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 14. 똥깅이
‘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에서는 ‘2011 서귀포시민의 책읽기’ 선정도서를 읽은 독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1학년 고경아 학생. 재미있는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꿈 많은 여고생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위치한 의귀초등학교에서 <똥깅이>를 바탕으로 대담을 진행했다.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부위원장): 이 책 <똥깅이>를 읽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시겠어요?
고경아(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1학년): 얼마 전 웹툰을 하나 봤어요. 강풀 작가의 ‘26년’이라는 웹툰인데, 책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것이예요. 그것을 읽다보니 제주도에는 4.3항쟁이 있잖아요. 제주도 출신 현기영 작가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청소년 편으로는 <똥깅이>라는 책으로 나와 있어요. 나온 지는 좀 된거죠. 옛날에 책 제목이 웃기다고 애들끼리도 말하고, 동생과도 이야기하던 기억이 나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안재홍: <똥깅이>를 읽은 느낌은 어떤가요?
고경아: 이 책을 보면 사투리도 많이 나오고, 실제 지명이 등장하잖아요. 예를 들면 노형이나 연동. 그런 것이 등장하니까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지금 현재에도 볼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런 곳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 나오니 재미있고 신기했어요. 그리고 이 내용이 엄마, 아빠,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의 이야기잖아요. 현실감 있게 읽어보았습니다.
안재홍: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머리에 깊이 남는 한 문장이 있다면?
고경아: 이 책의 31페이지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와요. “인간의 경험, 상상력을 훨씬 능가해버린 그 엄청난 살육과 방화를 놓고, 어떻게 무자비하다, 잔인무도하다, 하는 따위의 빈약한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섬뜩했어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었던 이야기겠죠. 상상을 뛰어넘는 처참한 것, 정말 충격적인 것이겠지요. 이 구절을 읽으니까 마음에 와닿아서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안재홍: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고경아: 수용소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이 나와요. 임산부가 출산하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독려해줍니다. 처참하고 무자비한 삶 속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나는 거잖아요. 그것이 희망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거죠. 아이에게 닥친 현재의 상황이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힘들겠죠. 그런 생각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고 복잡했어요. 그래서인지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안재홍: 의귀리에서 태어나서 의귀초등학교를 나왔는데, 의귀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해주시겠어요?
고경아: 초등학교에 동백나무가 무척 많지요. 애들이랑 꿀 따먹고, 매미 잡으러 다니고, 제밤 주우러 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엄마랑 같이 밭에 가서 검질 매고, 남은 풀로 동생이랑 꿩집 지어주던 기억도 나요. 꿩집을 지으며, 여긴 화장실, 여기는 방, 그러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제주시로 가서 느낀 건데요. 제주도라고 해도 제주시와 외곽 쪽은 상당히 많은 격차가 있어요. 처음에 남원읍 의귀리에서 왔다고 하면, 제주시 아이들은 제주도에 남원이 있는 줄 모르더라고요. 육지에 남원 있잖아요. 춘향이 고을. 그곳만 떠올리지 제주도에 있는 남원은 존재감이 너무 미미했어요. 그 점이 정말 아쉬워요.
안재홍: 제주도의 역사 중 아픔의 기억도 있었죠. 그 대표적인 것이 4.3 항쟁에 대한 것이겠지요. 혹시 제주에서 일어났던 4.3 항쟁에 대해 동네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나요?
고경아: 저도 어른들께 직접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워서 “학교 숙제인데요” 하며 물어 본 적이 있어요. 오름같은 데에 땅굴을 다 파놨다가 “폭도들이 온다.”그러면 다들 땅굴 속에 숨어서 무서워도 참다가 나왔대요. 폭도들이 우리나라 군인이냐, 아니면 나중에 조직된 제주도 사람들로 구성된 사람이냐고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하시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둘다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때 굉장히 어리셨대요. 집안 어른들은 다 4.3으로 돌아가셨대요. 조그만 밭에 군인들이 지나가면 무서워서 숨도 못 쉬고 숨어있었답니다. 하루는 증조할아버지께서 밭으로 밀어서 할아버지가 숨어 있다가 나왔는데, 나와 보니까 아무도 없었다고 해요. 어른들이 다 돌아가신거죠. 지금 현재 의귀초등학교 이 자리가 마을 사람들이 엄청 많이 학살되었던 장소라고 해요. 여기에 다 모아놓고 처형을 한 거죠.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안재홍: 제주인이라면 제주 역사를 얼마나 아느냐,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고경아: 제주 역사는 교과서에서 보는 것과 달라요. 교과서에서 보는 것은 육지 쪽의 입장이잖아요. 제주도는 신도 많고, 재미있는 설화도 많고, 유적지도 많아요. 혼인지, 삼성혈과 같은 유적지가 많은데, 학교에서 소풍을 가도 “여긴 혼인지야, 여긴 삼성혈이야.”그 정도만 알려주세요. 사실 그런 것 말고 좀더 정리되고,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것을 가르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소풍으로 4.3 평화공원에 간 적이 있었어요. 4.3 평화공원이 하루 종일 봐도 볼 것이 많은 곳이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 공원에 대한 설명이 무척 어렵고 낯설었던 기억이 있어요. 어린 아이의 눈으로는 일단 말 자체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냥 그곳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재홍: 의귀리 사람으로서 의귀리 자랑을 한다면? 우리 마을을 자랑해주세요.
고경아: 의귀리는 말의 고장이래요. 탐라순력도에 보면 여기에 제주마馬 방목지가 있었어요. 이 동네에서 왕에게 진상했던 것 중 하나가 말이예요. 말을 올려 보내서 받은 것이 왕의 옷, 그래서 의귀衣貴가 된거예요. 귀한 옷. 그것이 바로 의귀입니다.
안재홍: 주로 어떤 책을 읽나요?
고경아: 저는 책을 읽을 때, 일단 좋아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독도서라고 해서 무조건 읽어야 된다고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필독도서 말고 나만의 책 목록을 만들었어요. ‘나만 아는 재미있는 책’, 제가 직접 재미있는 책을 골랐어요. 주로 책 속에 추천사나 작가의 말을 보고 골랐죠. 좋아하지 않는 책은 넘기기가 정말 힘들지만, 진짜 재미있는 책은 손에서 못놔요.
안재홍: 나에게 책이란?
고경아: “책은 짝사랑이다.” 짝사랑할 때에는 계속 보고 싶고, 계속 생각나고 그러잖아요.(웃음) 요즘은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한참 바쁠 때에는 하늘 볼 시간조차 없다는 것을 느껴요. 아무래도 입시교육이 우선이니 책을 여유롭게 읽을 시간은 부족하죠. 책을 못 읽으면 수업시간이든 언제든 계속 생각나니까, 저에게는 책이 짝사랑이예요.
사진·정리 최선경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