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치매와 우울증

60대 중반 여성 환자가 딸과함께 병원을 찾았다. 괴로운 표정과 느리고 힘든 말투로 이제 자신은 노망이 드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요새 갑자기 기억력이 너무 떨어져 TV를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어제 그제 일어난 일도 까맣게 잊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딸의 이야기로는 3주 전까지 멀쩡하던 어머니가 급격하게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 하고 실제 집에서 예전에 하던 일도 거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평소 잘하던 요리를 하는데 요리법도 잘 생각이 안 나는 정도가 되어 치매가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된다고 했다. 주의집중력이 보존되어 있는 것 외에는, 대개의 검사 질문에 모르겠다고 하였다. 오늘이 몇 월인지 몇 일인지에 대해서조차 모르겠다는 것이다. 혈압이나 당뇨의 병력은 전혀 없었다. 딸에게 혹시 수 개월 이내에 어머니나 어머니 주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사실은 1년 전에 어머니 여동생인 이모가 자살을 했고, 어머니도 과거에 우울증을 앓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이 환자의 치매증상은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노망 초기 증상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 의학적으로는 ‘가정치매’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가정치매는 흔히 노망으로 일컬어지는 알츠하이머 치매와는 달리 신경정신과적 치료를 통해 완전하게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별칭처럼 여성의 20%, 전 남성의 10% 정도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겪는 질병이다. 물론 우울증은 치료없이 지내도 대개 6∼12개월 정도 경과되면 회복되는 질병이지만 쉽게 재발하고 그 증상도 점점 심해진다. 우울증 환자에게 주위의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마음 편하게 살라고 하지만 어디 세상살이가 그렇게만 살 수 있는 것인가. 또, 우울증은 자신이 마음만 잘 먹으면 저절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평소에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밝게 생활하는 태도가 우울증의 유발인자인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본인이나 주위에서 의심스러우면 조기에 신경정신과를 찾아 본인에게 맞는 올바른 치료를 받는 것이 건강을 점검하고 지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하겠다. 우울증은 완치가 가능하고 전문적인 조기 치료를 통해 빠른 회복은 물론 재발을 낮출 수 있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이범룡/밝은신경정신과 원장 제359호(2003년4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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