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제주군 역사·문화 유적 탐방/<

서민적 느낌주는 돌하르방 대정현·정의현에 24기 현존 대정현과 정의현의 5백년 도읍지였던 대정읍과 성읍리에는 돌하르방이 각각 12기씩 24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리고 대정읍 보성리에는 만들다 만 미완성 형태의 1기가 길가에 뉘어져 있는 형태로 현존하고 있다. 제주도 전체로는 45기가 남아있다.제주목 당시의 돌하르방에 비해 산남 지방의 돌하르방은 평균신장이 작은 특징을 보인다. 제주가 187㎝이고 성읍 141㎝, 대정 134㎝로 대정현 돌하르방 평균신장이 가장 작았다. 제주목 지역의 돌하르방들이 상대적으로 권위적이고 귀족적인 세련된 느낌을 주는데 반해 대정현과 정의현의 돌하르방들이 상대적으로 친근하고 서민적인 느낌을 받는 것은 이 키의 차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대정현과 정의현에 있는 24기의 돌하르방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현재 제작되는 돌하르방이 천편일률적인데 비해 이 돌하르방들의 모습에서는 인간적인 체취가 물씬 배어난다. 전체적으로는 대정현 돌하르방들이 손바닥을 편듯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비해 정의현은 주먹을 쥔 듯한 양상이다. 또한 몸통 처리에서 대정현은 원통형을 기본으로 제작됐고 정의현은 평면성을 띤 원통형이다.24기의 돌하르방들은 둥근 모자를 쓴 모습, 모자를 푹 눌러 쓴 듯한 형상, 눈끝이 올라간 듯하며 다부진 인상을 주는 얼굴, 턱밑에 수염과 흡사한 것이 표현되어 군관같은 느낌을 주는 것등 저마다 다양한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정현 남문 밖에 세워졌던 4기중 2기에는 수염 또는 옷주름과 같은 굵은 태를 표현하고 있는 등 가장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또한 정의현 남문밖 돌하르방 2기는 2현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뒷면을 다듬질 해놓고 있다.대정현에서 발견된 미완성의 돌하르방과 안면을 조각하다가 실패하여 뒷면에 다시 조각하여 완성한 돌하르방의 존재는 당시 돌하르방들이 그 지방 석공들에 의해서 제작됐음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그 당시 석공들은 정형화된 틀보다는 개개인의 다양한 느낌과 지역마다의 특색을 바탕으로 개성이 넘치는 표정을 창조해냈을 것이다. 5백년을 뛰어넘는 예술 혼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도 옛 석공들의 번득이는 실험정신과 창조성이 이들 돌하르방에 표현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제주도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서 돌하르방들이 하나같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꼿꼿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안타까운 현실이다. 개성과 창조성이 결여된 관광상품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돌하르방’이란 말은 해방이후부터나 통용되기 시작한 명칭이고 예전에는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등으로 불러 왔다. 1971년 제주도문화재위원회에서 논의 끝에 돌하르방이 문화재 명칭으로 채택된 이후로 급속히 확산되어 통칭화 되었다.제주도의 1목 2현의 성문 밖마다 마주보는 한 쌍으로 세워졌던 돌하르방들의 기능은 크게 수호신적 기능과 주술종교적 기능, 위치표식 및 금표적 기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북방( 몽고 등지)과 남방( 인도네시아 등지)의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우리나라 내륙지방의 ‘벅수’나 장승의 영향을 받아 도내지방에서 변천되어 갔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현재 대정현의 돌하르방들은 위치가 심하게 바뀌었고 정의현의 경우도 점점 이동되는 추세인데 제대로운 이해를 위해서는 원래의 위치에 옮기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사진설명>대정현 남문밖에 세워졌던 4기의 돌하르방 가운데 2기. 이들은 현재 추사관 입구에 위치해 있다.오윤정/남제주군 관광공보과 홍보연구원제318호(2002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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