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스르는 구상나무처럼”(1)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도내외 시니어들의 교육 기부
성품, 사명감, 업무 능력 고루 갖춘 인재양성을 목표로
제주지역 대학생들에게 고전명작, 기업실무 등 강의

한라산 숨결 속으로 들어가 보라. 다채로운 빛깔의 향연이다. 그중에서도 구상나무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가을은 구상나무가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푸른빛이 돌면 푸른 구상, 검은빛이 돌면 검은 구상, 붉은빛이 돌면 붉은 구상으로 불린다.

구상나무는 억센 자연 속에서 살아온 제주인의 초상으로 여겨진다. 거센 바람과 추위 때문에 다른 나무들은 자랄 수 없는 곳에서도 구상나무는 우직하게 서 있다.

구상나무의 당당함은 열매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항상 푸르게 서 있다는 소나무도 솔방울이 대개 가지 아래쪽에 달린다. 하지만 구상나무 열매는 하늘을 향해 달려있다.

그러나 구상나무는 점차 제주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기후변화로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말라 죽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구상나무에 대한 무관심이다. 사라져가고 있는 구상나무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제주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다. 제주 출신 청년들은 입시, 취업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고 있다. 지역공동체가 이들에게 선명한 희망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 크지 않을까. 고향에 남아있는 제주 청년들 일부는 무기력증에 빠져있다 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제주 청년들을 키워내려는 시도가 펼쳐지고 있다. HRA(Human Renaissance Academy)가 바로 그것이다. HRA는 올해로 10번째 가을을 맞았다. HRA는 언론 방송인, 기업인, 의료인, 외교관 출신 인사들이 모여 대학생들을 위한 1년간의 강도 높은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성품(Character), 사명감(Commitment), 업무 능력(Competence) 등을 고루 갖춘 3C형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취업능력 향상, 장기적으로는 국가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키워나가겠다는 야심찬 프로그램이다.

HRA 창립은 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다. 현재 제주는 위기와 기회를 한 번에 맞이하고 있다. 제주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귤의 고장이자 신혼여행의 성지였던 제주가 국제자유도시 선포를 맞아 본격적으로 변화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중국인들이 부동산투자를 통해 제주에 자리 잡는 등 이곳 제주를 찾는 외국인들이 늘었다. 제주올레 열풍을 시작으로 개별여행을 찾는 국내 관광객들의 모습이 다양해졌다. 또한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꿈꾸며 제주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늘어나 제주 인구는 2017년 9월 현재 65만 3270명에 이른다. 대한민국 1%, 변방 중의 변방이라 불렸던 제주의 위상은 높아져 간다.

하지만 제주 청년들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이는 제주사람들이 이곳 제주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같은 맥락이다.

제주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경제 지표상 지역민들의 소득은 향상됐고 부동산도 좋은 값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소득이 는 것도 아니요, 오히려 임대료가 올라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는 형국이다.

사람이 모여들고 있는 제주, 천혜의 자연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있는 제주. 창조적인 두뇌는 떠나고 있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 오래된 속담이 이 땅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듯하다. 제주의 인재유출은 그들이 대학교육을 받게 되는 시점부터 일어난다. 뭍으로 떠난 청년들이 제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의 지식을 활용할 일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고향에 남은 많은 청년은 패배감에 젖어있다. 최근 많은 제주의 고등학생들의 꿈은 입시에 성공하여 제주를 탈출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탈출에 실패한 청년들 일부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이처럼 HRA의 탄생은 시대적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 HRA 산파의 한 사람이자 10여 년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김수종(전 한국일보 주필, 현 뉴스1 고문) 교수 등 시니어들이 제주 사회에서 인재를 키워보자는 취지 아래 모였다.

이유근(사단법인 위즈덤시티 이사장) 전 한마음병원장, 문홍익 전 제주상공회의소 회장,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부영애 탐라영재관 관장 등 재향 인사, 고향을 떠난 인사 등이 한데 모였다. 제주에 아무 연고 없는 이들도 힘을 보탰다. 서재경 남도학숙 원장, 조기대 전 대우전자 중국법인장, 문국현 한솔섬유 대표 등도 합류했다.
 

김명지 / HRA 수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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