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올레, 의욕적 출발에도 강화나들길에 흡수 경향
<우정과 소통의 길, 제주올레- 4>

 

푸른 산과 넓은 들판이 어우러진 강화올레의 고즈넉한 풍경.

 

▲강화올레, 강화나들길에 흡수 양상  

역사와 문화의 고장 강화도에도 제주올레와 비슷한 도보여행길이 만들어졌다.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과 막역한 사이인 한의사 이유명호씨는 2008년 제주올레 개장 이전부터 강화도 구석구석 길 위를 누벼 다녔다. 그는 제주올레가 전국적으로 걷기여행 열기를 한창 부추길 무렵, 그간의 도보여행 경험을 토대로 강화도에도 ‘강화올레’란 이름의 두 개 코스를 선보였다.       

강화올레 2코스인 망월돈대.

강화도는 고려시대 왕릉과 건축물,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려 했던 방어시설, 고인돌 등 역사문화유적과 천연기념물 두루미 서식지 등 천혜의 자연생태환경을 갖춰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고 있다. 

강화도에서 바라본 석모도와 갯벌.

강화올레 1코스는 해발 291m의 봉천산을 오른 뒤 수로를 따라 들판을 가로질러 창후리 포구에 이어지는 약 4㎞ 가량의 코스. 2코스는 해발 435m의 고려산 정상을 종주한 뒤 고인돌군을 거쳐 수로를 따라 망월돈대로 이어지는 약 10㎞의 코스다.  

망월돈대에서 바라본 석모도 해안.

강화올레는 제주올레와 달리 이국적이고 수려한 풍광은 드물지만, 평야와 갯벌, 수로 등 현대문명에서 비껴간 소박한 풍경을 품어내고 있다. 이 길을 개척한 이유명호씨도 수도권 사람들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강화도의 속살같은 산과 들을 마구 걸을 수 있어 ‘걷기의 천국’이라고 칭했다. 

망월돈대.

강화올레 1코스인 봉천산 정상에 오르면, 바로 북한과 접해 있어 송악산 등 북녘의 산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일부 강화올레 주변은 군사보호시설로 지정되면서 민간인들이 드나들 수 없도록 삼엄한 철조망이 길게 가로막고 있다.

봉천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고려시대 외침으로 수도를 옮길 무렵, 개성에서 강화로 옮겨 온 국가사찰 봉은사지 5층 석탑을 만나게 된다. 이렇듯 강화올레를 걷다보면, 외침과 부침의 지난 역사와 더불어 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접할 수 있어 색다른 감흥에 빠져들게 된다.  

강화올레 구간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인 봉은사지 5층석탑.

강화올레가 첫 선을 보일 당시, 제주의 콘크리트 개발바람을 떠올리듯 강화도에도 대규모 토목개발 시도가 활발히 펼쳐졌다. 정부와 지자체, 유력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강화도 일대에 조력발전시설과 해상매립공원, 인공섬 조성 등 거창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환경‧ 생태단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강화도에는 분단의 역사, 개발과 생태의 긴장, 미래의 평화까지 고루 체험할 학습장으로서의 걷는 길이 필요하다고 이유명호씨가 줄곧 강조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화도를 아끼는 일부 지역주민들은 그나마 강화도 북쪽에 철조망이 계속 남아야, 독특한 생태자연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강화나들길 안내간판.

하지만 강화올레는 한 개인이 별다른 후원 없이 스스로 개척한 길. 걷기코스가 만들어진 이후 뜻있는 인사들은 찬사를 보냈지만, 전국적으로 길에 대한 홍보는 미흡한 편이었다.

그러던 중 강화도에는 2009년 3월부터 강화나들길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조선말, ‘심도기행’이란 책을 펴낸 화남 고재형 선생이 노래한 발자취를 따라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 것.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비영리단체인 (사)강화나들길이 발족되면서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를 답사하며 나들이하기 좋은 길이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강화나들길 구간에 포함된 외침 방어시설 초지진.

강화나들길은 현재 강화 본섬과 석모도 등 3개 유인도에 걸쳐 총 14개 코스 15개 구간에 246.8㎞가 조성돼 있다. 2012년 전국지역발전사업 평가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되는 등 강화도를 대표하는 도보여행코스로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강화도에 처음 걷기코스를 선보였던 강화올레의 자취는 서서히 뒷전으로 사라지고 있다. 강화올레 1코스에 포함된 봉천산 등산로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걷기코스가 겹치는 망월돈대 등 일부 역사명소에도 강화올레 문구는 찾아볼 수 없고 강화나들길 안내판만 크게 내걸려 있다. 

 
▲ 가평올레, 수해 이후 지지부진

 경기도 가평군은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청평호, 남이섬, 자라섬, 대성리 등 국민 유원지들을 거느린, 수도권의 대표적 휴양명소의 하나다. 가평군은 최근 전국적으로 걷기열풍이 확산됨에 따라 2010년부터 명품 트레킹 코스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가평올레 1코스 자라섬 재즈길의 명소 넝쿨길.

이에 역사와 문화, 관광, 건강자원을 융합한 ‘가평올레길’ 조성을 위해 (사)제주올레 관계자 초청특강을 가졌다.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올레’ 명칭 사용 승인을 받고 운영 컨설팅까지 받았다.

가평군은 푸른 숲과 강, 들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건강한 숲길조성을 위해 끊어진 길을 잇고 새로운 길과 잊혀진 길을 찾아내며 길 만들기에 나섰다. 가평올레는 2010년 11월 자라섬 제1코스가 첫 선을 뵌 이래 연인산과 청평면 등 10곳에 128km의 길이 만들어졌다. 전체 코스를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4시간 정도.  

자라섬은 국내 최대 규모의 오토캠핑과 텐트촌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가평올레길은 수변과 친환경 시설 등이 포함된 마을형, 시가지와 계곡,명산,농촌지역 등을 지나는 건강형, 체험마을, 산림, 폭포,호수 등을 가진 계곡형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가평올레는 2011년 여름 기록적인 폭우로 올레길 대부분이 유실되면서 엄청난 시련을 맞게 된다. 크고 작은 산사태로 나무나 흙더미 등 장애물들이 올레길을 가로막고 있어 지금까지도 복구가 이뤄지고 있다.

기평올레 2코스 물안길.

전체 10개 코스 중 현재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길은 1코스 하나이지만, 그나마 옛 흔적은 많이 사라졌다. 당초 구상한 20개 코스는 고사하고 기존 10개 코스에 대해서도 도로 복구는 물론 안내판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도보여행객들의 발길은 뜸한 편이다. 

가평올레 2코스 물안길.

가평군은 지난 번 수해를 계기로 올레길 조성에 대한 의욕이 한풀 꺾이면서, 관련업무도 당초 에코피아추진단에서 산림과 1개 부서로 넘겨버렸다.

지난해 1월에는 가평올레길 기초조사 및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 수해피해가 덜한 코스를 중심으로 가평올레길 4개 노선 35.9km를 새로 지정했다. 이어 올해에도 가평올레길 5개 노선을 새롭게 지정할 예정이다. 

가평올레 물안길.

일부 시민들은 올레길 조성과정에서 제대로 된 코스 정비보다 안내간판 설치가 먼저 이뤄지는 등 성과위주의 전시행정 표본이라는 지적도 제기한다.

(사)제주올레와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가평올레가 그간의 시련을 딛고 새롭게 재도약할지,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현모. 최미란 기자>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