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비경탐방-40>안덕면 화순리 썩은다리
해변서 신비한 자태 뽐내...그많던 모래 어디 갔을까

▲ 화순리 해변에 맞닿아 있는 원추형 오름 썩은다리. 정상에 올라서면 이 작디작은 동산의 위력을 단번에 쾌감할지 모른다.
"그 옛날, 친구들이영 뛰어놀던 추억들이 아른거리주게. 촐 비러 가다가도 모래 장난하멍 해가 저물고…. 아, 그 많던 모래들은 다 어데 가신지사."(오모씨·51·화순리)

누구나 마음 속에 고향을 염두하는 매개체쯤 한 두어개쯤 있겠다. 동네 뒷산, 우물 터, 고목 등등. 바쁜 일상으로 움츠러든 가슴에도 한 아름 오아시스 같은 곳을 제각기 마련해둔다.

안덕면 화순리에서도 '아, 그 곳'하며 떠올리는 공간이 있다. '썩은다리'라 불리는 조그만 동산이다. 옆 동네 사계리에 있는 산방산처럼 웅장하거나 근사하진 않다. 대신 아기자기한 추억들이 간질하게 배어나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다.

썩은다리는 화순리 해변에 맞닿아 있는 원추형 오름이다. 높이 42m에 면적 1만8910㎡인 작은 규모다. 화순해수욕장에서 위용한 풍채를 지닌 산방산을 향해 보면, 상대적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 썩은다리 위에서 바라본 모습.

썩은다리 정상에 올라서면 이 작디작은 동산의 위력을 단번에 쾌감할 지 모른다. 가까이엔 항만대와 화순항, 용머리해안이, 저 멀리에 송악산, 형제의섬, 가파도, 마라도가 바다 위로 후련하게 놓여있다.

올라가는 길은 동산 북쪽면 좁은 길인 속칭 '주슴질'을 따라 300m 걷다보면 쉽게 눈에 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방파제가 축조되기 전 이곳은 전부 모래흙을 이뤄져 있어 어느 곳이건 올라갈 수 있었단다.

특별한 놀잇감 없던 옛 시절엔 화순 아이들의 집합 장소였다. 가까우면서도 높지않고, 모래나 돌, 풀, 나무 등 재미삼을 게 많으니 그럴만도 하다. 어느 동무는 꼭대기서 미끌럼을 타고, 그러다 지친 다른 동무는 모래성도 쌓았겠다.

모래와 늘 함께 하던 이곳엔 이와 관련된 신기한 전설이 있다. 해안가와 접해 있어 풍파가 크게 일 때 동산 정상까지 모래를 쌓아 올리면 풍년이 들고 정상의 모래를 씻어 가면 흉년이 든다는 얘기다.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진 이야기였다.

▲ 썩은 다리 남쪽 벼랑에는 누르스름한 용암 흔적들이 기이한 자태를 풍기며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이젠 없다. 모래들도 상당부분 사라졌다. 방파제가 이곳을 덩그러니 남겨놨다. 하지만 또다른 풍경이 위로하고 있다. 썩은다리 남쪽 벼랑에는 누르스름한 용암 흔적들이 기이한 자태를 풍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모래들로 가려졌던 것들이다.

'썩은다리'란 이름은 모래 흙으로 이뤄져 조금만 하면 부서지는 것에 비유해 유래됐다 하고, 한자로 '사근(沙根)'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어떤 주민은 또다른 설을 내놨다. 주민 강문팔(89)씨는 "주변 주슴질이나 솔대왓, 복병목이, 몰탈왓처럼 모두 병영과 관계된 용어들이 많은 것을 보면 옛날 왜구가 들어오는 것을 살펴 알린다는 '사관(査觀)'에서 유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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