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시민기자의 귀농일기

인간 스프링쿨러가 되어서 가뭄을 온 몸으로 막아 보겠다고 투지를 불태우면서 막바지 더위를 잊었었습니다. 타들어가는 귤나무를 바라보며 덥다고 엄살을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태풍이나 폭우나, 한파나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자연재해는 속수무책으로 발 동동 구르면서 애간장을 녹이겠지만 가뭄은 서서히 타들어가는 것이라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간절한 염원이 모여서 모든 식물이 다 말라 죽기 직전에 하늘기운이 동하여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농작물들은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귤나무 잎이 노랗게 변하며 귤이 크지를 않고 시들어 갈 때 내 몸과 마음도 함께 옭죄이고 타들어 가서 새벽부터 밤까지 더운 줄도 모르고 미친듯이 물을 주었는데 비가 오니까 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언제 그런 가뭄이 있었나싶게 하늘은 높고 푸른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망각의 축복이 있어서 단잠을 청하고 곤한 몸을 달래고 있습니다. 가뭄을 이기려고 안간힘을 쓸때는 몰랐는데 긴장이 풀리면서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 것이 가뭄 휴유증인 것 같습니다.

귤농부는 몸과 마음이 귤나무와 일심동체가 되어서 희노애락을 함께 느끼니, 귤나무도 가뭄후의 휴유증으로 여전히 몸이 갈증에 시달리리라 생각 됩니다. 여느해 같으면 가을풍요를 기원하며 허리를 펴 볼 때이지만 이번 9월은 지치고 아팠던 귤나무를 살뜰히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이만하기가 다행입니다. 삶의 터전이 몽땅 파괴된 재해는 아니었지만 가뭄도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가뭄을 통해서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기상재해가 가장 큰 시련이 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상기온의 재난이 급속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 것 같습니다.

가을문턱에서 숨을 길게 내쉬며,수확의 시간까지 극한의 고통을 이겨낸 귤나무를 살뜰히 보살피는 경건한 소임을 다하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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