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의 예술가의 집-25>플루티스트 문성집
유년부터 살던 동네에 마련한 반지하 연습실
1세대 플루티스트, “불모지에 씨앗 뿌리는 소명 다할 터”

▲ 주택가 반지하 공간에 마련된 플루티스트 문성집 선생의 작업실.
 고즈넉한 주택가에 흐르는 플루트 연주 소리는 어떤 빛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어릴 적 해질 무렵 장미꽃이 넝쿨진 이층 양옥에서 들려오는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나 ‘은파’에 가던 발길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던 바로 그 느낌? 이웃집 대학생 오빠가 시도 때도 없이 연주하던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에 사무치게 빠져들 때의 그 느낌?

 제주시 오현로 주택가에 자리 잡은 플루티스트 문성집 선생의 연습실을 찾아가는 길,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사는 평범한 동네의 낮은 울타리를 타고 넘어오는 플루트 소리는 어떤 느낌일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아무래도 플루트라는 악기에 대해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이나 기타만큼 대중적이지 않을 거라는, 그래서 취미삼아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아니라 소수 전공자만이 전문적으로 다뤄야 할 것 같은, 왠지 예민하고 까다롭고 고급스러운 악기일 거라는 선입견...그러나 이 선입견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 문성집 선생의 연습실.
 연습실은 자그마한 주점의 지하공간이었다. 완전한 지하공간이라기보다는 한길로 출입구가 나 있는 반 지하공간.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예닐곱 개 계단 아래 아담한 공간이 제주의 유일한 제1세대 플루티스트의 연습실이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다. 한쪽 벽면으로 그랜드피아노와 업라이트 피아노가 놓여 있고 여기저기 몇 개의 보면대가 있을 뿐 플루티스트의 연습실이라고 해서 확 눈에 띄는 특징은 없는 듯하다.

 

▲ 문성집 선생의 연습실.
“맞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제가 늘 농담처럼 말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니까요. 플루트는 일단 가지고 다니기 좋습니다. 특별히 공간을 차지할 일이 없는데다 악기 소리도 크지 않으니 다른 악기완 달리 보통 주택에서도 연습해도 될 정도입니다.”  

 물론 애시 당초 이 같은 플루트의 장점을 미리 알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무이한 오현고 브라스 밴드가 시가행진이라도 할라치면 무작정 쫓아 다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딱히 어떤 악기가 특별하게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밴드에서 울리는 소리와 위풍당당한 시가행진 모습이 마냥 좋았다. 드디어 오현중에 입학했을 때 꿈에 그리던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숫기가 없어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입 밖으로 내비칠 용기가 없었다. 밴드부에 입성한 것은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의 권유 덕분이었다. 

▲ 청아하고 부드러운 플루트 연주가 시작되자 평범하기 그지없던 연습실은 순간 황홀하고 충만한 공간이 된다.
 “신입부원 면접 때 음악 선생님은 학생들 하나하나 꼼꼼히 반듯하고 고른 치열을 가졌는지 살피셨어요. 입으로 부는 악기라 아무래도 치열이 고르면 유리할 테니까요. 학생들에게 알맞은 악기를 골라주시던 선생님이 마지막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제게 말씀하셨어요. 넌 플루트‘나’ 해라...이게 운명이었던가 봅니다.”

▲ 연습실에서의 황홀한 공연.
 그렇게 플루트와 운명적인 해후를 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비밀이었다. 당시만 해도 밴드부에 들어간다면 ‘딴따라’라고 비하하고 ‘목관악기를 불면 폐병장이가 된다더라’는 낭설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 서울로 진학할 때까지 개인 레슨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악기 자체도 생소했지만 가르쳐 줄 선생을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무기는 오로지 하루도 거르지 않은 꾸준한 연습뿐. 대학 졸업 무렵 그는 학교 오케스트라와 솔로 협연했고 졸업도 하기 전 당시 수원시향 오디션에 합격했다. 석사를 마친 후에는 모교 강단에도 섰다. 운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의 실력은 그만큼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고향 제주를 선택했다. 그를 고향으로 불러 내린 이는 고교 은사이자 제주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고 초대 지휘를 맡았던 이선문 선생(작고)이었다. 

 “은사님은 의욕과 능력이 왕성할 때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진정으로 고향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지금까지 문화예술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제주에서 나름대로 플루트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힘을 쏟을 수 있었던 것도 은사님의 말씀이 곧 제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제주에 완전 정착한 것이 1993년. 처음에는 서사라에 연습실이 있었지만 이내 지금의 작업실로 옮겨 앉았다. 이도1동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살아 온 동네이니 터주대감이나 다름없다. 위층에 살림집이 있는데다 반지하라서 적당히 밝고, 지상의 소음을 적당히 피할 수 있고, 미세하지만 소리의 울림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연습실로는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고.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 작은 공간은 제주에 플루트 음악의 씨앗을 뿌리고 그 뿌리를 내리기 위해 그가 그동안 여러 단체를 창단하는 데 있어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낸 곳이기도 하다.
 제주에 오자마자 도립 교향악단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플루트·첼로·피아노로 구성된 ‘앙상블 준 트리오’(이후 ‘제주 앙상블 준’으로 개칭)를 만들어 본격적인 전문적인 실내악단의 시대를 연 것도 그였다. 플루트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제주도 플루트협회를 만들고 전문 앙상블단인 제주 플루티스트 앙상블을 결성, 그 산하에 제주 청소년 플루트앙상블을 조직했다. 이제 머잖아 창단 연주회를 열게 될 제주 성인 플루트 앙상블은 성인 아마추어를 위한 조직이다.

▲ 제주 1세대 플루티스트로서 산파 역할을 해내고 있는 문성집 선생.
 “사실 개인적으로는 가르치는 일보다 연주하는 일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제주 1세대 플루티스트로서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대중에게는 플루트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로써 전문 연주자들의 활동 공간을 만들자는 뜻입니다. 서로 윈-윈하자는 거지요. 플루트를 보통 어려운 악기라 오해하기 쉽지만 이는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일 뿐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이올린에 버금가는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악기입니다.”

 일반적인 규모의 오케스트라에서 필요로 하는 바이올린 연주자는 24명 정도이지만 플루트는 겨우 3~4명. 그런데도 제주 플루트협회 회원이 400명을 웃도는 걸 보면 플루트의 매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 플루트에 대해 품었던 선입견을 슬그머니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부드럽고 우아한 음색 탓에 주로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꾀꼬리와 같은 새소리를 표현할 때 이용되는 플루트는 금관악기(전통적인 분류로는 목관악기) 중에서도 단연 선호도가 높은 악기로 꼽힌다. 처음 소리 내는 과정이 다소 어렵긴 하지만 꾸준히 연습할 경우 같은 조건에서라면 다른 악기에 비해 훨씬 잘 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도 플루트의 매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막연히 음악회에 가면 감동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환상보다는 어떤 곡이  연주되는지 미리 리플릿을 살펴보는 정도의 ‘준비된 청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감동은 연주자와 청중의 조화 속에서 탄생되는 것이니까요.”

 제주 청소년 플루트 앙상블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데다 제주 교향악단이나 서귀포 관악단, ‘제주 앙상블 준’의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개인 독주회까지 해마다 거르지 않고 수차례의 연주회를 열고 있는 그가 청중에게 들려주는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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