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추사 김정희의 발자취를 찾아 <4> 천재 예술가의 면모

추사 김정희는 엄청난 노력파였다. 과천에서 말년을 보내던 추사가 친구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 여실히 드러난다. "제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 되지만 70년 동안 벼루 열개를 갈아 구멍을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닳게 했습니다."

김정희는 '추사체'란 독특한 글씨체를 남긴 조선 대표 서예가이면서도 금석학 등 학문연구를 비롯해 그림, 시 등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 해남 대흥사에 가면 현판 글씨에 얽힌 일화가 있다. 현재 대웅보전에는 원교 이광사의 현판이, 그 옆에 백설당에는 추사 김정희의 무량수각 편액이 걸려있다.

■ 옛 글씨를 찾아서= 어린시절, 추사는 짧은 기간이지만 북학파 학자인 박제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박제가는 김정희가 6살 때 입춘대길이라 써서 대문에 붙인 글씨를 보고 아이의 스승이 되겠다고 자청해 인연을 맺었다는 일화가 있다. 박제가와의 인연은 추사가 청나라의 고증학과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추사는 24살때 동지부사로 가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자제군관자격으로 꿈에 그리던 연경(현재의 북경)에 가 청나라 석학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 스승으로 삼았다. 40여일 동안 머물면서 학문적인 교류를 하면서 금석학에 몰두하게 됐다.

▲ 추사가 쓴 대흥사의 무량수각 편액

조선으로 돌아와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는 옛 비석들의 글씨를 조사하는 등 금석학 연구에 매달렸다. 그 결과 31살때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를 찾아내 비석에 남아있는 68자를 판독,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 이북까지 영토를 넓힌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임을 확인하고 세상에 알렸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를 보존하기 위해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초의선사 유적지에 있는 초의의 동상
■ 명필 현판 떼어낼만큼 기세등등했지만= 전남 해남 대흥사에 가면 현판 글씨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추사는 54세때 제주로 유배를 가던 중 친구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렀다. 추사는 당시 남도의 명필로 꼽히는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현판을 보더니 촌스럽다며 떼어내라고 했다. 그 대신 자신이 써준 무량수각 현판으로 바꾸라고 했다. 추사는 유배를 떠나면서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기세가 당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8년 3개월간의 제주 유배생활을 끝마친 추사는 달라져 있었다. 다시 대흥사에 들러 초의선사를 만난 추사는 자신이 쓴 현판을 올려다보고는 명필 원교의 글씨를 못 알아보았으니 대웅보전의 자신이 쓴 편액을 내리고 다시 원교의 현판으로 걸라고 했다. 

지금은 대흥사 대웅보전에 원교 이광사의 현판이, 바로 옆 백설당에는 추사의 현판이 걸려 있다. 또, 추사가 쓴 무량수각 편액 바로 옆에는 해사 김성근이 쓴 백설당 편액이 함께 걸려있어 조선후기의 명필의 필체를 한 눈에 볼수 있는 쏠쏠하다. 특히, 해남군은 토요일과 일요일 대흥사 내에 문화관광해설사를 배치해 방문객들이 관련설명을 들을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초의선사에게 선물한 명선= 동갑내기인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의 우정은 애틋했다. 두 사람은 30세 때 한양에서 처음 만나 평생의 벗으로 이어왔다. 초의는 제주로 유배간 추사를 위로하기 위해 그가 좋아했던 차와 서신을 수시로 보냈다. 또, 추사가 아내의 죽음을 당했을 때에는 이를 위로하기 위해 직접 제주에 찾아가 6개월을 함께 지내며 상처를 위로했다.

초의는 15세에 출가해 해남 대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39세에 일지암을 중건해 40여년 동안 수행했다. 불교 선지식은 물론 시, 서, 화에 모두 능했던 초의는 추사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류하며 교분을 나눴다. 

▲ 초의선사 유적지 내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과 유묵을 탁본한 탁본집

다성(茶聖)이라 일컫는 초의는 추사에게 차를 보내주고 다도의 우정을 쌓았다. 추사는 초의선사에게 차를 선물 받고 보답으로 백석신군비(白石神君碑)의 탁본을 모범으로 삼아 명선이라는 호(號)를 지어 보냈다. 명선은 현존하는 추사 글씨 중 가장 크며 추사의 대표 서예작품으로 꼽힌다.

초의가 태어난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 조성된 초의선사 유적지에는 평생에 지음이 되었던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과 유묵을 탁본한 탑본집, 명선 등 추사의 글씨들이 전시돼 있다.

 

<한형진.박소정 기자>

# 본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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