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음 김상헌은 1601년 순무어사의 명을 받고 제주에 부임했고, 섬을 둘러본 과정을 <남사록>에 남겼다. 남사록에는 송악산의 독특한 형상과 관련한 기록이 담겼다.

'산은 멀리 뻗는 산세가 없고 바다에서 툭 튀어 일어서 있는데, 둘레가 겨우 몇 십리이다. 울멍줄멍하고 울퉁불퉁한데 동남쪽 한 구석은 평평하고 넓은 것이 마치 제단과 같다. 몇 백 명이 앉을 만한데 그 아래는 높은 절벽이다.'

송악산은 최고 높이가 해발 104미터에 불과한 작은 화산임에도 여러 개의 화산단위로 구분되는 복잡한 구조를 띤다. 그래서 산은 청음 김상헌뿐만 아니라 현대 지질학자들에게도 각별한 과심을 끌었다.

손영관 경상대 교수는 송악산의 형성연대를 약 7000년 전인 것으로 추정했다. 손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송악산이 형성될 당시 일대가 바다였다. 마그마의 분출하며 물과 부딪쳐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는데, 도중에 화산재가 화구 주변에 쌓여 육지가 됐다. 송악산 남동부 산책로는 대체로 화산재가 쌓여서 형성된 응회환이라면, 가운데 오름은 마그마가 분출되며 형성된 것이다. 첨음 김상헌이 표현한대로 송악산이 울멍줄멍, 울퉁불퉁한 이유는 화산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변환경이 변한 까닭이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이후 송악산은 끊임없이 상처를 입고 있다. 이곳에 가장 먼저 상처를 낸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자 일제는 19452월에 이르러 연합군의 공격으로부터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결전을 위해 제주도에 총 104개 진지를 구축했는데, 송악산 인근에도 진지동굴 15개를 만들었다.

해방이 된 이후에도 송악산에 대한 수탈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994년 관광지구(유원지구)로 지정되며 탐욕의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 199511월에 ()대명레저가 사업시행 예정자로 지정됐는데, 불발에 그쳤고 1996년 사업이 취소됐다. 다시 남제주리조트개발()가 송악산관광지구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고 행정이 각종 특혜를 제공했지만 사업 시행자는 사기행각이 발각되어 구속자 신세가 됐다.

그렇게 끝나나 했는데 중국 신해원 유한회사가 지난 2014년에 다시 뉴오션타운 조성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환경영향평가는 네 차례나 재심의 결정이 내려지며 좌초되는 듯 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다섯 번째 심의에서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겪으며 심의를 통과했다.

이에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제381회 임시회를 속개해 뉴오션타운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을 심의했고, 관련안건에 대해 부동의한다고 밝혔다. 이날 박원철 위원장은 제주자치도가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면서 전문가 의견을 은닉하는 등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의회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이를 계기로 송악산이 80년 이어진 수탈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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