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 12. 명화속 비밀이야기
'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에서는 '2012-2013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선정도서를 읽은 독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올레 6코스, 정방폭포 주차장 앞에 있는 왈종미술관 학예사로 일하고 계시는 한정희 님. 가을을 시샘하는 소낙비가 내리던 주말 오후, 미술관 카페에서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문상금 위원과 인터뷰가 시작됐다.
문상금(이하 ‘문’)=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한정희(이하 ‘한’)=이왈종 화백이 항상 주장하는 것, 즉 ‘연기(緣起)‘ 때문인지 저 또한 인연이 되어 미술관에 왔다가 올해 2013년 5월부터 ‘왈종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문=이 책을 읽게 된 계기나 인연이 있으신가요.
한=최근 유명한 그림을 좀 더 쉽게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이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도 몇 권은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위원회에서 추천도서로 올라와 있어서 알게 되었지요.

문=책에 대한 소감은 어떠한가요.
한=이 책은 쉬우면서 꽤 매력적인 책이네요. 마치 화가의 편지를 몰래 훔쳐보는 것처럼, 홀로 남은 어둠속 미술관에 갑자기 불이 켜진 것처럼 설레고 긴장되는 그림이야기를 가벼운 흐름으로 소개하고 있더군요. 또는 화가의 마음을 드나들고 등장인물의 뒤를 밟으면서 기록한 비밀화첩과 같기에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문=명화란 어떤 그림을 명화라 부를 수 있을까요.
한) 명화에 대한 기준은 차이가 있습니다. 비싼 그림이 명화이다 라는 분도 계시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는 작품을 통해서 예술가의 시각, 생각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작가의 확고한 철학과 개념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을 말하겠죠.
문=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이나 화가가 있다면 누구신가요.
한=좋아하는 예술가가 너무 많습니다. 우선 이왈종 화백님도 오래전부터 매우 좋아했는데, 지금 내가 ‘왈종미술관’에서 일하고 있기에 행복합니다. 제는 어릴 적부터 화가가 꿈이었죠. 제가 가장 처음 좋아했던 분은 이중섭 화백입니다. 그분은 그림에 대한 열정과 개인의 스토리가 감동적이어서 롤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점점 늘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는 많은 자극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마그리트의 작품을 볼수록 더 깊은 매력에 빠지게 하지요.
문=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거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문장이 있으셨나요.
한)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명이 롤랑바르트입니다. 이 책 279페이지에서 ‘푼크툼(punctum)' 단어를 만났을 때 어릴적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주 반가웠죠.
일반적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작품의 미묘한 특징에 마치 비늘로 찔린 듯 사로잡히는 느낌, 즉 설 명하기 힘든 주관적인 감상의 포인트를 ‘푼크툼’이라고 한다.
문=이 책의 구성은 네 부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고전 속 주제를 그린 그림들. 둘째, 역사는 그림을 타고 흐른다. 셋째, 초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림으로 엿보는 일상입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나요.
한= 저는 첫 번째 ‘고전 속 주제를 그린 그림들’ 부분을 제일 흥미 있게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주제로 표현된 다른 예술가들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보여주고 있기에 독특한 구성이 훌륭합니다.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관찰력이죠. 이 책은 그런 작품 관찰력을 책으로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에 마치 그림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더군요.
문=학예사로서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는 하는 것이 좋을지 얘기해주시죠.
한=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심이 있는 작품과 전시를 선택하는 겁니다. 그래야 호기심과 적극성을 가지고 작품을 볼 수 있어요. 또 감상 할 때 소음이 크거나 관람객이 많은 것도 방해를 받아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관람객이 오지 않는 한가한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전시장 전체를 빠르게 둘러 본 다음 다시 천천히 마음이 더 끌리는 곳에 시간을 두고 감상을 하죠. 이렇게 몇 년 동안 꾸준히 전시를 보면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게 되지요. 자주 작품, 전시장을 찾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문=3부 ‘초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 중에는 두 모나리자가 등장합니다. 어떤 그림인가요.
한=첫 번째는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다빈지는 ‘스푸마토(sfumato)’ 즉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용어로 안개와 같이 색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색깔 사이의 윤곽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도록 자연스럽게 옮아가도록 하는 명암법으로 표현했습니다. 반면에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작품은 흔히들 ‘복구의 모나리자’라고 부르는데 ‘푸앵틸레(pointilles)라고 불리는 점묘법으로 작은 점들을 엷게 칠해서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귀걸이를 단 두 번의 하이라이트적인 붓 터치로 재현되었는데 이러한 색채기법은 나중에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지요. 이 두 작품은 두 작가에게서도 중요한 작품입니다.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적 방향을 표현하기 위해 정형화된 기법의 테크닉을 연마하기보다 또 다른 실험적인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죠.
문=초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 편을 살펴보면 뒤러와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비교적 밝고 자신을 사랑 하는 마음이 드러나 있는 자화상이라면 이와는 다르게 우울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피카소와 고 야, 그리고 고흐를 들 수 있는데요. 자화상을 밝게 그리는 화가나 어둡게 표현하는 화가들의 심리 상태는 과연 어떤 점이 다른가요.
한=카메라가 나오기 이전의 초상화는 더욱더 기록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에 화가들은 특히 자화상을 꼭 남기곤 합니다. 그림이 밝고 어두워 보이는 것은 심리상태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보통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세계의 ‘이즘(ism)'을 함께 반영해서 표현하게 됩니다. 자화상을 그리는 그 시점에서 화가 자신의 상태가 가장 잘 나타나는데 렘브란트의 경우 젊은 시절 자화상들은 밝게 표현한 반면 말년의 자화상은 볼품없이 초라합니다. 실제로 말년의 렘브란트는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과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상황으로 그림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문=책을 읽고서 아쉬운 부분은 어떤 점이 있을까요.
한=이 책은 전문가 이상으로 훌륭합니다. 다만 서양 미술에 관련된 책은 많이 넘쳐 나는데 한국미술사와 한국 예술이 소개되는 지면이 적은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문=혹시 그림 수집도 하시나요.
한=네. 지금부터 대략 5년 전에 처음 그림을 사기 시작하면서 매년 평균적으로 3점 이상을 구입했습니다. 당시 사립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갤러리, 아트페어, 옥션 등의 미술시장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보통은 컬렉터가 되는 것을 어려워하고 부자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그 편견을 깨뜨리고 싶었습니다. 그림 수집은 일상적인 개인의 취미와 기호품인 ‘아트쇼핑(Art Shopping)'이라고 생각하고 옷과 신발, 가방을 사는 것처럼 캐주얼한 마음과 부담 없는 가격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예술 취향이 반영되어 그림을 소장하는 동안 즐길 수 있는 작품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점찍은 작가가 앞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즐기며 경제적인 기쁨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학력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작품의 내용과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문=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림시장의 활성화가 필요하겠지요. 앞으로 국내외 그림시장을 전망하신다면 많이 활성화가 될까요.
한=현재는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있기 때문에 경제 상황과 함께 흘러가는 미술시장도 역시 침체기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국내 작가의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그림에 대한 관심과 안목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죠. 이제 관심있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소유하는 것이 좀 더 확대된다면 미술시장 활성화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런 좋은 환경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한국미술’과 ‘한국 예술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선행되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대중들이 많은 예술가에게 따뜻한 관심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겠죠. 이러한 공급과 수요의 조건이 갖춰지면 곧 세계미술 시장에서 한국의 예술가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문=책도 내신 적이 있으시죠.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예문사의 ‘학예사를 위한 소통하는 박물관’ 이란 책입니다. 이 책은 현직 큐레이터와 교사가 모여 큐레이터를 꿈꾸고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 함께 저술한 책인데요. 저는 ‘2부 박물관 전시’를 썼습니다. 내용은 한국의 블록버스터 전시에 관련하여 전시를 분석하고 사례를 통해 발전방향에 대해 기술한 책입니다. 10년 이상 꾸준히 규모가 작은 전시부터 블록버스터 급의 대규모 전시 등 흥미와 관심이 가는 전시를 열심히 봤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대규모 블록버스터 전시에 더욱 매력을 느꼈고, 제가 큐레이터로 전시 볼 때와 관람자로 전시를 보면서 느끼는 차이와 내용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문=주로 읽는 책의 선택기준은 어떤건가요.
한= 아무래도 직업으로 학예사를 하고 있기에 철학, 미학, 미술사학, 예술학 등의 관련 서적을 읽게 됩니다. 그렇지만 현재 출판되는 다양한 서적에도 관심을 갖게 되지요. 기준이 있다면 가장 첫 번째 기준은 나에게 필요한 지식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두 번째로는 마음을 다스리는 통찰력과 지혜가 담긴 책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책들은 내게 긍정의 메시지와 힘을 주어 내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에 대한 편독은 없습니다. 소설, 에세이, 시, 수필, 만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봅니다. 그래서 책 한권을 읽고 감동을 받게 되면 그 작가가 쓴 글을 전부 사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좀 끝장을 보는 성격이죠(웃음)
문=책은 어디에서 읽으시나요.
한=책을 읽는 공간을 특별히 가리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집중하기 좋은 것은 밤 시간 이기에 집에서 읽습니다.
문=좋은 책이란 어떤 책을 말할까요.
한=제게 있어서 좋은 책은 영혼을 깨워 몸과 마음을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문= 나에게 책이란.
한=오늘 나를 있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에너지이다. 몇 해 전에 한참 책을 읽지 않았더니 영혼이 점점 말라지는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그래서 바쁜 일상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속에서 오늘을 사는 나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케 하는 자의식이 나오고, 내일을 희망하게 하기 때문이죠.
정리=유정숙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