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높은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서귀포시 행정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강정마을 주민 등 서귀포 시민들에게 잠깐 책망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더라면 오죽 좋았을까. 서귀포시 행정의 '강정국제평화영화제 대관 불허' 소식에 제주 문화예술인들은 물론이고 중앙 방송망을 타면서 전국 영화인들을 비롯해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국제적 망신살, 해외토픽감이라 한다. <서귀포예술의전당>이라는 이름에서 예술을 부끄럽게 한 '예술' 자(字)를 아예 내리라는 비아냥이 서귀포시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대통령, 도지사 마케팅에 놀아난 제주 지사, 시민의 자존심을 짓뭉개버린 서귀포 시장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국민을 위하지 못하고, 도민 사이 갈등을 풀지 못하며, 시민의 권리를 내팽개치는 저런 대통령, 그런 지사, 이런 시장이 무슨 필요 있느냐는 것이다. 없는 게 더 낫겠다, 하는 한숨소리마저 들린다.

시장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단지 부하 공직자, 서귀포예술의전당 관장의 개인적 기준과 판단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그 책임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서귀포시 문화예술의 가치를 드높이고 시민들의 품격 높은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 힘써야 할 전당으로서 기능과 역할에 부적합한 인사를 배치한 결과가 아닌가. 평소 지론인 '능력 위주, 적재적소 인사 원칙'에 따른 인사 책임은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

이번 서귀포예술의전당 사례 하나만 보더라도 서귀포 행정 행위 이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열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서귀포시 인사가 엉망이었다는 사실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해당 업무 문외한을 보임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이다. 또한 일부 읍면동의 경우에 4년 사이에 기관장이 5차례나 교체된 사례도 있다니 얼마나 무원칙한 인사인지 짐작할 수 있다.

본청의 경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일부 부서장은 업무에 적응할 만하면 금세 바꿔버리고, 또 바뀌고 하면서 업무의 연속성은 고사하고 시민들의 민원처리에도 원성이 자자한 경우가 많다. '뒷짐 지는 행정'이 난무하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읍면동에 대한 업무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읍면동 입맛에 맞는 행정', '토호세력과 결탁하는 행정'이 판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게 아닌가.

문화예술의 본령은 정치가 아니다. 사회의 상징체계로서 가치관의 총합이며 시민의식이고 삶의 양태 그 자체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며 그 내재율은 창의성이다. 문화예술은 포괄적이며 다양성의 스펙트럼을 갖는다. 자유이며 민주주의이고 평화와 희망을 지향한다. 동서고금의 인류역사가 보여주듯이 문화예술은 사회공동체 형성에서 더없이 소중하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하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가능케하기 때문이다. 종내는 인간의 삶 자체이며 행복이다. 지고지선에 다름 아니다.

문화예술을 정치적으로 바라볼 때 거기에 탄압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문화예술 행위를 탄압하는 것은 왕정, 독재정권에서 비일비재하게 행해져왔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말할 것도 없다. 나치 시대, 스탈린 치하, 마오쩌뚱 중국, 김일성부터 김정일과 김정은에 이르는 3대 세습정권 북한사회 등만이 아니다. 탕평책으로 이미지가 나쁘지 않은 조선 정조 때에도 '인간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개혁적인 문화예술인, 신지식인들이 탄압받은 사례가 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 문화말살 정책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일제 부역자와 그 자손들이 지금껏 호의호식한다.

박정희의 5·16 군사 쿠테타와 유신헌법 아래서의 인권탄압은 할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창의정신은 고사하고 그러한 '입막음'은 5·18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 군부 독재의 언론통폐합까지 이어졌다. 문화예술 탄압은 창의성을 억누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정치적 오류와 사회 모순 등에 대한 비판의식마저 말살하려 든다.

지금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빚어진 '강정국제평화영화제 대관 불허'는 허가되고 준비되던 영화제를 어떤 이유에서건 대관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데에 문제가 더욱 크다.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상부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아니면 '미리 알아서 기고 충성맹세 하는' 공산주의식 독재체제의 잔영을 보는 듯한 소름끼침이다. 그러나 탄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저항, 반동은 더욱 거세어지고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특히 이곳은 세계평화의 섬 제주, 그중에도 더욱 평화로운 서귀포시이기 때문이다. 탄압하는 권력에 짓눌려서 강정 해군기지 준공이 이미 이뤄졌다. 제2공항 역시 힘의 논리에 의해서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것은 이러한 탄압의 징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과할 일은 사과하고,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누구의 몫인지 대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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