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2천년 로마와 현대사회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기원전 2C 사람인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아프리카 북부에 기반을 두고 지중해를 제패한 해상왕국 카르타고가 명장 한니발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로마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제2차 포에니 전쟁때부터 카르타고 왕국의 멸망까지 50여년 동안 로마시민들의 인고의 자세와 저력을 기려 이 말을 사용했다. 즉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로마는 지중해 일대의 패권자가 됐지만 그 과정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로마인의 숭고한 희생이 50여년 동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역사가들은 로마가 지중해를 지배할 수 있었던 바탕은 50년이 아니고 5백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그들만이 가진 개방형 국민성과 화합을 이루는 정치·사회 질서의 제도화 등을 지적하기도 한다. 로마는 지금으로부터 2750여년 전에 세워졌다.조그마한 산골마을에서 수백명으로 나라를 세운후 주변의 세력들을 조금씩 제압하며 세력을 키운 후 기원전 270년에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했고 그로부터 130년 후에는 당대의 최강이었던 카르타고를 함락시킴으로서 지중해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후 유럽지역과 중동지역 그리고 북부아프리카에 걸친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세력으로 성장, 수백년 동안 천하를 호령한다.이를 두고 역사가들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있었고 카르타고가 있었으며 해상왕국 그리스가 막강한 세력을 과시하는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이를 견뎌냈으며 이들은 모두 망했지만 도시국가 로마만 번성한 이유를 찾는데 애를 썼다.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들이 있다.첫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로마인들의 정신이 건전했기 때문에 로마가 융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정된 이념의 틀이나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을 직시한 채 다른 종교의 존재도 인정했고 이 민족을 대립보다는 포용하는 관계로 여겼다.따라서 로마에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신들이 많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지켜주는데 불과하다고 보아 광신하지도 않았다. 둘째는 로마인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제도의 확립이었다. 공동체 일부의 이익을 대표하는 왕정, 귀족정, 민주정이 존재했지만 독재관이나 집정관 제도를 통해서는 왕정의 장점을 살렸고 원로원 제도를 통해서는 귀족정의 단점을 메꾸었으며 민회와 호민관 제도 등으로는 민주정의 장점들을 실현해 국내의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총화 단결의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기엔 아득한 옛날인 이 시기부터 로마인들은 고속도로와 상·하수도의 중요성을 알고 이러한 시설들을 건설하고 관리할 기구들을 만드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제도화 해 나갔다. 이에 따라 지금의 고속도로에 비유될 수 있는 ‘가도’를 로마를 중심으로 국내는 물론 유럽·아시아·아프리카까지 건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로마인의 외향성을 상징하는 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3개 대륙에 걸친 광활한 지역을 지배하면서도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에 걸쳐 로마가 유기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는데 중요한 동맥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세번째는 현대인들에게 특히 필요한 관용과 포용력이 로마인들 마음속에는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같은 라틴족에 대해서는 출신지와 관계없이 시민권을 부여했고 적대 관계에 있는 이민족이라 하더러도 일정기간 로마에 거주하면 시민으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도록 하는 열린 제도를 일반화 시켰다. 시민권을 갖게 되면 선거권·피선거권·재판을 받을 권리·사유재산권을 보장 받을 권리 등을 가졌고 의무로는 병역의 의무가 있었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과 비교해도 거의 뒤떨어지지 않아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선진 제도들이 도입되거나 만들어 졌다. 그러나 그 제도들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오히려 로마사회보다 뒤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기관 불법 대출에 따른 금융감독원의 비리를 비롯 정·관계, 언론계, 문화계 등 사회 각 부문의 비리를 보노라면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로마사회보다 더 좋아졌다고는 말하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이다. 로마에서는 최고 권력자에서 노예에 이르기까지 법을 위반하면 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법과 제도를 위반하면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공동체에서 추방했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 잘못을 뉘우치면 귀국을 허락하는 등 죄 값은 철저히 치르도록 하면서 인명은 중시한 점도 고차원의 의식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역사는 과거를 뒤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고 한다. 비록 이민족의 역사이고 2천년이란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하지만 오늘의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는 물론이고 2천년을 면면히 이어와 현재의 이탈리아를 살찌게 하는 로마의 역사도 다시 되새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오명문/본지 편집국장 제236호(2000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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