는 주로 생과일만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머지 식사도 주로 싱싱한 야채가 전부였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서 그녀는 채소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법과 가치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던 간디는 우리가 미각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아실현의 길, 진리탐구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건강이란 육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 건강이 더욱 중요하며, 몸은 다만 우리가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의 도구로서만 활용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갖는 가장 잘못된 지식 중의 하나가 바로 ‘단백질의 신화’이다. 특히 성장기 아동들에게 단백질은 필수불가결한 영양소이며, 이를 위해서는 고기와 우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이 말은 일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즉, 단백질이 필요한 영양소인 것은 사실이지만, 따라서 고기와 우유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분명히 비약이다. 고기와 우유만이 단백질의 공급원은 아니기 때문이다.수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영양상의 문제점이 나타난 보고는 아직까지 없다. 오히려 대부분이 그 반대이다. 필자도 거의 1년 정도 고기와 우유를 먹지 않고 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몸이 허약하다거나 특별한 영양상의 문제가 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더 가뿐해지고 식사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다만 여러 종류의 회식자리에서 다소 난처한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역으로 그만큼 우리가 고기식사 문화에 깊이 빠져 있다는 역설이기도 하다.우리 가족이 채식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여러가지이다. 거기에는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고 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데 작으나마 일조해야 한다는 윤리적, 도덕적 원인이 더 크다. 아이들도 이 점에 공감하기 때문에 그 흔한 돈까스나 치킨, 햄버거를 먹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공장처럼 소고기를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농장의 모습과 잔혹한 장면들, 그리고 그 수만마리 소들이 내뿜는 온갖 오물들과 메탄가스의 현장을. 또한 그 소들을 살찌우기 위해 소비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곡물들. 동시에 그 곡물을 생산해내기 위해 소비되는 엄청난 지하수와 환경오염. 실제로 우리 인간들이 소비하는 소고기를 생산해내기 위해 전세계 곡물의 거의 30%가 소비된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기아 때문에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다이어트 한다고 난리이고, 또다른 한편에서는 비만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며 아이러니이다. 따라서 윤리적, 도덕적으로 볼 때 우리가 진정 이웃을 생각하고 굶주린 대륙의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소고기를 생산해내기 위해 소비되는 엄청난 분량의 곡물들을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 그들도 살고 우리도 사는 길이다. 비만과 기아를 동시에 해결하는 가장 손쉽고도 빠른 길이다.전세계적으로 채식인구는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대학생의 거의 20%가 채식을 한다는 보고도 있다. 외국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어떤 식당을 가더라도(심지어 맥도널드같은 패스트푸드점에도)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세계적 추세를 감안할 때, 특히 고소득 외국인들이 채식주의자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주도 차원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즐겨 찾는 독특하고 다양한 채식메뉴를 개발하는 것은 무척 의미있는 전략일 것이다김원범/본지 발행·편집인 제298호(2002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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