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영 시민기자의 ‘나의 삶, 나의 추억’

우리 집 마당 구석에는 장작더미가 쌓여있고, 그 옆에는 눌(볏짚이나 보릿짚을 둥글게 차곡차곡 쌓은 것)이 두어 개나 있었다. 배추, 무, 파 마늘은 텃밭에 심어 자급자족했으며, 우영 팥 입구 한쪽에는 구덩이를 파서 볏짚을 깔고 고구마를 묻어두었다. 구덩이 주위는 노람지(볏짚으로 엮어 만든 것)를 두르고, 고구마를 꺼낼 수 있게 팔 하나정도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구멍을 낸 후, 볏짚으로 엮어 만든 뚜껑을 씌워놓으면 겨울 준비는 끝난 셈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는 눌에서 보릿짚을 한 단씩 뽑아다 불쏘시기로 썼다. 보릿짚이나 볏짚은 돼지우리를 따뜻하게 덮어주기도 하지만 퇴비를 만들어 걸음으로도 쓰였다. 나는 부엌에서 장작불로 밥을 할 때면 아궁이 앞에 앉아서 책을 보곤 했다. 어쩌다 불이 밖으로 내 붙는 것을 본 어머니가 그 책 불속에 짇어불카?(넣어버릴까)라고도 했었다. 요즘처럼 읽을 책들이 홍수였을까.
 
변변히 읽을거리도 없던 시절, 지난(至難)한 삶에 책 볼 틈이 어디 있었으랴. 한 곳에 집중하라는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도 작은 가슴이 아렸다. 그래도 추운 겨울이면 안방의 화롯가에 앉아 오징어도 구워 먹고, 딱딱하게 굳어진 떡을 노릇노릇하게 구워 조청을 찍어먹던 기억의 편린들이 옛이야기처럼 아릿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요즘 나는 세월 지나는 소리에 기억의 조각들을 실타래 풀어내듯 물레질해본다.
 
옛날 우리네 삶에서 구덕(대바구니)은 일상의 생활용품이었다. 질 구덕은 이불호청 같은 큰 빨래를 담아 멜빵으로 지고 갈 때 사용했고, 물 구덕은 허벅을 넣고 물을 길러 나닐 때 썼다. 또 곤대구덕은 대나무를 가늘고 곱게 엮어 만 든 것으로 경조사에 쌀을 담고 갈 때 쓰였다. 뚜껑이 있는 차반지는 빙떡이나 송편, 시루떡을 가지런히 넣었고 차롱은 논밭에 일하러 갈 때 밥을 담고 가는 도시락용기 대용품이었다.
 
촐구덕은 야채를 담았고, 조락이라는 작은 구덕은 봄에 달래나 미나리를 캐러 갈 때 또는 갯가에 보말을 잡으러 갈 때 사용했다. 보름구덕은 종이나 천 쪼가리를 안팎으로 발라 말렸다가 참깨, 좁쌀 같은 작은 곡식이 새어 나가지 않게 쓰는 구덕이었다. 미숫가루나 떡가루, 밀가루를 담을 때도 썼다. 애기구덕도 있다. 애기구덕 대용으로 철근 같은 쇠로 만든 요람도 있다. 엄마들은 애기구덕에 아기를 뉘어놓고 한쪽 발로는 구덕을 흔들고 손으로는 뜨개질을 하거나 바느질을 하곤 했다.
 
예전 농경시대의 생활용품으로 멍석이나 망태도 있다. 내 할아버지는 멍석을 아주 잘 짜셨다. 요즘으로 치면 그야말로 장인 축에 들 정도로 손재주가 매우 좋으셨다. 시골에 계실 때 만든 멍석은 아주 많았다. 할아버지 내외분이 시골에서 우리 집으로 옮겨 오실 때 그것들도 함께 따라 왔다. 가을추수가 끝나고 햇볕 좋은 날, 넓은 마당에 멍석을 여러 개 펴놓고 나락을 널어 말렸고, 초여름에는 타작한 보리를 널어서 말렸다가 고팡(庫房)에 들여놓곤 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