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추사 김정희의 발자취를 찾아-1
추사체의 창시자이자 금석학-역사학에 족적 남긴 학자
제주 유배지부터 예산-과천까지, 지자체 곳곳에 기념관
추사 김정희는 현대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추사체' 명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1786년에 태어나 1856년에 생을 마친 김정희는 조선후기 문인학자로서 찬사 받는 추사체뿐만 아니라 금석학, 역사학, 불교학에 차(茶)까지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지금 김정희를 높게 평가하는 실력의 기원을 보면, 기구하기 까지 했던 그의 일생을 살펴보게 된다. 특히나 8년을 머물렀던 제주 서귀포시 대정에서의 유배는 추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지적 수준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추사의 흔적은 그가 태어나고 묻힌 충남 예산군부터, 체계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경기도 과천시 추사박물관,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무안군 초의선사 등의 사찰과 제주도 대정읍 제주추사관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사가 머물렀던 장소에서 그를 만나다
충청남도 예산군은 추사가 태어난 고향이다. 현재 이곳에는 생가와 무덤이 나란히 붙어있어 추사 삶의 처음과 끝을 만날 수 있다. 김정희가 중국에서 가져온 씨앗이 자랐다는 백송은 지금까지 남아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고, 고택에서 멀지 않은 화암사에는 추사의 친필로 바위에 새겨진 필적암각문이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경기도 과천시 추사박물관은 올해 6월 3일 개관하면서 시민들과 만난 지 이제야 두 달을 바라보고 있지만, 자료나 구성은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벼루 모양을 본뜬 박물관 외형부터, 추사 연구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일본 학자 후지츠카 치카시의 기증 자료, 추사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머물렀던 과지초당까지 한 곳에 모여있다.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에는 추사체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현판이 있다. 특히 세상을 뜨기 3일 전에 남긴 글씨에, 자만심으로 걸려있던 다른 이의 현판을 떼고 자신의 것을 걸었다가 유배 뒤에 다시 바꿨다는 이야기까지 스토리텔링을 접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숨어있다. 전라남도 무안군 초의선사에서는 추사의 동갑내기 평생지기였던 초의가 어떻게 살아왔고 추사와 어떤 인연을 이어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제주도 대정읍 추사유배지는 그가 55세 나이로 죽음 직전에 겨우 살아남아 8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장소가 복원돼 있으며, 현대적인 건물로 지은 제주추사관은 다양한 기증품과 현판, 편지, 세한도 사본 등이 전시돼 있다. 뛰어난 자연을 둘러보며 걷는 유배길은 제주만이 가질 수 있는 작품이다.
▲고통 속에 빛났던 추사의 삶
비록 수백 년 전 인물이지만, 추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증조할아버지가 영조대왕의 사위였고, 아버지가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자신 또한 병조참판 등 관직에 오르며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온 추사는 안동 김씨 세력가들의 모함을 받아 모진 고문 끝에 제주도로 귀향을 보내진다. 그것도 유배지 가시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는 가혹한 '위리안치'라는 형벌을 받는다.

낯선 풍토에 건강도 약화되고 유배 중에 아내를 잃는 큰 슬픔과 외로움을 겪는 시련의 시간이었지만, 추사는 학구열을 불태우며 세한도라는 생애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등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의지를 보였다.

조선 후기 최고의 문인이자 학자로 인정받는 높은 수준의 경지는 고통을 견디고 견디며 만든 정제물인 셈이다. 때문에 그가 머물렀던 지역마다 뜻을 기리는 기념관이 생길 만큼 현대 들어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서귀포신문>은 예산군 추사고택, 과천시 추사박물관, 강남구 봉은사-해남군 대흥사-무안군 초의선사, 서귀포시 추사유배지 등 추사의 흔적이 세워진 장소를 둘러보며 삶을 되돌아보고,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기념관의 특징도 비교하며 서귀포 추사유배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한형진-박소정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