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중의 문화엿보기<70>

차고 세일(Garage Sale)북 섬의 도시 오클랜드로 이사를 와서 집은 빌었지만 텅빈 이 집에 채울 것이 문제였다. 지난번 남 섬에서 임대한 집은 주인이 휴양 목적으로 지은 집이라 가구가 완비되어 있었지만 이번은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을 구입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새 물건으로 집을 채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형편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여기 일반 사람들이 이용하는 중고품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먼저 구입해야 할 물건의 항목을 적어 보았다. 그리고 지역신문 광고란에 실린 ‘차고 판매(Garage Sale)’란에서 가까운 곳을 골랐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마치 차고를 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자기 집의 차고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내놓고 파는 것을 말한다. 주차 자체가 생활 속의 스트레스인 한국에서는 자기 차고를 갖춘 주택이라고 하면 왠지 부유층의 상징인 것처럼 들리겠지만, 이곳에서는 집의 규모와 상관없이 자기 차를 주차시킬 차고라는 공간은 당연히 있어야 할 곳으로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자기 차고 문을 열어놓고 쓰던 중고 물품을 내다 파는 것은 가장 대중적이고 개인적인 판매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주로 차고판매는 토요일 오전 일찍 시작하여 정오 전에 다 끝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쓸만한 물건은 이미 다 팔리고 없기 일쑤다. 신문에서 주소를 받아 적고 지도로 찾은 후 차고 판매하는 집에 도착하면 주인은 어느새 차고 문을 열고 팔 물건들을 정렬해 놨다.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소파, 책상, 책장, TV 받침대 등의 가구들. 첫 집에서는 소파세트가 값싸고 마음에 들었다. 디자인으로 봐서는 한국의 70년대 연속극 소품으로 쓰면 딱 맞을 듯한 구식이었지만 잘 닦기만 하면 아직도 쓸만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앞으로 10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책상과 일인용 침대까지 합쳐서 300불(약 16만원)주고 샀다. 그 다음 집에 가서는 책장을 봤다. 4단으로 크고 깨끗해서 꽤 많은 책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90불 주고 샀다. 가격을 더 깎으려고 했지만 주인은 더 이상은 안되고 그 대신 우리 집까지 배달해 준다고 하기에 사기로 했다. 그럭저럭 발 품을 열심히 팔다보니 값싸고 좋은 중고 물품으로 지금 필요한 가구들을 구하고 나머지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찾아보기로 했다. 어제는 산 물건들을 깨끗이 닦고 세탁했다. 지난 때를 다 벗기고 새로 정리하자 이제 내 물건처럼 여겨졌고, 간간이 보이는 흠집들이 오히려 친근감을 주었다. 아마 이것이 중고 물품의 매력인 것 같다. 아내와 같이 이 가구들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이 가구들의 몇 번째 주인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전 주인도 중고로 사서 우리에게 다시 팔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가구들을 깨끗하고 소중히 다뤘을 것이다. 이것이 생활 속에 있는 참다운 재활용이라고 생각한다.제299호(2002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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