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집을 찾아서] ③ 서양화 · 판화가 김연숙의 선흘리 작업실

오가는 길 창 밖 자연미에 눈뜨게 돼
네모반듯하다. 군더더기라곤 없다. 집을 빙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돌담과 정주목을 흉내 낸 울타리마저 없었다면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는 집. 널따란 마당만 아니라면 돔베(도마)위에 올려놓은 한모 두부를 닮은 집. 그래서 오히려 예술가의 집이 될 운명을 타고 났을까?
제주시 선흘리 거문오름 탐방로 초입에서 만난 서양화가이자 판화가인 김연숙 화백(46)의 작업실이다. 김 화백의 말에 따르면 애초에 이 집을 작업실로 삼을 계획은 아니었단다. 그저 노후에 살만한 집터를 고르러 다니던 중 우연히 이 집이 눈에 띄었다는 것. 지금처럼 널따란 마당이 딸린 것도 아니었고 땅 넓이에 딱 맞게 뙤똑하게 앉은 이 집이 김 화백의 눈에 든 것은 오로지 여느 시골집과는 달리 천정이 높다는 이유 하나였다.
지은 지 8년쯤 되는 헌 집도 아니고 새 집도 아닌 ‘적당히 나이 먹은’ 이 집을 사들여 도배하고 바닥을 깔아 작업실로 쓰기 시작한 것이 2005년 8월. 마당이 없어 서운하던 차에 집 앞의 국유지를 임대해 흙을 돋우고 잔디마당을 꾸밀 수 있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과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방 세 개짜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디 평범한 주택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어느 공간에나 김 화백의 작품이 놓여있고 어느 공간에서나 회화와 판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것.
일단 가장 넓은 안방은 회화방이다. 바닥엔 물감과 붓들이, 벽에는 화가의 손길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화폭이 세워져 있다. 뭔가 꿈틀거리는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다. 그 옆방이 판화방. 프레스기를 비롯해 판화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고요하고 묵직한 이미지가 안겨오는 공간이다.
하지만 래커와 같은 화학물질을 다뤄야 하는 판화 작업은 실내에서만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제주 전통 가옥의 물 부엌에 해당하는 실외공간도 없어선 안될 공간이다. 주방의 양쪽 벽은 미술 서적 등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서가가 차지하고 있다. 보기에는 평범한 살림집이지만 속내는 안팎으로 꽉 찬 작업실이다.
이처럼 실내를 꼼꼼히 둘러보고 마당에 나서서 다시 한번 집을 바라본다. 이제는 아까처럼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네모반듯한 매무새가 자투리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바지런한 예술가를 품기에 안성맞춤으로 여겨진다.
“주거지와 거리가 멀어 일단 한번 들어오면 작업에 몰입할 수가 있어서 좋아요. 아이들이 어릴 땐 집 근처에 작업실을 두었는데 편리하기도 했지만 워낙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다 보니 작업에만 몰두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작가에게 작업실이란 일단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아무에게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잡념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혼자서 작업을 하는 공간...그래서 작업실은 사유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잉태하기까지,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의 철학적 사유를 충분히 즐기고 되새김질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지요.”
어떤 날은 작업실을 찾긴 찾았으나 머무를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 그냥 멍하니 앉았다 갈 때도 있지만 그 ‘무위도식’과 휴식의 시간이 행복하기만 하다고.
김 화백이 꼽는 선흘 작업실의 미덕은 한 가지 더 있다. 오고가며 길에서 보내는 30분 남짓한 시간이 소중하기 그지없단다. 시내에 작업실을 두었더라면 시간은 절약되었겠지만 창밖의 풍경과 계절의 변화를 그렇게 가까이 느낄 기회는 없었을 터.
“혼자서 차를 타고 오가는 시간은 오롯이 자연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나무와 풀이 향기를 내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지요. 이곳에 자리를 잡은 뒤 부쩍 회화 쪽을 그것도 풍경 쪽을 많이 생각하고 구상하게 된 것도 선흘 작업실 영향이 컸습니다.”

“거문 오름과 선흘 마을, 회화로 풀어내고파”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주로 판화를 해 온 탓에 판화가로 더 알려진 그가 요즘은 풍경화 작업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작업실과 퍽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거문오름에 오르기도 하고 선흘 마을 주변을 산책하면서 이 풍경들을 고스란히 ‘회화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에 불이 붙었다. 내년 전시회를 목표로 부지런히 작업중이란다.
회화와 판화라는 양 날개로 균형감 있는 날갯짓을 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 그 두 장르는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같을까?
“판화는 오랫동안 해오던 작업이라 일단 익숙하지요. 크기 조절도 자유롭고요. 제판과정이나 프레스 과정이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오랫동안 작업을 하다보니 이제는 요령이나 지혜를 터득했지요. 회화는 전공분야이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2005년이라 아직 내 스타일을 찾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적어도 10년은 몰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지난 2001년 가진 판화전 <어떤 풀>의 도록에 판화 작업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판화를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게을러서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목판 꼴라그라프였습니다. 목판을 깎고 그 위에 젯소를 덧입히고 또 깎고 덧입히고 래커 칠하는 과정에서 판이 만들어지면 잉크를 입히고 닦고 롤러로 다시 잉크를 묻혀 찍고, 수정하고 다시 찍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나옵니다. 때론 힘들고 지겹기까지 한 이 과정에서 판화에 대한 회의가 일기도 하지만 한 작품을 여럿이 나눌 수 있다는 것 말고도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훌훌 털어버리려 해도 쉬 버리지 못 하는가 봅니다.
현재 제주관광대에서 강의도 맡고 있는 그는 보통 한 해에 개인전과 그룹전을 포함해서 대여섯 번의 전시회를 갖는다. 그것도 회화와 판화 두 장르를 오가면서 전시를 하는 까닭에 쉴 틈이 없다. 오는 11월에는 파리에서 열리는 다국적 화가들로 이뤄진 기획 초대전에 회화로 참여할 예정이라 요즘은 1주일에 4,5일을 선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문화공간 제주아트에서 가진 판화전 <눈물>을 통해 “나는 세상 사람들이 보다 많은 눈물을 흘리기를 바란다. 눈물로써 생명을 보듬고 눈물로써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그런 눈물의 힘을 나는 믿는다. 우리의 눈물이 나와 너, 세상을 향한 건강함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며 눈물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뒤집어버렸던 김 화백.
앞으로 회화 작업을 통해 그는 또 어떤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게 될 것인가? 우리 안에 고여 있는 어떤 부정적인 요소들을 그 밝고 활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힘으로 바꾸어 줄 것인가? www.kysart.com
<조선희/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