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 여섯번째 책-주강현의 '제주기행'
'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에서는 '2012-2013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선정도서를 읽은 독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올해 초 서귀포에 정착한 민경천 씨. 40대 중반인 그는 제주 특산품 개발과 유통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제주에서 제주스럽게(!) 살고 싶다는 그를 만나 제주에 대한 그의 경험과 책읽기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었다. 주말의 한가로움이 묻어나는 늦은 저녁 서귀포시내 한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리필해 가면서 대화가 진행됐다.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 이하 안)= 제주에서는 ‘육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내보니 어떤가요
민경천(이하 민)= 처음에는 낯설었지요. 그런데 그 표현이 가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면서 역시 제주가 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는 그 ‘육지’라는 표현이 친근합니다.

안= 이 책, ‘제주기행’을 어떻게 읽게 되셨나요
민= 지인(知人)께서 제주도에서 살면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소개를 해 주셨지요. 서울에서 지금까지 태어나 살면서 ‘나는 서울특별시민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지요. 이제는 ‘나는 제주특별자치도민’이라고 생각하니 더 깊은 자부심이 들던데요.
안= 제주에 내려오게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민= 서울에서 꽉 짜인 생활에서 살면서 많이 답답했지요. 그리고 오랫동안 기업에서 일하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얻은 결론이 자연스럽게 제주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고민은 오랫동안 이었지만 결정은 비교적 신속했습니다.
안= 내려 온지 반년 정도 되었는데 만족하신지요. 그리고 주로 시간이 어떻게 보내셨나요.
민=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너무 좋습니다. 차로 20~30분 달리면 한라산이 있고 푸른 바다가 있지요. 그 자체가 만족이죠. 지금까지는 올레코스를 주로 걷고 있지요. 자연과의 동행, 삶의 여유를 느끼고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안= ‘제주기행’ 이 책은 여느 제주관련 서적과는 좀 다른데... 읽고 난 소감은 어떤가요.
민= 단순 정보를 알려주는 서적과는 다르게 제주를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 서적입니다. 지식 습득도 중요하지만 본질을 알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깨닫게 된 것은 ‘제주의 모든 현상은 때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만한 과정과 이유가 있으며 제주의 삶은 척박한 자연과 외부의 억압에 대한 순응과 응전의 과정이었다.’입니다.
안= 저자인 주강현씨는 제주가 제주島임에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제주道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제주를 바르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이 어떤가요.
민= 저 역시 그 내용을 읽으면서 상당한 깨달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지요. 온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벌써 제주특별자치도민(道民)으로 생각하고 있었지요. 이제는 내심 제주특별자치도민(島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다함께 웃음) 우리 삶의 실제는 행정구역상의 구분이 아니라 거주지가 가진 공간과 내외부의 관계에서 규정되고 있지요. 섬이 가지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애정을 가지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안= 제주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최근 제주이민의 가장 큰 이유기도 합니다. 그러나 홉스봄의 표현처럼 ‘만들어진 역사’에 대한 환상이 있지요. 실제로 살아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제주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민= 관광지로서 본 제주는 ‘만들어진 역사’에 충실한 공간이지만 실제 살아보는 공간의 제주는 ‘만들어지고 있는 역사의 공간’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아직까지는 제주의 실체를 확실히 깨닫지는 못 했지만 (물론 많은 시간이 흘러야겠지만) 제주를 알기에는 미완의 상태가 너무나도 많고 또 이를 제주답게 만들어 가야하는 숙제가 많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안= 저자는 제주를 인문학의 섬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섬이란 무엇인가요.
민= 작가는 통섭의 의미를 주셨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역사,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등등 이 섬 제주에는 한 가지로 해석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통합하여 유기적인 시각을 갖고 제주도민 전체가 같은 지향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안= 책에서 보면 제주에는 유적지가 많지 않기에 ‘문화유산답사’가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제주인의 삶의 방식, 생활자체가 문화유산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민= 개인적으로는 그 만큼 눈으로 보는 것만 으로는 제주를 다 소개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했는데요. 이러한 삶의 방식이나 생활모습을 정리하고 지속적으로 제주적인 삶, 즉 자연친화적 삶을 알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안= 서귀포하면 특히 밀감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밀감이 오랫동안 임금에게 진상되어왔고, 제주인에게 밀감은 고통의 작물이란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보자면 밀감이 문화유산이란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데요.
민= 앞서 이야기 된 것이지만 밀감의 과거 모습이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책 내용을 보고 ‘한(恨)의 작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상황을 정리해서 스토리화 한다면 제주 밀감의 가치를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아닌 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 5장 귤의 섬을 읽으면서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 보았지요. ‘천년(千年) 밀감’ 어떤가요!
안=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신칸트주의 철학자인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은 이방인으로서 새로운 사회를 관찰하는 것이 이방인으로서 고통은 따르겠지만 더욱 면밀한 탐색을 통해 적응하는 기술을 배운다고 지적했지요. 제주를 지켜보면서 탐색을 통해 얻은 적응기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민= 글쎄요. 제주 생활이 얼마 안되어서 기술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발품과 수용’ 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자연의 모습을 느끼고 감상하기에는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또 그것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구요. 인간관계에서는 ‘수용’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현지인들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옳고 그름을 논하기 보다는 제주인으로서 살아온 이들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안= ‘제주기행’에는 15개의 테마를 중심으로 제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람의 섬, 돌의 섬, 여자의 섬, 잠녀의 섬... 이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어떤건가요.
민= 제가 귤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제 5장 귤의 섬 부분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먹었던 밀감에 이런 역사가 숨어 있구나 하는 충격이 있었지요. 그런 마음으로 먹다보니 경건한 마음마지 들더군요(다함께 웃음)
안= 제 10장에서 장수를 원한다면 제주로 가라고 하면서 우영팟의 섬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로컬푸드의 성공이 가능한 곳이 제주라고 하는데 혹시 텃밭이나 농사를 지으시고 싶은 생각은 있으신가요.
민= 현재도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상추와 쑥갓을 재배하는 데 가끔 직접 뜯어서 먹는 상추쌈과 비빔밥 그리고 삼겹살 파티는 제주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안= 이 책에서 제주를 읽을 수 있는 15가지 핵심 키워드 중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것이 무엇인가요.
민= 생활에서는 ‘바람’이 가장 먼저 느껴지더군요. 시원하면서도 가끔은 생활에 지장을 주니 얄궂기도 하지만 제주는 역시 바람이 있어서 좋은 땅이라 생각됩니다. 바람이 제주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잠들지 않는 섬 제주. 역시 바람의 힘이 아닐까요!
안= ‘제주기행’에는 없지만 직접 본인이 느끼신 제주의 핵심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민= ‘기회의 땅’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생활하는 부지런한 분들에게 무궁한 기회가 있는 공간이라 생각됩니다. 이 기회란 의미는 단지 물질적인 풍요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노동이 있고, 쉼이 있고, 이웃이 있고 그래서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는 기회의 땅이, 제주가 아닌가 합니다.
안=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봉평을 무대로 하였기에 메밀 주산지가 강원도인줄 아는 이들이 많은데 오히려 메밀이 제주도의 대표 잡곡이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는지요.
민= 이 책을 읽으면서 제주를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두부를 해수로 만들어 낸 것이 둠비라는 사실, 가시덤불과 나무들이 혼재한 ‘곶’과 토심이 앝은 황무지 ‘자왈’ 이 합쳐져서 ‘곶자왈’ 등등 재미있는 것을 많이 알게 되었지요. 순식간에 제주문화해설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민= 제주에 입도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네요. 제주에 대한 백과사전, 필수도서입니다.
안= 민경천님이 생각하는 제주적인 삶이란.
민= 제주를 가슴으로 느끼고 열린 마음으로 사는 것!
안= 이 책의 추천 글을 한 문장으로 적는다면 무엇인가요.
민= 제주를 한 바퀴 도는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이 책을 통해 제주 본질의 여행을 해보자!
안= 내 인생의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민= 첫째는 가족과 성지순례를 가보는 것이고, 둘째는 제주를 대표하는 특산품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안= 나에게 책이란?
민= 심심풀이 땅콩, 가깝지만 먼 당신, 하지만 꼭 필요한 그대. 그래서 그대를 늘 사랑합니다.
정리 유정숙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
사진 시민 정을수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