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예술가의 집-24> 설치미술가 하석홍
'끼니' 건너 '물고기 화석'...다시 마애명에 몰두

 

▲ 도남동 작업실 작품 앞에 선 하석홍 화백. 
아마 내가 생선이라면 고등어일 꺼라...
 나는 숨을 쉬고, 생선도 숨을 쉬고,
 생선은 살(肉)이 되고,
 생선은 몸(體)이 되고,
 그 몸이 다시 흙이 되고(化),
 나의 그릇(器)이 된다.

지난 해(2008년) 이른 봄 <화석(化石)이 된 물고기> 개인전을 열었던 서양화가 하석홍 화백의 팸플릿에 실린, 물고기가 선명하게 박힌 화석 그림에 곁들여져 있는 독백이다. 고등어라...서민들이 영양분을 섭취하기에 만만한, 흔하디흔한, 등 푸른 생선. 그런 고등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의 전생(前生)이 그런 고등어였을 거란 말인가. 어쨌거나 자신을 그런 고등어와 일체화시켜 인식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시간의 개념 없이 그 밑과 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화석'이 주요 테마라니 호기심이 발동한다. 일단 화가를 만나보기로 한다.

▲ 독특한 질감이 느껴지는 <물고기 화석> 연작들.
먼저 전화를 걸어 용건을 밝히고 작업실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작업실을 두어 군데 쓰고 있다며 좀 곤란해 하는 눈치다. 게다가 요즘은 그림보다는 다른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밖의 대답이다.

▲ <물고기 화석> 연작.
작업실이야 반드시 하나여야만 한다는 원칙은 없는 것이니 두어 군데를 다 둘러보면 될 것이고, 화가라고 해서 늘 작업실에서 그림에만 빠져 살아야 한다는 원칙 또한 없겠기에 취재하는 입장에서야 별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하화백의 첫 번째 작업실은 제주시 도남동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 <물고기 화석> 연작. 
주택가 한 귀퉁이 땅 넓이에 딱 맞게 들어앉힌 창고 건물이다. 그림 작업하는 공간과 작품 보관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는 실내가 마치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수장 공간에 들어서니 물고기 화석 그림이 가득하다. 시간의 심연(深淵)을 박차고 이윽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오래 된'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누워있다.

'화석'의 사전적 의미는 지각 내의 퇴적암 등의 암석 속에 보존되어 있는 과거 지질시대 동식물의 잔유물이나 특징 또는 흔적. 그렇기에 사실 화석은 시간의 켜 속에 쌓인 진화의 이미지와 떨어져 생각하기 어렵다.

"화석이란 곧 흔적이지요. 결국 우리네 삶이나 제가 그리는 그림이나 다 화석화하는 것이니까요. 제주 연안의 하찮은 생선에 시선을 주다보니 물고기 화석을 소재로 삼게 된 거지요. 생선이든 인간이든 죽으면 흙이 되고 그 흙은 다시 그릇이 되기도 하고...순환되는 삶을 담고 싶었습니다."

▲ 하석홍 화백이 상설 전시공간으로 쓰고 있는 칠성로의 대안공간 제주의 갤러리 내부 모습.  
작업실 한쪽에 놓인 암석들에 자연스레 눈이 간다. 천연암석이 아니라 하화백의 손에서 태어난 '인공암석'들이다. 숯, 모래, 아교, 송이석, 시멘트, 안료 등을 써서 '지극히 원시적인 과정'을 거쳐 만든 이 인공암석들은 물고기 화석이 박히는 밑재료들인 셈이다.

이 암석들 위로 장어가 꿈틀거리기도 하고, 앙상하게 가시만 남은 생선이 박히기도 하고, 그대로 어여쁜 조가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크기와 형태의 보도블럭처럼 만들어진 화석들을 전시장 바닥에 깔아 관람객들에게 '맨발로 걸어보세요'라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던 작품이 바로 2002년 서울 예술의 전당 기획초대전 <국제환경미술제-무당개구리의 울음전>이었다.

보통 설치미술이나 조형미술이라면 이름표처럼 '만지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매달고 있기가 일쑤. 그러나 하화백은 2톤 정도의 화석작품을 설치해놓고 '맨발로 걸어보세요'라고 타이틀을 내걸었으니 관람객들은 절로 신이 났을 터이다.

2006년 부산 비엔날레 <바다 예술 페스티벌>에서도 부산 해운대 아쿠아리움 진입로 방향 인도(人道)의 보도블럭을 걷어내고 20m 구간에 물고기 화석 작품을 설치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칠고 거무튀튀한, 영락없는 제주도 현무암 질감을 느낄 수 있어 제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진짜 화석이나 진배없어 보인다.

이렇게 하화백은 물고기 화석을 그림과 조형, 두 가지 형태로 해석하고 표현하고 있다. 서양화가라는 이름 밑에 설치미술가라는 이름을 덧붙게 된 이유이다. 하화백이 두어 군데 작업실을 쓰고 있다는 말은 곧 이 인공암석을 만들어내기 위해 소위 흙먼지 날리는 '노가다'를 하는 또 다른 작업장을 뜻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다. 제주시 동편 도련동에 수명 다 한 건설 현장을 개보수해서 쓰고 있는 작업장이 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물고기 화석에 천착해온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출발은 '끼니'였다. 1999년 두 번째 개인전 <끼니>를 열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밥상에 둘러앉았다.
숟가락이
숟가락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다.
사람들이 밥상에 둘러앉음은
신성한 근원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룬다는 뜻이다.
따라서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신성가족'이 됨을 의미한다.
예컨대 숟가락이라는 대상을 놓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문화의 상징이자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음으로 하여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며
숟가락을 놓는다 함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숟가락은 또한 식구를 의미하며
존재라는 가치를 나타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숟가락 하나와 밥사발 하나. 세월의 녹이 가라앉은 놋숟가락이 역시 낡고 금이 간 밥사발을 향해 놓여있는 작품 '모든 존재는 신성하다'는 화가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끼니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의 밥상이자 일상이자 자화상이다.

그러나 즐겁고 화기애애하고 달콤한 간식(間食) 같은 끼니가 아니라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처절한, 차마 거를 수 없는 주식(主食) 같은 끼니가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화면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서러운 기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 끼 한 끼가 고달팠던 오래 전의 서러운 기억을 일깨우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 갤러리 작품 앞에 선 하 화백.
"여덟 단계 정도의 작업을 통해 질감을 형성했습니다. 세 단계 정도 살을 올리고 나면 색채가 탁해지면서 모양이 안 나오는데 그 단계를 극복해야 비로소 원하는 색채와 질감을 표현할 수 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오랜 시간성과 작가의 내면이 상징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다시 똑같이 는 절대로 그릴 수 없습니다."

당시 하화백의 '끼니'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아이엠에프라는 시대적 상황도 '끼니'의 상징성을 키우는 데에 한 몫을 했다. 일본에서 가진 초대전도 성황을 이루었고 평생 밥그릇과 숟가락만 그려도 될 것 같은 성과도 있었다. 눈앞에 평탄하고 쉬워 보이는 길이 아른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재미없는' 길이었다. 작가가 하나의 작품세계에 천착한다는 것은 장점 못지않게 단점이 우려되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스스로 딱 거기에 고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퍽이나 재미없기도 하려니와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뒤집어엎기로 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조형 부문이었고, 그로부터 모래와 시멘트와 숯, 송이석 등으로 재료 공부에 집중하면서 지금의 화석 작품의 밑작업을 해나갔던 것이다.

이쯤해서 요즘 들어 그림 아닌 다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는 하화백의 속내가 퍽이나 궁금해졌다. '끼니'에서 '물고기 화석'으로, 그 다음은?

"마애명에 관심이 많습니다. 작업할 만한 가치가 크지요. 저는 하나의 주제나 테크닉에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맑은 정신일 때 계속 새로운 것을 꿈꾸고 싶습니다. 리바이벌할 수 없는 작업을 하고 싶은 거지요. 오래 우려먹을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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