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봄날은 간다

생전에 친정 아버지께서 즐겨 부르시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봄날은 간다>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드라~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썩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아버지 입술을 막 떠난 그 노래 가락과 노랫말은 늘 내 귓가에 착 감겨들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봄은 늘 바람과 짝을 이루어 연상되었고 그 색깔은 연분홍빛이었다. 연분홍 치마를 입었으니 그 위에는 연둣빛 저고리를 받쳐입은 새색시였을까. 무슨 사연이 깊어 성황당길 휘어드는 봄바람에 치맛자락을 내준 채 넋을 빼고 서 있었단 말인가. 무슨 마술에라도 걸린 듯, 이 노래를 연신 속으로 흥얼거리며 노랫말을 곱씹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뿌연 봄바람이 미친 듯이 불던 지난 토요일, 감자를 또 심었다. 이번에도 역시 인부를 구할 수 없어 예정보다 시기가 늦어진 터였다. 며칠동안 공들인 덕분에 이장네 하우스 귤을 매달던 인부 여섯명을 고스란히 구해 1300평 정도에 감자를 심을 수 있었다. 비닐 하우스가 설치된 곳은 심는 것으로 끝내고 노지에는 종자 심은 위에 비닐을 덧씌웠다. 지난 해 겨울 감자 파종 때에는 신문지를 일일이 덮고 그 위에 비닐 씌우는 작업을 우리끼리 했는데 이번에는 인부들이 비닐 씌우기까지 거들어준다고 해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폭이 1m 20cm정도 되는 비닐롤에 파이프를 끼우고 양 끝에 밧줄을 묶어 한사람이 목과 어깨에 지탱하며 비닐을 덮어가면 다른 사람들은 양쪽에서 흙을 덮는 일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 한 분이 ‘소’가 되겠노라고 자청하고 나섰다. 비닐롤이 감긴 밧줄을 끌고 비닐을 덮는 일이 바로 ‘소’가 쟁기질하는 일과 비슷하여 붙여진 말인 듯 싶었다. 보기에는 그다지 어려워보이지 않는데도 한 도랑만 돌아오면 그 분은 거친 숨을 내쉬며 기진맥진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한번 해볼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이장 부인이, 농사를 지으려면 남 하는 일은 다 해봐야 한다며 내게 ‘소’일을 해보라고 권했다. 흔쾌히 밧줄을 어깨에 감고 뒷걸음질을 치는데, 아뿔싸! 이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세 개의 이랑이 다 덮일 수 있도록 맞춰가며 비닐을 덮어야 하니 뒷걸음질을 쳐야 하고 그러자니 발걸음은 더뎌지고 끌어야 하는 비닐롤의 무게는 내가 감당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았다.미친 듯이 불어대는 봄바람 흙바람 속에서 나는 한 마리 소가 되었다. 물론 그 어른과 교대로 했으니 내가 다 한 것은 아니었지만 콧구멍이 까맣게 되도록 흙먼지를 마시며 소가 되는 기분도 나쁘진 않았다. 힘든 일은 그만큼의 보람을 남기는 법. 팔다리는 이미 천근만근이 되었지만 입안에선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가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랫말의 주인공이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사랑하던 님의 ‘알뜰한 맹세’에 가슴이 멍들어 가는 봄날이 서러울테지만 한 마리 소가 되어 봄날 감자를 심고 있는 내게야 아직 깨어지지 않은, 옹골진 수확을 기대하는 ‘알뜰한 맹세’가 있으니 서러울 게 뭐란 말인가. 불현듯 내 가슴 속을 후벼파듯 가득 채워지는, 아버지의 노래 가락. 아버지는 생전의 애창곡을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막내딸이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생뚱맞게 희망섞인 가슴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듣기나 하실까. 아, 이렇게 내 생의 봄날도 가고 있는 게다.조선희/「마흔에 밭을 일구다」의 저자,남제주군 표선면 토산리제305호(2002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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