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 17.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책읽는 서귀포, 칠십리 책방'에서는 '2012-2013 서귀포시민의책읽기' 선정도서를 읽은 독자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남원읍에 있는 카페 가뫼물 주인장인 한윤택 씨. 제주에 정착한지 이제 2년차인 그는, 제주가 쉼이 있는 땅이고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솜씨 좋은 아내가 낑깡(금귤)으로 만들었다는 향긋한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의 제주 정착기와 책에 대한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햇살 가득한 카페 창가 자리는 언제나 행복자리처럼 느껴졌다.

▲ 한윤택씨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이하 ‘안’): 본인 소개를 직접 부탁합니다.
한윤택(이하 ‘한’):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서 쭉 살다가 결혼해서 밋밋하게 살다가 제주에서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남원에 정착한 새내기 제주인 입니다.

안 : 혹시 올해 나이가 마흔인가요.
한 : 아닙니다. 이제 마흔을 몇 해 앞두고 있는 30대 가장입니다. 제 나이가 마흔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하니 좀 묘한 생각이 드네요. 시간이 빨리 갔구나 싶기도 하고, 또 뭔가 조바심도 나네요.
 
안 : 이 책 제목이‘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마흔에’다음에 작은 글씨로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쓰여 있네요. 마흔이 인생의 전환점이라 생각이 드나요.
한 : 제주에 내려오기 전에 다녔던 직장이 모 축구 구단이었지요. 축구에서 전반을 마치고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지요. 아직 제가 마흔이 되지는 않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그 중간 지점에 서있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자가 마흔을 ‘전환점’이라고 표현한 점이 무척 인상 깊게 느껴졌습니다.

안 : 우리가 흔히 손자병법하면 잘 아는 구절이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인데 원문은 다르다고 하더군요.
한 : 손자병법 원문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이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 백번을 이긴다’가 아니라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입니다. 쉽게‘이긴다’고 쓰지 않고 ‘위태롭지 않다’고 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 말고도 ‘주변 상황까지 감안한다’는 것과 ‘싸워서 이기기’보다 ‘지지 않기’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죠. 세상에서 나보다 쎈 사람들을 모두 이기기 보다 지지 않는 것이 더욱 인생살이의 지혜라고 본 것이죠.

안 : 이 책에서 저자는 ‘손자병법, 비겁의 철학’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한 : 20대를 마친 후 저자는 처음 읽은 손자병법을 통해서 패기만만한 자신의 나이처럼 손자병법이 ‘싸움의 기술서’이었고‘승리의 비법’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을 십여 년 살면서 다시 읽는 손자병법은 전쟁의 기술(Art of War)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승부는 싸우기 전에 결정 나기 때문에 ‘잘 살펴봐야(不可不察也 불가불찰야)’하고, 혹시 싸우게 되더라도 먼저‘적의 의지를 꺾고(伐謨 벌모)’‘고립시켜보고(伐交 벌교)’그래도 안 될 경우만‘직접 부딪히라(伐兵 벌병)’고 합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이치에 따른 처세술과‘비겁의 철학’이었다는 겁니다.

안 : 그렇다면 저자는 이런 손자병법, 즉‘비겁의 철학’을 미화하고 있나요.
한 : 미화라기 보다는 현실이 바로‘비겁의 결과’라고 주장하죠. 누구나 영화처럼 영웅이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세우기를 바라지만 이것 역시 모순된 현실을 나타내는 한 단면이란 거죠. 이 책은 13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장이 바로 시계(始計)편이죠. 시계란 즉 잘 살펴보고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무턱대로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살피고 계획함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안 : 제 2편에 보면 작전(作戰)을 말하고 있는데 그 결론이 뭔가요.
한 : 이 책은 읽다 보면 매우 책 넘김이 좋습니다. 한 마디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예화를 들고 있지요. 게다가 매 편의 마지막은 손자요결(孫子要訣) 즉 손자가 말하길 이란 면으로 각 편을 요약하고 있기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중요한 얘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한 책이 아닐까 하네요. 이 책 자체도 매우 작전을 잘 세워서 제작된 책이란 생각이 들지요. 그래서 잘팔린 책이기도 하고요(웃음) 작전편의 결론은 전쟁은 시간과의 싸움이요. 이겨도 오래 끌면 헛장사이기에 교묘한 작전이라도 오래 끄느니 어설프더라도 서두르는 게 낫다고 합니다. 마음에 새겨볼 만한 경구라고 여겨집니다.

안 : 손자병법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한 : 전체 13편 모두가 좋은 내용입니다. 그래도 가장 제가 좋았던 것은 제 3편 모공(謨攻)이었습니다. 부제가‘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한 승리다’입니다. 이겼다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피투성이가 된 상처뿐인 영광이 있는가 하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완벽한 승리도 있다. 그런가 하면 싸우기도 전에 깨끗하게 항복을 받아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승리의 완벽한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안 : 책을 읽다보면 나에게 지금 도움이 되거나 내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이 뭔가요.
한 : 열한 번째 구지(九地)편을 보면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고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이치와 경중을 보아서 중요한 것을 먼저 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 제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더군요. 가장으로서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선후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안 : 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하여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고 하였지요. 윤택 씨가 보기에 마흔에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무언가요.
한 : 수신제가 라는 말이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세우고 집을 세우는 것. 수신을 먼저하고 나서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자신의 기본적인 일상을 정리하고 내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네요.

안 : 요즘 한창 유행인 '응답하라 1994, 1997'이 윤택 씨의 청춘인데, 20대에 그려본 마흔 즈음에 세웠던 인생 계획이 무언가요.
한 : 저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만 불러서 마흔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요(웃음)

안 : 이전에 손자병법을 읽은 적이 있는가요. 만약 읽었다면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가요.
한 : 저는 손자병법이 단순한 처세술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관심을 두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번에 강상구 저자의 손자병법을 읽으면서 서귀포시민의책으로 선정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승패를 위한 병법 보다는 인생에 대한 깊은 관조와 모든 이들과 공존하려는 철학이 있더군요. 어찌하건 손자병법을 긍정적으로 보게된 계기가 되었네요.

안 : 흔히들 병법서들은 싸움을 잘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자면 이기기 위한 전술보다는 싸움을 잘 피하기 위한 잘 지키기 위한 병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데 윤택 씨에게 있어서 손자병법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한 : 손자병법은 처세와 전략서 혹은 효율적으로 인생을 살기위한 방법서가 아닌 고전(古典)으로서의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전을 주로 읽는데 장점이 인간 본성을 깨닫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계기를 마련해 주죠.

안 : 손자병법과 상관없이 본인의 인생 좌우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 : 제게 영향을 준 고등학교 은사분이 늘 말씀하신 것이 있는데‘공부해서 남 주자’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늘 생각하고 있지요.

안 : 이 책을 읽고서 권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한 : 예전 직장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데요. 혼자 이기고 승리하는 삶이 아니라 함께 승리하는 삶이 중요하단 생각이 드네요.

안 :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한 : 제 취미가 걷기인데요. 걷기를 통해서 많은 사색과 치유가 있더군요. 그래서 걷기를 권장하고 함께 길을 걸어 주는 ‘걷기 치료사’같은 직업을 하고 싶네요. 그리고 아내가 제주를 너무 좋아하기에 제주 곶자왈을 사서 보전하고 싶은 계획도 있구요. 제주가 주는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이기에 오랫동안 보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안 : 나에게 책이란 
한 : 인생의 중요한 결정 도와주는 좋은 친구

정리․사진 유정숙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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