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 네번째 책- 황석영의 '바리데기'

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에서는 2012-2013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선정도서를 읽은 독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제주농장 팜라이프, 맛있는 철학자이길 소망하는 40대 주부 오송미 씨. 대화는 토평 사거리에서 눈에 확 띄는 이상한(!) 수다뜰 작업실에서 밀감처럼 새콤달콤한 만남이 진행됐다.

대담자 오송미씨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이하 안)= 토평을 지날 때 마다, 참 재미있는 건물이라고 눈여겨 보았는데요. 이렇데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칠십리책방 독자에게 직접 소개를 부탁합니다.
오송미(이하 오)= 저는 농부인데요, 농사만 짓기 보다는,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생각하며 아이처럼 까르륵 웃는 EM제주농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서 제 꿈도 그렇고 별명도 맛있는 철학가입니다. 농사에서 오는 희노애락을 과일 속에 담아서 전달하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어요
 
안=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이 다른데 오송미 씨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시고 계신 거네요?
오= 지금은 이일이 좋은데, 처음부터 이일을 꿈꿔왔던 거는 아니지요.
 
안= 그럼 다른 무언가 꿈꿔오시던 일이 있었던 건가요?
오= 제가 특별히 꿈꿔왔던 일이 따로 있던 것은 아니구요.(약간 망설임) 사실은 저희 남편이 농사를 선택했던 일인데요. 자꾸 농사에 실패를 거듭하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매우 컸죠. 그때는 뒤돌아가려해도 도저히 돌이킬 수도 없고 고민 끝에 결국은 함께 농사를 짓자고 했죠. 농사는 남편만 혼자 했던 일이거든요. 농사라는 게 밖에서 보는 것과 직접 짓는 것이 상당히 차이가 있거든요. 어찌하건 직접 농사에 뛰어들어 보니 농사를 더 잘 알게 되고 알게 되니까 사랑하게 되었어요. 농사에서 오는 상상력이라는 것이 진짜 무한해요. 그런 무한함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무한하더라구요! 이 농사라는 직업이 참 대단하다. 정말 망해 보고야 비로소 알았죠(다같이 웃음)
 
안=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읽기 전에 바리데기 설화에 대해서 알고 계셨나요?
오= 오구대왕의 버려진 딸이지만 결국에는 역경을 딛고 오구대왕의 목숨을 살린다 라는 정도지요.
 
안=  황석영의 바리데기와 바리데기 설화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오=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바리데기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생각되어지더군요. 우리 제주는 더욱 바리데기 설화와 더 친밀하다고 생각되어져요. 제주에는 일만 팔천여 신이 있다고 하죠. 사람들은 특정종교를 믿지 않으면 모두 미신이라고 여기기도 하는데요. 제주의 종교에는 종교 그 자체의 교리와 함께 정서적으로 지역여건에 어울리는 민속신앙이 물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저는 그런 특정 종교 만이 아니라 제주인이 마음에 믿는 모든 것들이 일종의 신앙이라고 생각해요. 제주라는 척박한 섬에서  우리 제주인들이 어쩔 수 없이 접해야 하는 역경과 고난을 그 신들에게 빌고, 의지하며, 이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이거든요. 그래서 바리데기를 읽으면서 더 쉽게 이해되고 공감이 되었어요.
 
안=  저자인 황석영 작자는 과연 주인공 바리를 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오= 작가는 사랑받지 못하고 소외 되었기에 더욱 사랑의 소중함을 알고, 아픔을 알고, 나아가 아프고 힘든 사람을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바리를 정한 것 같더군요. 결국 주인공 바리는 자신의 아픔을 승화하여 타인의 상처를 가슴으로 안아 줄 수 있는 인물이죠. 그래서인지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바리가 속상하거나 슬프지만은 않았어요. 자신이 소외된 자로서 소외된 자들을 이해해고 용서까지 하게 된거죠. 만약 바리가 역경과 고난이 없이 사랑만 받는 인물이었다면 이 소설은 이루어질 수 없겠죠.
 
안=  바리라는 인물이 만약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인물이었다면... 예를 들어 딸 부잣집 일곱째 딸이라면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 글쎄요. 원래 사랑받고, 인정받은 귀한 자식은 잘 안되는 것 같은데! 오히려 부모 손길이 덜 간 자녀가 효도한다고들 하잖아요(웃음) 오히려 가족을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또  더 많은 능력도 가지고 있더라구요!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스스로 이겨낸 어려움이 더욱 지혜를 주고, 자신을 발전하게 하는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여겨지네요.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도 바리가 불쌍하고 측은하기 보다는 바리가 사람들의 과거를 보고 그 아픔을 치료하는 능력을 갖기 위해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되네요.
 
안=  이 책을 읽다보면 깊은 슬픔에 빠지게도 되는데 오송미 씨는 이런 슬픔을 경험하셨는지요. 만약 그랬다면 그 슬픔을 극복했던 방법이 있으신가요.
오= 몇 해 전에 농사가 많이 어려웠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 해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저한테 친정아버지는 신앙과 같았지요. 제가 언제나 믿고 의지하는 존재였거든요. 늘 저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끌어주셨거든요. 그런 존재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더군요. 게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그 때의 힘든 심정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에서 뿌리 깊게 아려옵니다. 그 슬픔의 극복은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정말 시간만큼 좋은 약은 없는 것 같아요. 그 힘든 시기가 지나가기를 그냥 견뎠지요. 이것을 극복이라고 말해야 하는 가 싶네요.


 
안=  바리데기 설화에서는 생명수라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시켜 주는 매개가 되는데 황석영의 바리데기 에서는 전지전능한 생명수 보다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희망이라는 것이 그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송미 씨에게 있어서  삶의 생명수는 무엇인지요.
오= 밥이에요! 산해진미가 차례진 근사한 밥상이 아니라 된장찌개에 김치만 있어도 되는 우리 엄마 밥이요.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유난히 생각나는 것이 엄마 밥이지요. 밥은 그냥 밥 이라기보다는 그 밥을 짓는 이의 마음과 먹는 사람의 애정에 들어 있잖아요. 그 마음이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  이 책에서 추천 마음에 담고 싶은 문장을 적는다면?
오= 장승이와 바리공주의 약속으로 길 값, 나무 값, 물 값으로 석삼년 아홉 해를 아들 낳아 주고 살림 살아 주어야 하는 세월 이라는 문장이 있어요. 어느 것이나 세월, 즉 시간이라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진리를 이야기해 주고 있지요.
 
안=  이 책의 소개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오= 우리의 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은 외국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책은 상대방을 이해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죠. 결국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고 싶은 외국인에게 좋은 훌륭한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안= 주인공 바리데기가 오송미 씨 앞에 있다면 뭐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으세요.
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한번 꼭 안아주고, 밥해줄 테니 먹고 가라고 할 것 같아요.  밥 해 먹이고 싶어요(다같이 웃음)
 
안=  이 책에서 피해갈 수 없는 질문중의 하나가 남존여비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오= 우리 사회가 많이 제도적으로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곳곳에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남녀를 차별하고 있지요.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겠지요.

안=  오송미 씨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 계기가 있나요?
오= 함께 사셨던 할머니는 까막눈이셨어요. 한글을 모르는 문맹이죠. 그래서 제가 늘 책을 읽어드렸죠. 할머니는 제가 읽어드리는 것을 즐거워 하셨어요. 그 덕분에 제가 많은 책을 읽게 되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책읽기 재미를 알게 되었죠. 저희 할머니께서 95세에 돌아가셨는데 한글을 몰라서 책을 직접 못 읽는 것을 참 많이 아쉬워 하셨어요. 그래서 유언도 책을 읽으면 평생이 심심하지 않다셨어요. 그 때 독서는 평생을 심심하지 않게 해 주는 좋은 놀이감이고 친구란 깨달음이 있었지요.
 
안=  나에게 책이란. 
오=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다 들어있는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싶어 하고, 꿈꾸고 싶어 하는 삶의 보석들을 책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정리=유정숙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위원
사진=시민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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