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주민 대립각 ‘제자리걸음’…도·의회 노력 부족

▲ 지난 27일 해군기지 공사 강행에 대치했던 주민과 경찰.

“믿을 수가 있어야죠. 우근민 도정이 출범하고 윈-윈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해서, 전 김태환 도정과는 달리 대화의 상대로 내심 기대를 했는데 정말 실망했습니다. 해군기지 지원 약속도 올해 물 건너갔고, 주민 갈등도 여전합니다.”(주민 A씨·강정동·57)

우근민 제주지사가 해군기지 갈등해결 방안으로 펼친 6개월간의 ‘윈-윈 전략’은 끝내 실패했다. 신임 지사 출범 뒤 해결 대안으로 등장한 ‘해군기지 조건부 수용’ 제안은 결국 주민들로부터 거절됐다. 해군기지 갈등은 뚜렷한 진전 없이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반면, 해군 측은 이에 아랑곳없이 법적 소송 결과가 끝나는 대로 공사에 들어갔다. 27일 해군기지 건설을 막으려다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시민 34명이 연행되고, 29일 제주도의회에 천막 농성을 시도하던 주민 1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더욱 염려스러운 건 이들이 “해결 의지를 보일 때까지 온몸으로 맞설 것”이라는 입장을 굳혀, 물리적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 밤 사이 노숙농성을 벌이던 범대위 관계자들이 제주시청 공무원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범대위 측 관계자 1명이 중상을 당했다.

▷ “갈등 해결” 약속 6개월 ‘초라한’ 성적표

우근민 지사는 지난 7월1일 취임식에서 “해군기지 문제는 강정마을 주민들, 제주도민, 국방부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합리적인 중재자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조건부 수용을 논의하고 인센티브 대안을 제시하는 모양새만 취했을 뿐, 반대 단체와 주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절차적 정당성 ▷입지적 타당성 ▷ 주민 동의 등 갈등 해결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단계로는 발전되지 않았다.

우 지사가 당선 직후인 지난 6월4일 기자간담회에서 해군기지 갈등과 관련, “해군이 착공을 강행하면 안 된다”며 “제가 도지사로 임명되는대로 국방부장관을 만나러 가겠다”고 문제 해결에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지난 27일 해군의 착공 강행에, 어떠한 공식입장도 내놓지 않는데다, 국방부 장관과의 면담도 여태껏 성사되지 않고 있다.

▲ 강정마을회는 4일 오후 1시 우근민 제주지사 당선인을 만나 해군기지 문제 해결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우 당선인은 당시 “마음 푹 놓으시라”면서 국방부 장관의 면담 등을 비롯한 중재를 약속했다.

우 지사의 말 뿐인 약속은 또 있다. 해군기지 수용에 따른 주민 이익의 ‘근거’를 명쾌히 풀어내지 못했다. 해군기지 지원 조항을 담은 ‘제주특별법’은 아직 국회도 통과되지 않았다. 지원이 더딘데, 공사는 착착 진행되는 셈이다. 예산도 ‘평택 미군기지 지원 특별법’처럼 ‘특별회계’를 별도 설치하지 않아, 정부 예산이 없으면 얻어낼 방도가 없다.

국무총리실이 지난 11월29일 공문서로 제안한 해군기지 관련 ‘세 가지 약속’이 ‘답보’ 상태인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국무총리실은 ▷해군참모총장 강정마을 방문해 유감 표명 ▷지역발전계획(안) 적극 지원 ▷착공식 개최 적극 검토 등을 제주도에 전달했다. 하지만 이 조항을 지키지 않은 채 공사 착공과 다름 없는 자재 반입은 지사의 권위와 도민과의 약속을 무시한 처사로 풀이된다.

▲ 문대림 의장은 지난 8월2일 "해군기지 문제를 이 지경까지 오게 한 정부와 도 차원의 수장이 사과하고, 청와대 차원에서 TF팀(전담반)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군기지 공사 강행에 이른 지금,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 눈치 보는 의회…묵묵부답 일관

제주도의회 역시 이번 갈등 해결 실패에 눈을 감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 공사 강행에 따른 주민 우려를 외면한 채, ‘연행 사태’가 한참 이뤄진 뒤에 뒤늦게 강정마을을 찾는 등 움직임이 ‘미봉’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해 12월17일, 해군기지 의안에 관한 한나라당 ‘날치기’ 통과에 관해, 주민들은 올해 6·2 지방선거 때 책임을 물었다. 야당인 민주당 후보들이 서귀포시 지역에서 무려 6석을 차지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3석을 얻는 데에 그쳤다. 8대 의회와는 달리, 한나라당 12석을 누르고 민주당이 19석을 차지하면서 정치 판도를 바꿔 놓았다.

그러나 의회는 이 같은 민심에 힘을 받기는커녕, 서로 눈치만 보는 침묵만 감돈다. 한 도의원은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방안에 관한 내부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다른 한 의원은 “우리만이 아니라 제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직접 나서줘야 한다”고 둘러댔다.

지난 7월27일 강정마을회를 중심으로 한 주민 1만2795명이 의회로 제출한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예정지 절대보전지역 해제 취소 요청’ 진정서는 9월7일 상정이 미뤄진 뒤로 아직까지 잠잠한 상태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해군이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나선 판에, 최소한 중재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법원 조차 강정마을 주민들을 외면한 상황에, 도의원들이 적극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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