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비경> 59- 남원읍 위미2리 '버둑할망 돔박숲'

▲ 동백의 기운 센 여운이 가득한 위미2리 버둑할망 돔박숲. 족히 100년은 훌쩍 넘은 나무들이 700그루가량 길게 펼쳐져 있다.
황무지가 어느 부지런한 인간에 의해 거대한 숲으로 뒤바뀌었다는 이야기. 웬만한 책에 나옴직한 설화다. 한데, 그 숭고함이 머리에만 맴도는 건 어쩔 수 없다. 상상 속에 있는 숲과 현실 안에 나와의 간격,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남원읍 위미2리 ‘버둑할망 돔박숲’(위미동백나무군락)은 그래서 성큼 다가온다. 꽃이 피고 지는 수 많은 계절들이 눈 앞에 어린다. 웅장함보다 동백 같은 기운 센 여운이 진하게 밸 정도다.

동백나무들이 마을에서 해안을 향하는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빽빽하게 줄지어섰다. 족히 100년은 훌쩍 넘는 나무들이 700그루정도 길게 펼쳐져 있다.

이 숲은 한 여인이 수년간 가꿔낸 인내와 끈기의 성과물이다.

고(故) 현맹춘이 17세 되던 해 이 마을로 이사온 뒤 어렵사리 모은 돈 35냥으로 토지 5000여평을 사고 집을 지었다.

그때 이곳은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무지(속칭 버둑)였다. 바다 바람을 막고 새 생명도 튀울, 힘겨운 노역이 그렇게 시작됐다. 현맹춘은 인근 산에서 동백씨 3말을 모아, 자신의 토지를 빙 둘러 야무진 손으로 꼭꼭 심었다.

동백나무 앞에 둘러싼 돌담도 그의 땀으로 빚은 것이다. 허벅에 물을 긷고 올라 올 때는 양 옆에 돌 한 덩어리씩을 차고 묵묵히 담을 쌓았다.

130여 년이 지난 지금, 동백나무는 지름이 10㎝이상인 것만도 약 500여 그루이며, 이중 가장 큰 나무는 둘레 1.4m, 높이는 10m에 달한다. 이곳은 지난 1982년 5월 8일 제주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됐다.

그의 헌신과 희생은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미덕이 됐다. 늘 푸른 동백은 온갖 새들과 곤충에게 훌륭한 안식처가 됐다. 한때 주민들은 이곳 동백씨를 주어 기름을 짜 먹기도 했다.

현맹춘의 4대, 5대에 걸친 자손들은 여전히 이곳에 둥지를 틀어, 바람을 막는 동백나무의 아늑함 속에 산다.

현맹춘 자손의 며느리인 한춘옥(51)씨는 “30년 전, 이곳에 시집을 올 때부터 할머니 이야기를 늘 전해 듣고는 했다”면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일했던 그 분의 숭고한 정신을 늘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자손들이 지켜내고 마을이 함께 기리는 것은 아직도 인간의 차진 끈기에 기댈 이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서운 칼바람 속에 그 동백나무들은 최대한 붉게 되묻는다. 내일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향해 우리는 어떤 씨앗을 틔우고 있는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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