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 5.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에서는 '2012-2013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선정도서를 읽은 독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지난 5월 제2기 서귀포귀농귀촌교육을 수료한 정규환 씨. 50대 초반인 그는 본격적으로 서귀포에서 텃밭을 일구고 생태적 가치를 나누고 살고 싶어 하며 취미로는 번역 일을 병행하고 있다. 유쾌한 북토크는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표선 시민북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진행됐다.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 이하 안)=제주에 관광객이 아닌 살고 싶어서 오셨는데 실제로 살아보니 어떤가요?
정규환(이하 정)=제주에 오기 전에 강원도 원주에서 좀 살아봤지요. 서울을 떠나는 이들이 선택하는 지역이 강원도와 제주를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얼마간 원주에서 살았는데 원주가 나쁘다기 보다는 제주가 더 좋아서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서귀포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정규환씨

안=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이 책을 읽기 전에 피에르 라비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정= 서귀포시민의책을 통해서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참 매력적인 분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직접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피에르 라비가 쓴 다른 책을 찾아서 읽을 계획입니다.

안= 이 책은 생명농업 학자이자 철학가, 실천가라는 주인공의 삶과 사상에 관한 책인데 읽고 난 소감이 어떤가요? 
정=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묵묵히 실천하며 사는 것을 보면서 나와 통하는 친한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만약 만나게 된다면 끝없이 대화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안= 피에르 라비는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 1장에서 나무는 대지와 하늘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며 대지를 보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곧 나무의 노래라고 얘기하는데 혹시 나무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정= 제가 전에 살던 곳은 서울의 외곽지역입니다. 그래서 그 때도 나무의 노래 소리를 자주 듣곤 했지요.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제주에서는 더욱 그 소리를 자주 듣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소리이죠. 어쩌면 생태계를 구성하는 많은 동식물의 소리가 있겠지만 그 중심이 나무의 노래라고 보이고, 게다가 수령이 많은 나무의 노래는 그 자체가 숲이란 생각도 듭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무가 결국 지구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생태계의 뿌리이라고 여겨집니다.

안= 라비는 가축과 야생동물의 예를 들면서 과일나무는 인간에게 길든 나무라고 하던데요.
정= 동식물이 자연 그대로의 존재가 있고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는 과정을 통해서 동물은 가축으로 식물은 작물과 채소 등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특히 과일나무와 꽃은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식물이지요. 저는 때때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상태에서 저렇게 크고 탐스러운 과일이 만들어질까를 제 자신에게 질문해 보는데요. 결국은 인간의 조작에 의해서 큰 열매를 생산하기 위한 기형적이란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안= 피에르 라비의 생명사상의 출발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요.
정= 그의 생명사상은 라비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 출신이며 이후 프랑스에 입양되어 성장했지요. 그는 어린시절 알제리의 오아시스에서 자라며 느꼈던 자연을 통해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죠.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유아기와 학령기에 자아가 형성되게 되는데 그때 주위환경은 그 인물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되지요. 그것이 인간존재의 기본 텃밭이 된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결국 피에르 라비도 출생지이며 성장기 환경이었던 알제리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출발하지요. 그리고 농업에 대한 그의 태도 역시도 오랫동안 오아시스에서 선대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방식을 근거로 하고 있지요. 이것은 라비만이 아니라 제 경우를 보더라도 같습니다.

안= 환경론자 혹은 생태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에 자주 서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 자본주의라는 것은 결국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는 구조이죠. 이 과정에서 자본의 극대화는 곧바로 노동의 문제로 이어져서 노동의 소외를 낳게 되지요. 결국 노동의 소외는 인간의 소외를 말하는 것이고 그 지점에서 자본의 극대화는 인간을 포함해서 자연을 단지 자본증식의 유용한 수단이라고 보게 되지요. 그렇기에 환경론자나 생태주의자는 자연을 자본증식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겁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그 자연을 가공하는 과정에인간 노동이 개입되기에 자연과 인간에 대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다함께 웃음) 또 규모면에서 보자면 자본주의를 넘어서 거대자본주의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이리저리  지구를 흔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생태계를 지키고자하는 이들의 바람은 그 원인 즉 진범이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안= 피에르 라비는 단지 생태운동만이 아니라 도시적 삶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가요.
정= 젊은 시절 라비는 프랑스 파리를 떠나게 됩니다. 그가 생명농업을 위해서 도시를 떠난거죠. 그는 1차 산업을 희생하고 2차 3차 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 산업화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구조 속에서 도시화는 가속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20세기의 특징 중 하나가 거대도시의 탄생이거든요. 거대한 도시 속에서 한 인간의 존재는 능력으로만 평가받고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죠. 그렇기에 그가 파리 떠나서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라는 농촌에 들어간 이유는 농부가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도시적 삶에 대한 성찰의 결과이기도 하지요. 도시화는 전통적인 농경문화와 농업사회를 반드시 해체시키거나 축소시키는 과정을 겪게 되거든요. 이어서 농부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농사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지나친 화학농업과 탐욕적 자본주의에 의해 대규모의 농업으로 재편되는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통적인 농업을 유지하는 소농은 노동력을 상실하여 도시로 이주하여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게 되는 악순환의 구조가 있지요. 또 한 가지를 보자면 도시화가 진행 될수록 도로를 포장하고 높은 건물을 짓고 땅값이 올라가는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데 이로서 육체노동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대규모의 개발은 오히려 생태환경을 후퇴시키고 그 지역민의 삶을 개선하기 보다는 타지로 떠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개발은 필연적으로 숲은 깎아 내고 초지와 습지를 파괴하게 됩니다. 피에르 라비는 이런 모든 것들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죠. 저 역시 그의 생각과 같습니다. 제주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 피에르는 아내 미셸과 아르데슈라는 농촌으로 귀농을 했는데 같은 귀농자 신분인 정규환 님은 무슨 농사를 짓고 싶으신 가요.
정= 제가 농사를 짓고자 하는 것은 제가 먹을 것을 직접 얻고자 하는 것이죠. 시장 의존도를 가급적 최소화 하고자 합니다. 제주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온 것은 아니고요. 텃밭을 통해서 채소와 과일을 얻고자 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노동력을 빌지 않고서 가족이 함께 농사해서 땀의 가치를 깨닫고자 함이죠. 그리고 가능하면 제 노동력을 기반으로 약용식물을 하나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안= 그는 40년 동안 농부로 지내며 궁극적으로 목표한 것이 무엇인가요. 
정= 피에르 라비는 단지 농사를 경제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실현하는 것으로 삼았지요. 궁극적으로 보자면 생명농업를 통해서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하는 생태적 삶의 복원을 꿈꾸고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라비의 사상 중에 모든 생명에는 신성(神聖)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렇기에 생명의 복원이 신성의 회복이 있다고 믿은 거죠. 무엇보다 신성을 잃어버린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했고 인간의 신성회복이 생태계의 회복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실천한 분이죠.

안= 라비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환경보호론자를 오히려 거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정= 라비는 진정한 환경 운동가는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정치 성향을 띠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자칫 이념화 될 수 있고 정치 쟁론화 될 수 있는 환경보호에 대해서는 다른 차원의 얘기를 주장합니다. 글쎄요.... 이 책만을 읽고서 보자면 진정으로 실천하는 실천가의 진정성이 우선 중요하고 이것은 타인에 의해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결국 근원적인 목적이 상실된 작위적인 태도에 대한 경계라고 여겨지네요.

안= 라비가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정= 라비는 모든 인간 존재는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지만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갖고 있는 우월적 지위 역시도 겸손하게 낮추어야 한다고도 얘기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인간은 생명을 수단화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날 수 없고 이런 어리석음이 부메랑이 되어 인간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모든 생명에 대해 차등 없는 관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안= 그가 주장하는 현대 농업의 문제와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인가요?
정= 라비의 생명농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농업화학자 리비히를 알아야 하죠. 리비히는 토양화학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화학비료를 만든 사람입니다. 라비는 그릇된 화학비료에 의해 생산되는 농산물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농업의 산업화와 상업화는 역설적으로 농부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생태농업 즉 순환농업을 실천하고 있지요. 그가 말하는 생태농업은 한 가구가 1헥타의 토지를 농사하며 사람과 가축의 분뇨를 퇴비로 만들어 지력을 회복하고 농사를 짓는 전통적, 순환적 농사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요. 이런 그의 주장은 어쩌면 그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죠. 이미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농업에 대한 복원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이론적으로 얘기 했다면 그는 실천적으로 얘기하고 있지요. 지난해 서귀포시민의책읽기에서 선정된『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Helena Norberg Hodge)가 인도 북부 작은 마을 라다크에서 깨닫게 된 것처럼 생태적 삶과 지혜가 오히려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녀는 오직 경제성 합리성의 극대화와 물질적 풍요로움이 진정한 행복의 가치가 아니라고 지적하지요. 더 나아가 저생산체계구축과 느림의 철학이 새로운 의미의 발전상과 생태적 합리성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라비의 생각도 같은 흐름이라고 여겨집니다.

안= 라비는 발전이 곧 산업화라는 등식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하던데요?
정= 발전이란 용어를 역사적으로 보자면 19세기 공리주의자들이 매우 편향적으로 규정하였지요. 이후 실용주의를 거치면서 발전이란 당연히 국민 총생산이 얼마인가 즉 재화로 수치화된 발전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라비는 이런 발전의 기준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발전의 다른 차원 예를 들면 인간 의식의 진보나 둘 이상의 종이 영향을 미치며 더불어 진화하는 공진화(供進化)의 발전도 중요한 개념이죠. 최근에는 생태적 발전이란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런 현상 모두가 산업화를 뜻하는 발전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고 여겨지네요.

안= 정규환 님은 소비지향적인 사회가 갖고 있는 위험성이 무엇인가요?
정= 현대자본주의는 결국 대량소비를 통한 발전을 근간으로 삼고 있지요. 이런 모순적인 구조는 결국 한 쪽에서는 농업생산물이 가격과 불균형으로 남아서 버려지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라비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지요. 제3세계 국가에서 어린이들이 죽기위해서 태어난다고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위기라고 생각됩니다.

안= 그릇된 현대인의 사고방식에 대한 재미있는 라비의 실화들이 있던데 무엇인가요?
정= 이 책의 177~179장에 나오는 세 가지 예화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화학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농부들에게 비료를 주러 왔습니다. 농부들은 그 비료를 밭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매우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그 부족에서 가장 지혜로운, 나이 들고 눈이 먼 추장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작년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을 생산했어요.’ 추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는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아이들아, 매우 좋을 일이다. 내년에는 절반 크기의 밭에만 농사를 지어라.’
어떤가요? 일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길들어진 현대인들과는 매우 다른 태도를 갖고 있지요. 다른 두 가지 예화가 더욱 흥미로운데 이것들은 독자들이 직접 읽으셨으면 하네요.

안= 그의 책 10장에서 소박한 삶에 대해 적고 있는데 내용은 무엇인가요?
정= 라비의 소박한 삶은 조화로운 삶과 맥을 같이 합니다. 같은 생각은 다르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물질을 낭비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생명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고 있지요. 따라서 소박한 삶의 태도가 생태계에 대한 평등하며 조화로운 삶을 선순환 시켜준다는 뜻입니다.

안=라비는 교육의 본질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정규환 님이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정= 저는 단지 정치적인 혁명과 변화로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라비처럼 교육의 본질이 의식의 혁명에 있다고 얘기하죠. 그런데 라비가 주장하듯이 봉사와 타인에 대한 사랑, 공동체 의식 등 본질적인 가치 중심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교육과 언론이 중요합니다. 특히 언론이 바로서야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겠지요.

안=이 책을 누구에게 왜,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정= 저를 아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대량소비가 미덕인 현대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지구를 위해서 탐욕을 낮추고 어리석음을 낮추기 위해서 피에르 라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안=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정= 첫째로는 흙을 일구고 육체적노동하는 삶 둘째로는 사계절 속에서 제주의 자연 즉 바람, 하늘, 바다를 만나고 싶네요.

안=나에게 책이란
정= 절친이고 스승이다. 세상을 사는 지식과 정보를 재미있고 유익하게 가르쳐 주는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의미로 절친이고요. 스승이란 뜻은 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와 불변하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뜻으로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유정숙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위원

사진=시민 이동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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