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냐, 보존이냐를 놓고 1년 넘게 전국적 논란을 벌여 온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결국 처참하게 무너졌다.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이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그동안 위법 가설건축물을 이유로 몇 차례 철거를 시도하다 반발에 부딪힌 제주도와 서귀포시가 이전복원을 명분으로 마침내 철거작전에 성공한 셈이다.
이번 카사 델 아구아 철거의 공과는 훗날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된다. 이미 법집행 원칙과 문화예술 마인드를 놓고 행정과 문화예술계 인사 들 간에 한바탕 논란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유네스코 3관왕에 빛나는 제주도가 문화유산 파괴에 앞장섰다는 지적에서 당분간 벗어나기는 힘들 듯하다. 세계적 건축 거장이 서귀포 해변에서 설계한 건축물을 다른 장소로 옮겨 복원하려는 시도 자체가 난센스에 가깝다.
공교롭게도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한 것은 해군이 강정 해군기지의 구럼비 발파에 나선 지 1주년 되는 시점이다. 강정 주민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구럼비에 전국 예술인들의 찬사가 쏟아졌건만, 굉음에 휩쓸려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버려 도민들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바 있다. 구럼비 바위가 해군에 의해 발파된데 비해, 이번 카사 델 아구아는 제주도정에 의해 철거된 것은 아이러니다.
최근 서귀포시의 옛 추억을 간직한 솔동산에 문화거리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나, 과거 흔적이 거의 사라져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막대한 예산을 들인 탐라대전에서 유일한 작품인 제주전통 덕판배는 별다른 연고가 없는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에 옮겨질 예정이다. 지킬 것과 버릴 것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문화예술 마인드에 휘둘려, 시민들이 정처 없이 표류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솟구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