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추사 김정희의 발자취를 찾아
5. 추사의 제주 유배생활

추사 김정희가 현대 시대에도 널리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는 독특한 글씨인 추사체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의 삶에서 추사체를 완성시킨 순간이 제주섬에 갇혀있던 8년 3개월이라고 평가한다.

아내를 잃고 병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이 고통 받았지만 아픔을 토양삼아 한 단계 높은 글씨를 완성했고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세한도> 등의 작품도 세상에 남겼다.

그의 대정 유배생활은 현재 제주추사관, 추사유배지, 추사유배길로 남아있다. 단순하지만 현대적인 느낌으로 지어진 건물과 다양한 작품이 인상적인 추사관, 그가 머물렀던 제주옛집, 추사와 제주의 인연을 길로서 풀어낸 유배길까지. 눈과 발로 김정희를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서귀포 대정이다.

 

▲가혹했지만 빛나는 8년 3개월

■ 제주추사관에 전시된 추사 흉상
김정희가 대정으로 귀향가게 된 원인은 당시 정치권력이던 안동 김씨 세력의 음모 때문이다. 군신사이를 이간질한다는 이유로 능지처참을 당한 윤상도라는 인물에 대해, 윤상도와 그 아들의 상소문을 추사가 작성했다고 안동 김씨 세력이 주장하면서 헌종 6년(1840) 9월 4일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진다.

한 달 동안 이동하며 10월 2일 대정현에 도착한 추사.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위리안치’로서 죄인이 머무는 집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시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유폐시키는 중형이다.

낯선 곳에서 홀로 지내는 형벌이 가져다주는 정신적인 고독감, 여기에 기후와 생활여건이 전혀 다른 곳에 놓이면서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낸다.

양진건 제주대학교 교수의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에는 “실체 추사는 눈병, 다릿병, 소화불량증을 호소했다. 환갑에 가까운 몸으로 이역의 제주도에서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침과 혈담으로 고생했고 특히 눈의 아픔을 호소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유배 2년차에 부인 예안 이씨가 사망하기 까지 한다.

심신이 고단한 삶이었지만 동갑내기 친구인 초의선사와 친구 권돈인, 제주목사 장인식, 제자인 소치 허련, 서자 상우 등이 다방면으로 도움을 준다. 여기에 이한우, 강도순, 강도휘, 이시형 등 제주도에서 거느린 제자들과도 많은 교류를 가졌다. 대정향교에 써준 의문당(疑問堂)이란 현판은 지금도 제주추사관에 남아있다.

유배 5년차에 들어 현재 국보 제180호로 지정된 세한도를 완성했다. 더불어 수많은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실력을 갖춰간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는 “추사가 자필로 쓴 장서 목록을 보면 약 7000권을 헤아린다. 추사는 이 책들을 제주도로 가져와 보았다”고 설명했다.

답사기에 실린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평안감사 박규수의 설명을 보면 “만년에 제주도 귀향살이로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남에게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되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가를 이루게 된다”고 나온다.

고단하고 가혹했지만 추사를 추사로 만들어준 귀향생활은 8년 3개월인 헌종 14년(1848) 12월 6일 마치게 된다.

■ 제주추사관.
 

▲추사가 살았고 걸었던 그 곳을 만나다

대정읍 안성리 1661-1번지(추사로 44)에는 제주추사관, 추사유배지 및 추사유배길의 시작점이 모두 모여있다. 2010년 5월 13일 개관한 추사관은 국비 50%를 지원받아 75억 4000만원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1층의 1193.9㎡ 규모로 지어졌다.

지난해 6만명, 올해는 8월까지 4만 5425명이 방문하는 서귀포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 대정 유배 당시 대정향교에 써줬다고 알려진 현판.

지난해 기획전, 강연회 각 1회씩을 개최하고, 올해는 5월 13일부터 두 달 동안 기획전 ‘대정현에 그가 있었네’를 열었다.

소장품은 총 106점으로 보물이 26점, 서간 및 탁본이 80점이다. 과천시 추사박물관이나 충남 예산군의 추사고택보다 작품 수에 있어서는 월등히 앞선 수준이다. 특히 추사 본인의 작품 뿐만 아니라 제자, 가족, 지인, 스승 등 연관된 인물들의 작품까지 두루두루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한도는 복제본과 함께 자세한 작품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어 눈길을 끈다.

■ 세한도 복제본과 자세한 작품설명.

2011년 ‘서귀포김정희유배지’로 명칭이 바뀌었고 사적 제487호로도 지정된 추사유배지는 1948년 헐렸던 것을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다시 지은 제주옛집이다. 김정희가 머무를 당시 소소한 이야기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옛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게 보고 만질 수 있어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 김정희가 유배 당시 머물렀던 집.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평가받는 추사유배길은 2010년 7월 1일부터 올해 4월 30일까지 추진되는 ‘제주유배문화의 녹색관광자원화를 위한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총괄책임자 양진건)이 주관해 만들어졌다.

■ 추사유배길.

■ 추사유배길 코스.

추사와 제주를 잇는 다양한 주제들로 인연의 길, 집념의 길, 사색의 길 등 세 가지 길이 제주추사관에서 뻗어나간다. 한가로운 농촌 풍경과 곳곳에 설치된 전각, 시비 등의 조형물이 어우러지며 온몸으로 추사를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서귀포시는 추사 작품 구입 및 추사 관련 학술자료를 더욱 확보해 나가고,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유배길 체험프로그램 운영 및 보완 작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한형진-박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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