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 10.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에서는 ‘2011 서귀포시민의 책읽기’ 선정도서를 읽은 독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좌은숙 씨, 서귀서초등학교와 남주고등학교 사서도우미, 서홍동 부녀회 회장직을 맡아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태풍 카눈이 통과하던 날 오전, 서귀포 시청 앞 한 카페에서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를 바탕으로 대담을 진행했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이 된 소년이 모진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성장을 해나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네덜란드 작가, 잽 테르 하르의 청소년 소설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시력을 잃은 열 세살 소년 베어는 끝없이 밀려오는 고통과 두려움에 좌절하고 절망하지만, 가족의 사랑과 친구들의 우정으로 모든 시간을 당당히 이겨낸다. 작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의 문제를 비롯해 청소년기에 사회와 가정이 어떻게 유기적인 관계가 되어 성장의 자양분을 제공하는지를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박소정 기자

이경주(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장):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좌은숙(서귀서초등학교 사서도우미): 처음에는 ‘이 아이에게 사고가 나서 눈이 안보이게 되었는데 어떻게 극복을 할까?’ 걱정을 하며 책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책을 좀더 보다보니 ‘아, 이 아이가 눈이 안보이게 된 당사자구나. 어떻게든 이겨내야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또한 주인공 베어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상도 베어로 인해서 바뀌거든요. ‘가족이 어떻게 극복해나가고 받아들이느냐’, 저는 그것에 집중해서 읽었어요.


이경주: 본인이야 물론이겠지만, 가족들의 생각과 태도도 유심히 보셨군요.
좌은숙: 저는 어렸을 때 장애를 입을 뻔 했어요. 다섯 살 때부터 일곱 살 때까지 만 2년 동안의 일이거든요. 걷지를 못했어요. 그런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베어가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장애를 이겨내려고 했던 처절한 기억이 있어요. 그때 제가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이 가족이었어요. 나를 걱정하고 있던 그 눈을 보면서 ‘나는 반드시 이겨내리라.’ 이것이 굉장히 크게 작용했습니다.

▲ 이경주(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장, 왼쪽), 좌은숙(서귀서초등학교 사서도우미, 오른쪽)


이경주: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이 어떻게 베어에게 힘을 주는가, 비교하며 읽으셨군요.
좌은숙: 등장하는 간호사도 베어에게 잘 대해줬고, 베어가 일상생활에 돌아와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었던 것이 대학생이었어요. 저도 안좋았을 때, 제가 어렸기 때문에 그런지 어른들이 제 앞에서 말조심을 안하셨던 것 같아요. 저를 나아질 수 없는 상태로만 보시는거예요. 걷는다는 것은 이미 포기하고,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말씀하시는거예요. 저는 걸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앞에서 거침없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오히려 저를 걱정하시던 부모님의 그 표정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어요. ‘부모님의 얼굴에서 저 표정을 없어지게 하리라.’ 제가 극복하게 된 힘이었습니다.


이경주: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소개해주시겠어요?
좌은숙: 저는 좋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베어는 좋아질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생활을 더 좋게’는 할 수 있거든요. 더 나은 생활로 가느냐 안가느냐는 베어의 마음 속에 있는거예요. 이 책을 보면 옆에서 도움의 손길을 계속 주지만, 주인공 베어가 ‘나를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게 정답인 것 같아요. 베어한테 더 이상의 마음가짐은 없겠죠. 이 세상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죠. 그 다음은 부모님의 불안한 마음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나에게 배려를 해야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가족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합니다.


이경주: 열세 살 베어가 그런 생각을 하기 까지 어떤 자극이 있었을 것 같네요. 그렇게 자기 스스로 ‘나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때까지는 주변의 여러 배려가 있었겠죠. 대학생과 이야기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셨어요?
좌은숙: 내가 애지중지 꽃을 키우고 있는데, 그 꽃이 어느 날 옆으로 넘어져있을 때, ‘일어나라, 일어나라.’ 말만 한다고 일어날 수는 없어요. 누군가가 버팀목을 세워줘야 되거든요. 마찬가지로 부모님이나 주변사람들이 그 최소한의 버팀목만 되어주면 됩니다. 베어한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죠. 베어가 ‘나를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마 주변 사람들이 버팀목을 잘 세워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학생은 마음을 굳건히 해야한다는 마음의 지주가 되어주었죠. 겉모습으로 보면 거의 완벽한 학생이었지만, 내면을 들여다볼 때 대학생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예요. 눈을 못보는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을 접어야하는 시점에 와있었죠. 대학생이 죽기 전에 베어에게 편지를 보내주거든요.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골동품 시계를 보내줘요. 30분에 한 번씩 시간을 알리게끔 되어있는 시계를 보내줍니다. 부모님이 버팀목으로 딱 버텨주고 있는 바탕에, 대학생이 30분마다 그 버팀목에서 안주하고 있는 베어를 자꾸 깨워주는 정신적인 역할이 되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대담자 좌은숙 서귀서초등학교 사서도우미


이경주: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제목과는 어떻게 연관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겠어요?
좌은숙: 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라고 말해준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에는 주인공이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보면 티어스라는 친구가 있거든요. 베어가 눈이 잘 보이고 정상인이었을 때 그 친구는 외톨이었는데, 친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애가 도움을 주려고 손을 내밀었어요. 티어스는 스스로 극복해내는 것을 가르쳐줘요. 너랑 나랑 같이 해보자는 거죠. 베어에게 극복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이 해보자.”라고 했죠. 그렇게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스스로에게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경주: 안보여도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좌은숙: 저는 이 책에서 그림을 그리신 분이 아주 잘 그리신 것 같아요. 삽화를 보면서 굉장히 웃었어요. 여기 보면 처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공원에 혼자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유치원생들이 막 싸워요. “너는 커서 뭐가 될거냐?” “나는 왕이 될거다.” 그 말을 들으면서 베어는 ‘쟤는 누구일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정말 왕이 된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 베어의 상상 속 모습이겠죠. 저는 이런 것도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편견없이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거죠. 거짓말을 하고 있는 아이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눈으로 봤던 것이 전부는 아니었구나.’ 깨달았을거예요.

이경주: 나에게 책이란?
좌은숙: ‘책이란 삶의 답안지’입니다. 생활이 바쁘고 짜증날 때에는 재미있는 책을 읽고, 트러블이 있을 때에는 생각하는 책을 읽게 됩니다. 내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을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 책이예요. 책이란 것은 삶의 막막함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것 같아요.

 

사진·정리 최선경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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