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 7. 제주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
'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에서는 '2012-2013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선정도서를 읽은 독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안덕에서 책읽기 활동을 하는 오태영 씨. 40대 후반인 그는 지역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중심이 독서라고 믿고 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그와 함께 최근 사색과 힐링의 걷기 길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유배길을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유배길의 성지(聖地)인 추사적거지. 160년 전에 55세의 나이로 도착한 제주 유배지. 이곳에서 김정희는 비록 유배의 세월을 보냈으나 오히려 세한도와 추사체를 완성하였기에 형극의 시간이 예술의 완성으로 승화된 공간이기도 하다. 느리더라도 오늘 하루 제대로 사는 삶을 꿈꾸며 안덕에서 농사짓는 네 아이의 아빠 오태영 씨와 추사 유배지에서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갔다.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 이하 ‘안’)= 가까운 곳에 이런 좋은 명승지가 있는데 추사적거지는 자주 오시나요
오태영(이하 ‘오’)= 차로 지나쳐 가기는 해도 자주 오지는 못하지요. 그렇지만 때때로 이렇게 손님이 오시면 꼭 들르는 곳이기에 일년에 수차례는 찾아오는 곳입니다.
안= 추사 김정희에 대해서 한 문장으로 소개해 주신다면
오= 제가 김정희를 마음속으로 떠올려보면 빈센트 반 고흐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입니다. 고흐의 인생과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천재적인 재능과 열정이 있었지만 여전히 고독과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못하여 쓸쓸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지요. 추사 김정희도 역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제주가 유배의 섬이란 것을 평소에 잘 알고 있었나요
오=제 고향이 안덕이라서 그런지 유배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심이 있었지요. 유배라는 것이 결국 정치적인 형벌인데요. 책을 읽기 전에는 유배가 고위급 관리에게나 이루어지던 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조선 후기에는 다양한 유형과 비정치인에게도 내려졌던 형벌이란 것도 책으로 알게 되었네요.
안=제주를 유배지로 온 유배인 입장에서 본다면 제주는 ‘인내의 섬’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추사에게 제주는 어떤 유배지였을까요.
오=추사에게 제주 유배기간은 정신적인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단절의 시간’이란 표현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도는데요. 그는 조선의 중심인 한양에서 자신의 소유했던 권력과 재력을 내려놓고 타인에 의해 보내진 곳에서 단절의 시간을 보냈지요. 버려진 사람, 잊혀져가고 있다는 불안과 초조가 있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당시 조선 최고의 학자로서 제주민의 무지는 한없이 답답해 보이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입니다.
안=김정희에게는 무려 100여 개나 되는 호(號)가 있습니다. 그래서 백호당(百號堂)이란 호까지 생겨날 정도였는데 호가 정확히 무엇이고 대표적인 김정희의 호가 무엇인가요.
오=추사의 호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그가 사대주의자였다는 것을 알아야겠지요. 그래서 그의 호에는 사대주의 색채가 물씬 풍기고 있다는 것을 추사(秋史), 완당(阮堂), 보담재(寶覃齋)에서 알 수 있지요. 예를 들어 보담재(寶覃齋)라는 호는 중국 청대의 서예가요 문학가, 금석학자인 옹방강을 존경해서 그의 글씨를 수집해 놓고 존경한다는 의미로 보담재(寶覃齋)란 당호를 붙였던 겁니다. 그가 존경한 옹방강이 소동파를 존경해 자신의 서재를 '보소재(寶蘇齋)'라 이름 지었던 것을 추사가 이를 모방해 '보담재'로 이름붙인 것이죠. 그러나 그렇게 많은 호가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열정과 자기를 찾고자 애쓴 흔적, 무수히 많은 학문의 길을 물었던 건 흔적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안= 추사는 약 9년을 제주 유배지에서 생활하였지요. 무엇을 하며 지냈나요.
오=제주 유배기간 동안 그는 그동안 살아온 것을 돌아보고 이곳에서 무엇에 정진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기간이었지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저도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얼마동안은 학업으로 인해 육지에서 시간을 보냈지요. 돌아와서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십여년을 침묵과 꽤 가까이 지내고 있는데... 침묵은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분노와 부정을 삭혀주기도 합니다. 또 침묵은 내 자신을 보다 현명해지도록 이끌어 주기도 하며 하나의 사건에 대해 관조(觀照)하도록 도움을 주더군요. 그래서 결국 내려놓고 비울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바로 침묵이죠. 추사 역시 그런 시간을 거쳐서 세한도와 추사체가 제주 유배 기간 중에 완성된 이유라고 여겨집니다.
안=추사는 제주 유배생활을 통해 ‘단 하루의 만남이라도 평생 동안 잊지 못하는 관계로 이어진다’〔一日爲師終身不忘〕라고 하여 소중한 인연과 많은 제자를 만들게 됩니다. 추사의 제자에 대한 설명 바랍니다.
오=추사는 제주 유배기간동안 많은 이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제자를 가르쳤지요. 제자에 대해서는 책에 잘 정리되었기에 책을 사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구요(다함게 웃음)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들었던 의문이 있습니다. 오늘 이 추사의 작품을 보면서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한문을 이해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한자조차 읽지 못하고, 서양화는 익숙하지만 수묵화니 문인화에는 너무 낯선 모습! 저 또한 추사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제자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거죠. 불과 160년 전의 문장과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후손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수화, 수묵화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밀레, 마네, 모네, 고갱을 모르는 것은 무식하다는 상식의 범주에 문제가 있는 거죠.
안=제주가 조선시대 유배지로서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곳이라던데 그 설명을 부탁합니다.
오=한양과 가장 멀리 떨어진 섬, ‘단절’의 섬. 지역민이 유배인의 의식주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관의 통제가 가능했다는 점. 그렇기에 제주가 조선 유배지로서 최적지였다는 겁니다.
안=추사하면 ‘세한도’(歲寒圖)를 빼놓을 수 없을 듯 하네요. 오태영님이 보시는 세한도는 어떤가요
오=제가 느끼는 세한도는 참 난감합니다. 뭔가 이상하고, 그 기이함 속에서 조화가 있고, 한라산의 고목 같은 단단함이 있는 그림이죠. 이 책을 읽다 세한도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어이 사본을 구입해서 세한도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창문 하나 달랑 있는 허름한 집 한 채, 나무 네 그루, 글씨 몇 자, 그리고 인장 몇 방. 배경도 없고, 사람도 없고... 자기만의 영혼의 자유로움을 표현했던 추사의 그림을 보면서 아직은 그림에 대한 깊은 인상은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너무 제가 솔직했나요!(다함께 웃음)
그래도 그럴듯하게 설명하자면 풍성한 잎 다 떨구고, 껍데기 떨구고 오롯이 뼈대만 남은 듯한 고목처럼 지내는 자신에 대한 모습!
안=이 책을 잘 읽어 보면 추사가 훌륭한 당대의 학자이지만 우리가 예술가로 기억하는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문장 보다는 글씨가 유명한데요. 그의 글씨인 ‘추사체’는 어떤 글씨인가요.
오=안덕독서문화축제를 함께 준비하면서 안덕추사체연구회장이 동창인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친구를 통해 추사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요. 추사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사를 이해함이 우선할 겁니다. 추사가 이전까지 무학대사의 비라고 알려졌던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를 고증함으로써 우뚝 섰던 학자이며 청국의 문화를 직접 둘러보고 다양한 채널을 가졌던 의식있는 사대부로서의 자존심이 있던 학자였죠. 또 경제적인 넉넉함과 고위관료를 역임했다는 것조차 과거의 기억으로 돌리고 제주 유배를 통해 무려 벼루 10개와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앴다고 하면서 완성된 글씨이죠.
안=조선시대에는 제주가 유배지였고 지금은 치유와 휴식의 섬으로 변모되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타인에 의해서 보내지는 곳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섬으로 변했는데 그 차이가 뭔가요.
오=제주에 대한 애정은 별개로 하고 삶의 척박함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궁핍의 섬, 수탈의 상처와 절망의 끝을 부여잡고 버티고 앉은 섬. 대한민국 1%의 초라함으로 제주민은 아직도 제주섬 탈출을 꿈꾸고, 섬 밖의 사람들은 오히려 휴식처로 제주를 꿈꾸고 오죠. 제주민의 정서 바닥에는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쿠다’ 라는 말을 자주하죠. 자기를 감추는 익숙한 제주인들은 관광객과 이주민들을 인정하지 않고 못 본 채하거나 따로따로 구분해 버리는 것이 아직은 익숙한 듯합니다.
안=추사에게 제주 유배지는 어떤 의미였나요.
오=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추사에게 제주 유배는 버리고 비우는 과정이었지요. 그래서 결국 그 인고의 시간을 통해 추사체를 완성한 곳이 바로 제주입니다. 자연을 벗 삼아 한 가지를 목표로 정진하게 하는 도량이 바로 제주이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최근 제주에 살고자 오는 분들도 추사처럼 자연을 벗 삼아 한 가지에 정진하는 것은 어떨까요!
안=이 책을 통해 추사의 열정을 발견하게 되는데 책을 읽고 난 소감은 무엇인가요.
오=이 책의 기록은 불과 이 땅에서 일어난 160여 년 전의 얘기입니다. 추사 유배지에서 이렇게 대화를 하지만 그 시간 보다 너무 멀리 격하게 동떨어진 문화적 변화를 생각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한문은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한자도 읽지 못하는 시대, 세로쓰기가 가로쓰기로 변해 이제는 옛 이야기 거리로 조차 전할 수 없는 현실! 상형문자인 한자와 그림을 따로 생각하지 않고, 상형의 근원을 묻고 또 물으며 열정에 열정을 쏟았을 시간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생각을 접고, 외래문화의 틀 속에 우리의 정신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질문해 보고 그 해답을 고민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추사선생의 삶을 더 들여다보고 싶지기도 했구요. 선생의 글과 문자을 깊이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안=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오=고통이 클수록 그 한가운데에서 피어난 열정의 결과는 빼어난 것이란 것을 알게 해 주네요. 그래서 호기심으로 뭔가를 쉽게 시작하고 금새 중단하곤 하는 내 딸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안=선생님께 제주는 어떤 의미인가요.
오=제주 4.3의 상흔이란 상처로 인해 역사의 짐이 무거운 땅. 그래서 영원한 평화를 꿈꾸는 내 삶의 중심입니다.
안=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오=가족과 함께 대지의 어머니, 안나푸르나1)를 가는 것, 꼭 한 번은 보고 싶습니다. 비록 긴 여정이 고통으로 다가오더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앞에 서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혼자만의 생각인데 ‘침묵과 관조(觀照)’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안=나에게 책이란
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알 수 있는 렌즈 같은 것이죠. 책을 통해서 저자를 알게 되면서 동시에 내가 만나는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죠. 무엇보다 내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도록 이끌어주는 동반입니다.
사진․정리 유정숙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