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비경탐방 16] 대정읍 안성리 수월이못

“아니야, 자네. 이 못 근처에는 양귀비만큼 예뻤던 수월이란 기생이 살긴 살았는데, 그녀를 사모한 대정 원님이 당시 이 고장에 물이 없던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연못을 파줬다고 들었어.”(임군철·76·안성리)
‘수월이못’을 둘러싸고 마을 주민들이 옥신각신 그 유래를 전한다. 이야기 결에는 물이 귀했던 시대적인 상황과 마을 사람들의 척박한 삶이 조심스레 묻어나온다. 그 덕에 사람들도, 철새, 풀들도 이 물에 기대어산다. 11월말, 늦가을에 만난 이곳은 여전히 뭇생명들의 안식처였다.

수월이못은 대정읍 안성리 마을 북쪽에 있다. 추사기념관 입구에 서 있는 돌하르방 앞 시멘트 농로를 따라 1km정도 들어간 지점에 있다. 면적이 3500㎡나 돼, 서귀포시 안에서는 제법 규모가 있는 연못이다.
들어서면, 연못 곁으로 팽나무 한 그루와 벤치 두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뺨을 벌겋게 하는 찬바람이 일건만, 연못에 자리잡은 물은 고요함과 잔잔함을 남긴다. 소박한 모습 그대로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로 유배 온 뒤 완성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말대로 ‘불필요한 기름기’가 빠진 추사체를 닮았다. 완당 김정희는 위리안치 생활을 넘어, 이곳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이곳은 커다란 연못 하나, 작은 연못 두 개가 나란히 있다. 본래 작은 웅덩이는 3개였다. 1990년대초, 마을 이장이 한 군데를 메우고 그 자리에 팽나무를 심었다. 작은 연못들은 1960년까지 마을 사람들의 주 식수원이었다. 까닭에 ‘수월이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적지 많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게 되면 이곳 물은 깨끗하게 자연정화되고는 했지. 복원력이 빼어난 셈이지. 고여 있는 물인 것 같아도 아직도 냄새없이 깨끗해.”

우두커니 수월이못에 앉아 있노라면 남서쪽에는 모슬개오름(모슬봉), 남쪽 단산, 남동쪽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연못은 음율을 이루듯, 일렬로 늘어선 삼나무들을 오롯이 가두고 있다. 성산일출봉의 멋진 일출만큼, 이곳의 일몰 광경은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